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기(少忍飢)) / 간인지간후반재(看人只看後半截)
어떤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을 돌기만 하고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한시(漢詩)를 떠올렸고, 이미지는 남았지만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달과 바람이 부는 자연 속에서 시름을 버리고 관조하는 그런 이미지였다. 한시가 수록된 모든 책을 다 끄집어내고 뒤적였지만 닿을 듯 말 듯 오리무중이었다. 일 년을 책꽂이만 못살게 굴었다.
어느 날 《한국의 명문》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가다 머리에 떠올랐다. 철학자이자 종교학자인 김흥호 교수의 《생각 없는 생각》의 서문의 글이었다. 늘그막에 인생을 관조하며 멋 부리며 살라는 글이다. 송나라 시대 문인 소강절(邵康節)이 쓴 <청야음(淸夜吟)-맑은 밤 읊조리다>이다. 선과 도를 깨우치는 혹은 성리학의 깨달음의 시라고 한다.
달은 중천에 떠오르고 찬 기운은 물결은 스치는데
이러한 깨끗한 맛을 몇 사람이라 알랴
월도천심처(月到天心處) 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 요득소인지(料得少人知)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들이 갑자기 풀리는 현상은 심리학 용어로 '브루잉 효과(Brewing Effect)'라고 한다. 커피를 끓이고 증류하다 보면 결국 진액이 뽑히듯 말이다. 한국 경영학의 대가 윤석철 교수는 '명현현상(暝眩現狀)'이라고 지칭했다. 명현현상은 병이 낫는 과정에서 열이 나거나 통증이 오는 호전되는 증상을 말한다. 머리는 쉬지만 뇌는 기억은 계속 활동하는 것이다.
한시 '청야음'을 떠올린 이유는 명료하다. 나이가 들어 관조하고 시비를 알고,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나를 보니 스스로 애처로워서다. 옹졸해지는 것 같고, 시기심이 터져 나오고, 짜증 내고, 불안하고 두렵고 누군가 밉고 그런 마음이 자주 들었다. 조지훈 시인의 '지조론'을 생각했다. 조지훈 선생 교수 시절 군사정권에서 관직을 맡아 달라고 매상 찾아왔던 모양이다. 박봉 생활에 지친 가족들이 관직에 나가라 보채니 '소인기(少忍飢)' 이야기를 들여 줬다고 한다.
광해군 폭정 시절 지조 있는 선비들은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다.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음풍농월하며 지냈다. 어느 선비의 집에 모였을 때 선비 아내가 수제비를 끓이려니 땔감이 없었다. 나무 궤짝을 땔감으로 쓰려 부엌칼로 쪼개다 젖무덤에 상처가 났다. 선비는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고서는 몰래 벼슬길로 나갔다. 광해가 물러난 후 반정에 몰려 그 선비는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사형장에 찾아온 친구에게 "소인기(少忍飢)할걸 소인기 할걸"이라 말했다. "조금만 더 배고픔을 참을걸"이라는 뜻이다.
지조론에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채근담》의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사람의 후반부를 보라.(看人只看後半截)"가 원문이지만, 조지훈 시인이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썼던 글로 더 알려져 있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쫓으면 한평생 분 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貞操)를 잃고 보면 반생(半生)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後半)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 조지훈 '지조론' 중 1960. 3
직장도 마찬가지다. 부장 달고, 임원 승진하기 위해 의리와 배신의 행태를 보이고, 권력 유지를 위해 주변을 내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때로서는 그 사람에게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떠나고 나면 다시 보지 않는다. 왜 연락이 안 오는지, 만나자 해도 시간을 미루는지 궁금하지만 이유를 모른다. 정부가 바뀌니 용비어천가를 읊는 사람들로 들끓는다. 소인기((少忍飢)와 간인지간후반재(看人只看後半截))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보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