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가?

달과 육 펜스 / 파우스트 거래

by 포레스트 하이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이 천성이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 ≪『달과 육 펜스≫, 서머셋 모음


서머셋 모옴의 『달과 육 펜스』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인간의 내면은 두 가지 천성, 즉 달과 육 펜스가 늘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본질을 꿰뚫고 있다. '달'은 정신과 이상을, 육 펜스는 물질과 재화를 은유한다. 우리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라고 말하는 거다. 일종의 정신적 지킬 박사와 하이드 투쟁이라고 할까?


"그 사람 천성이 절대 바뀌지 않아."라고 우리는 말한다. 조금 더 나가면 "사람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다."거나 "머리 검은 짐승 키우는 것 아니다."라는 공포스러운 속담 또한 살다 보면 너무 자주 경험하게 된다. 같은 뜻 다른 말이다. 인간의 천성 혹은 본성이 모순 투성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려면 끈기가 필요하다. 성실함과 고결함, 선량함이 알고 보니 그 사람의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사례는 소설,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흔하디 흔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지독하게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촌철살인의 글은 섬찟하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만일 변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가 어려서 그를 잘못 본 거예요.
- ≪해리≫ 중, 공지영


소설 《해리》의 문장이다. 사회봉사단체의 대표로 일하면서, 뒤로는 후원금을 빼돌리는 친구 이해리를 쏘는 직격탄이지요. 민주와 진보의 탈을 쓴 - 소설의 표현이니 오해 마시길 - 신부와 장애인 시민단체 대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소설의 간지 첫 글에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은 허구에 의해 씌여졌다. 만일 당신이 이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사정일 뿐이다."라고 쓰고 있지만, 바로 몇몇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우리의 본성은 본래 하나인가 아니면 둘인가? 본성을 변하는 건지 바뀔 수 있는 건지 타협의 여지조차 없이 오직 하나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동양에서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려는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바로 성선설의 모태이고, 본디 악해 빠진 인간을 법과 제도로써 통제하여야 한다는 이론이 성악설이다. 동양은 성선설에 심정적으로 가깝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너무 잦아진다.


유럽에서도 두 이론에 대한 부딪치는 지점이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을 주창한 토마스 홉스는, 본래 이기적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 즉 국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존 로크는 인간의 오성 중 자유로운 이성을 존중하여 성선설을 옹호한다.


스티븐 핑커의 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는 다소 중간자적 입장을 취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이 있는데 이성과 교육 제도를 통해 선한 본성이 더 많이 표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휴먼 카인드》는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지만, 결국 화합과 자선의 행동으로 발전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서로 협력하는 행동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신 심리학에는 '파우스트 거래'(Faustian Bargaining)라는 용어가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거래를 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매일 천사와 악마가 대립하고 있어, 어떤 때는 천사가, 어떤 때는 악마가 더 큰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서머셋 모음의 '달'과 '육 펜스'가 각자 필요할 때마다 등장하는 게 맞다. 결론적으로 조금은 바꿀 수 있다.


나 또한 늘 모순투성이에서 방황한다. 한없이 대인배였다가도, 어떤 때는 치사할 정도로 옹졸해진다. 욕심과 시기를 버리고 염치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삽시간에 무너지고, 자주 섭섭해하고, 화를 낼 때가 많다. 가면을 벗어야 하는데 그러긴 쉽지 않다. 사람은, 특히 직장인은 끝마무리를 깔끔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새겼었고, 그랬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면 그러질 못했다. 자주 돌아보며 후회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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