참나무와 삼나무의 서로 다른 그늘

둘 만 아는 비밀 없고, 내가 싫으면 남도 싫다

by 포레스트 하이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알미트라가 물었다. “스승이여, 결혼은 무엇입니까.” 그가 말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결혼 축사에 이따금 인용되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결혼에 대하여(on marriage)’의 첫 문장이다. <예언자>는 1923년 출간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다. 예언자 ‘알 무스타파’가 유배 생활을 마치고 떠나기 위해 항구에 도착했을 때, 군중들이 사랑, 자유, 우정, 시간, 쾌락 등을 묻고 알 무스타파가 대답한다. ‘결혼에 대하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결혼. BY PIXA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으니


오래도 걸렸다. ‘참나무와 삼나무가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으니’라는 말을 이해하기까지. 숲을 공부하기 전까지 건성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참나무와 삼나무는 자라는 환경이 완전 다르다. 삼나무는 소나무와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상록 침엽 교목이고, 참나무는 그늘을 좋아하는 낙엽 활엽교목이다. 천이(遷移) 과정에서 양수림이 먼저 형성된 후 음수림이 숲을 최종 장악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면 이해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참나무는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으로 바로 연상되는데, 삼(衫)나무의 정체가 모호하다. 삼나무 하면 일본, 숲의 파괴를다룬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姫), 시코쿠 섬의 삼나무 숲 트레킹을 떠올리는데 느닷없이 예언자에 등장하다니. 문장의 영어 원문은 보자.


And the oak tree and the cypress grow

not in each other‘s shadow


사이프러스, 측백나무, 삼나무, 백향목!


참나무(oak)의 해석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이프러스(cypress)라니. 누구에 따라 삼나무, 측백나무, 낙우송, 잎갈나무, 사이프러스로 번역되고 있다. 백향목으로 번역하는 책도 있는데 성경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브란의 출생지역이 기독교 탄생의 무대였던 레바논이므로 백향목이 더 맞을는지 모르겠다. 지식을 조금 더 확장하면 반 고흐도 사이프러스를 너무 사랑했다. ‘별이 빛나는 밤’,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 등 수십 점을 그림으로 남겼다.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요즘 어린애도 읊고 다닌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함을 경험치로 잘 알고 있다. 가족끼리 1m 안쪽으로, 사회에서는 1m 바깥쪽으로 거리를 유지하라는 말을 들었다. 정신심리 의사인 홍종우 박사의 <관계의 거리, 1미터>라는 책은 나중에 알았다. 회사가 제 아무리 인화와 가족, 정과 의리를 외쳐야 완벽한 타인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회사, 상사 부하, 동료와의 관계망을 어디까지 유지해야 할지는 늘 고민거리이다.


종신고용제도가 만연하던 시대에는 회사와 상사에 대한 충성은 미덕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농도는 희석되어 거의 맹물에 가까울 정도로 묽다. 더는 유효한 가치는 아니다. “지금부터 우리 형제같이, 가족같이 지내는 거야, 건배!”, “형님이라 불러, 아우”, “충성으로 모실게요” 해 봤자 면면부절을 꿈꾸는 이는 없다. 먼 사이보다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사달이 나기도 한다. 섭섭함을 기본이고, 배신의 아이콘이란 낙인은 덤이다. 승진과 청문에 즈음에 날아오는 그토록 많은 민원과 투서는 누가 보냈을까. 후배 기자가 그러더라. “형님! 조심하세요. 세상에는 형님 잘되면 배 아픈 사람 상상하시는 이상으로 많습니다.” 투서의 90%는 바로 옆사람이라 덧붙인다. 운전기사, 비서를 가장 잘 대해주면서도 가장 경계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 아부의 기술 중 금지사항


‘소통의 윤활유’를 부제로 <아부의 기술>이라는 글을 후배들과 나눈 적이 있다.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동으로 ‘윗사람에 대한 직언과 뒷담화’를 사례로 들었다. 이런 내용이다.


“아부는 안 하면 그만이지만, 직언은 사망의 지름길이다. 구름 위에 계신 분들에게 아부 듣기란 일종의 생활이다. 직언은 거꾸로 선 비늘을 뽑는 행위이고, 한 방에 간 선배 무수하다. (중략) 특히 술자리 양념이랍시고 윗사람 씹는 일은 양면의 칼이다. 적당히 맞장구만 치되, 금도를 넘지 마라. 비록 우리끼리만의 비밀일지라도. 돌고 돌면 반드시 상사의 귀에 들어간다. 부하직원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해라.”


세상에 둘만 아는 비밀은 얼마나 많은가? 동시에 그 비밀이 지켜지는 경우란 희소함도 잘 안다. "이것만 고치면 최고의 CEO가 될 겁니다.”라 직언을 기분 좋게 했다가, 바로 물러난 사람도 있고, 고칠 점을 말해 달라는 말을 진심으로 여겨, “짜증 좀 안 내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가 맹물을 들이켠 일도 적지 않다. 상사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워줬는데”라며 실망스럽고, 부하직원은 “내가 저를 어떻게 모셨는데”하고 섭섭할 따름이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너무 강직해서 적이 많지 않을까요”, “업무 능력이 탁월해 다른 부장님 질투가 장난이 아닙니다” 정도의 직언인 듯 직언 같은 직언이 아닌, 칭찬 같은 말을 사용하는 기술을 연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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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협객을, 충신과 열녀를 치켜세워, 춘추를 장식하고, 충열비와 열녀비를 세워주는 걸까? 협객이, 충신과 열녀가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괜스레 협객 인양 충신 인양 귀에 거슬리는 충성스러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회사는 완벽한 타인들끼리의 사회다. 견고한 관계란 애당초 요원하다. 자기만의 심리적 거리를 찾아 유지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석학 나심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는 ‘은률(銀律, silver rule)’을 내내 강조한다. 은률이란 내가 싫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 행동이다. 논어의 ‘기소물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과 같은 말이다. 꼰대 행동하는 상사 싫다고 지겹도록 욕하고선 정작 스스로가 꼰대가 되어 버린다. 그것도 젊은 꼰대로. 이렇게 보니 칼릴 지브란의 통찰력이 한없이 빛난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서 삼나무와 참나무의 거리 두기의 지혜로움을 본받았으라.


1. 스킨 인 더 게임: 레바논 출신의 사상가이자 워튼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나심 탈레반의 근작. 나심 탈레반의 다른 저서로 <블랙 스완에 대비하라>, <안티 프래질>, <행운에 속지 마라>가 있다. 스틴 인 더 게임>에서 황금률을 "상대방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해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2. 사람과의 거리 1미터는 정신심리 의사인 홍종우 님이 쓴 <관계의 거리, 1미터>에서 책에서 인용되었다.

3. 기소물욕 물시어인: 내가 원하지 않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논어 위령공편이 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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