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시간과 함께 다가오는 지혜

윌리엄 예이츠의 시, 레너드 코웬의 노래

by 포레스트 하이

가끔 해보는 공상 혹은 망상! 한 권의 책을 꼽는다. 등장인물의 군상이 다양하고, 공간적 배경이 넓을수록 좋다. 그 한 권의 책 곳곳에 녹아있는 모든 인용문을 뽑아낸다. 소설이 되었건, 시가 되었건 아니면 음악, 그림, 사람, 지리와 공간 그리고 역사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본다. 어쩌면 무한히 펼쳐진 미로를 찾아 나서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유튜브 알고리즘과도 같이.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의 온 지식을 섭렵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공상이면서 망상이라고 했다.

일본의 어느 중학교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공부한다는 말을 들었다. 3년 내내 단 한 권의 책만 가지고,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일 - 농사짓기, 그림 그리기, 글쓰기, 탐방 등 - 을 경험해보는 실험적 학습이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일류 대학 진학하는 비율이 엄청 높아졌다고 한다. 시청률 급상승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했던 초등학교 ‘자물쇠반’이 생각났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밤 10시까지는 나올 수가 없고, 두 번 이상 화장실만 가도 탈락자라는 화인(火印)이 찍힌다고 한다. 현실이겠거니 싶었다.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에는 이미 알고 있거나 읽었던 지식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새로운 ‘알만한 것들’ 또한 가득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기고문, "겨울의 한가운데서도 내 안에 물리칠 수 없는 여름이 있음을 알았다"라는 카뮈의 그 유명한 편지 글, 류시화의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킴벌리 커버거의 원문,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잘랄라린 루미의 시(詩) <여인숙> 속 '저 너머에서 오신 손님' ,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와 릴케의 시 등 세기 힘들다.


나이 듦에 관한 두 가지 인용문이 떠오른다. 먼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s)>를 보자. 예이츠하면 술자리 권주가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라는 시구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나 이 지혜의 시는 많은 시인들에게 눈도장이 찍어 한 번씩은 인용한 듯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의 번역이다.


이파리는 많아도, 뿌리는 하나;
내 젊음의 거짓된 나날 동안
햇빛 속에서 잎과 꽃들을 마구 흔들었지만;
이제 나는 진실을 찾아 시들어가리.
- 윌리엄 예이츠, <지혜는 시간과 함께 온다>,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에서, 서울신문



한가로운 여름날 오후, 홀로 나만의 공간으로 마련

한 골방에 들여 박혀 있다. 십여 개의 화분에 물을 준 후, 책상에 앉아 블라인드 실루엣을 통해 창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낭송해 본다. 조금 감상적이 되면서, 더 착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챙겨 본다. 흔히 '노목에도 꽃은 핀다.'라고 하면서, 더 열심히 하고픈 일 다 하면 살라지만, 우리는 결국 늙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노쇠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섭리가 아프다.


다행인 것은 나이 드니 - 솔직하게는 퇴직을 하고 보니 - 보이지 않던 것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가진 것을 잃어 보니 느끼게 되는 지혜라고 보이지만, 사리 분별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듯하다. 욕심을 줄인 - 사라지진 않는다 - 탓일까? 시의 표현대로 거짓된 그리고 때로는 가식의 세월 동안의 흔들림을 뒤로하고, 나뭇잎과 꽃가지를 떨어뜨릴 준비를 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름답게 시들어가야 할터인데 그렇게 될까 모르겠다.




두 번째는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웬(Leonard Cohen)이 부른 <노래의 거탑(Tower of Songs)>이다. 레너드 코웬은 <나의 고독(Ma Solitude)>을 부른 프랑스의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와 쌍벽을 이뤘다. 586세대에게는 <I am your man>, <Seems so long ago, Nancy>로 잘 알려져 있다. 코웬은 2016년 83세의 일기로 생을 마무리했다. 깨알 상식을 덧붙이면 최영미 시인은 《시를 읽는 오후》라는 책에서 레너드 코웬의 노래 <As the Mist Leaves No Scar>를 <안개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로 번역하기도 했다.


때론 노래가 시보다 낫다. 간혹 유행가 가사에 눈물짓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1988년 발표되다. 연륜이 쌓이고 묵은 후 부르는 노래는 더 가까이 다가온다. "하늘 아래 일어난 모든 일에는 다 정해진 때가 있다."라는 성경 말씀이 맞다. 2008년 런던에서 열린 실황 라이브를 들어 보라. 여유와 관록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까지. 어설프게 번역해 봤다. 가사 뒤쪽으로 가면 "친구는 아프고, 천사가 찾아오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친구와 작별"을 인사한다. 인생의 마지막을 차분히 관조하는 노래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내 머리카락은 희끗해졌네.
젊은 시절 방황하던 그곳에서 병들어 버렸다네.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네.
나는 노래의 거탑에 매일 월세만 내고 있을 뿐이므로.
(Well, my friends are gone and my hair is grey.
I ache in the places where I used to play.
And I'm crazy for love but I'm not coming on.
I'm just paying my rent every day in the Tower of Song.
- 레너드 코웬, <Tower of Song>의 첫 부분






나도 인생의 반환점을 지났다. 땅보다는 하늘이 가까워진 나이다. 여태까지 새로운 만남이 80%이고 헤어짐이 20%이었다면, 점점 헤어짐의 비중이 더 커지는 교차로에 접어들었다. 그건 현실이고 경험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될는지도 모른다. 실패해도 좋고, 누구를 만나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인생 사계(四季)로 치자면 늦가을이다. 이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기 서러워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볼 참이다. 지혜는 시간과 함께 온다고 하니 많이 여유를 가져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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