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운이 좋아 살아남은 실패한 소년들

by 포레스트 하이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 하염없는 말라비틀어짐의 가을이다.
- 「염전의 가을_서해/오이도」, 『풍경과 상처』, 김훈


중년은 생애 주기로 치면 가을이다. 가을의 황혼 녘에 어설픈 자세로 선 중년의 감정은 애매하다. 생애 구분법에 따르면 30세~49세를 중년, 50세에서 64세를 장년 그리고 65세 이상을 노년으로 정의하고 있다. 30대의 나이를 중년으로 이름 붙인 건 기대 수명 60대 중반이었던 시절의 유산이겠고, 장년이라는 말도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다. 서양에서와같이 45세~64세를 중년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요즘은 50 플러스 세대 혹은 신중년이라고 호칭하는데 50~64세 사이의 계층을 일컫는다.


각설하고, 서점에 가면 중년 대상의 책들이 풍년이다. 『중년 수업』, 『중년의 배신』, 『이렇게 중년이 된다』, 『중년의 심리학』 등 끝도 없다. 회사의 지위로 대치해 보면 팀장과 부장, 나이로 말하면 퇴직 - 정년퇴직이건 명예퇴직이건, 해고 건 - 을 앞둔 50세 전후가 중년이다. 더 정확한 건 떠날 때가 다가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면 마침내 중년이다.


공자는 오십의 나이를 공자는 하늘의 명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중년이다. 최근 출판계에서도 어정쩡한 중년이라는 단어 대신 '50세'라고 단정 짓듯 드러내 놓는다. 주마간산 식으로 읽어 본 책만 해도 『50부터 뻗어가는 사람 시들어가는 사람』,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 『오십부터는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다』, 『이토록 멋진 오십이라면』등 적지 않다. 중년이건 오십세 건 책의 목차 순서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거의 이런 내용으로 흘러간다.


열심히 일했다. 50에 접어들고 보니 예전 같지 않다. 가족은 가족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자신을 몰라 주는 것 같다. 친구 사이도 소원해지고 있다. 자리도 불안하다. 경영진에 눌리고 부하직원들은 치고 올라온다. 건강도 뭔가 이상한 것 같다. 모아놓은 재산도 고만고만하다. 불현듯 삶이 낯설고 불안하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다. 챙겨야 할 가족이 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아이러니한 건 수많은 처방전이 뿌려놓지만 더 치열하고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천명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지난 삶을 다시 돌아볼 시간을 가져보라고 한다. 현실을 인정하고, 눈높이를 낮추면서 자신만을 위한 인생 3막을 준비하라고 한다. 공통 처방은 마음건강 챙기기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라는 거다. 대충 이렇다.


인정욕구를 버려라. 관계를 정리하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취미생활을 가져라.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시작하라.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사회 공헌 활동을 하라. 느슨하지만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라. 느리게 사는 연습을 하라. 무엇보다도 가족에 집중하라. 당신은 시간 부자다.


이런 책들의 전제는 회사와 일밖에 모르던 중년 남자들은 퇴직하고 나면 자존감을 잃고 만다는 점이다. 여전히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지만 그것이 착각일 뿐이다. 때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향수로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더 이상 중요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소설가 존 업 다이크는 『달려라 토끼』에서 대성장 시대를 거친 "미국 남자들을 모두 실패한 소년(In America, man is a failed boy)"이라는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불렸던 영화배우 김지미는 최무룡, 나훈아 등 4명과 남자와 살았다. 모두 이혼으로 끝났는데 김지미가 한 말이 걸작이다. 마초들과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후 경험에서 우려낸 결론이니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가만 보면 우리는 운이 좋아 살아남은 세대다.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었다. 다들 어린애였다.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 김지미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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