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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미국과 중국, 군사충돌 가능성"

새뮤얼 헌팅턴 저

by 우보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됐다. 러시아연방이 독립국으로 출범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대결 구도로 양분돼온 냉전체제가 해체됐다.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를 승리를 의미하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할 정도였다.


과연 역사가 종언을 고했을까. 1996년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대립 구도인 냉전체제가 문명 간 긴장이 고조되는 문명 간 충돌구조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2018년 현시점에서 보면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이 그동안 세계의 변화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과 이슬람의 충돌,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대표적 예이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사상 최초로 세계 정치가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
2. 서구의 영향력 감소, 아시아 문명의 경제력, 군사력 및 정치력 확대, 이슬람 인구의 폭발적 증가 등이 가시화되고 있다.
3. 국가들은 자기 문명권의 주도국 또는 핵심국을 중심으로 뭉친다.
4. 보편성을 자처하는 서구의 자세는 다른 문명, 특히 이슬람 및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5. 서구의 생존은 서구 문명을 보편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서구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헌팅턴은 탈냉전 세계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이념,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화라고 본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국가군은 일곱 내지 여덟 개에 이르는 주요 문명이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큰 국지적 분쟁은 판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 간 충돌이다.


헌팅턴은 세계에 존재하는 문명으로 중국,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8개를 들고 있다. 중국과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을 개별적 문명으로 규정한 것은 동의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들 문명의 가장 핵심이 되는 중요한 요소는 언어와 종교이다. 이와 관련,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영어사용 인구와 크리스트교 신도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서구의 퇴조를 뜻하는 것이라고 헌팅턴은 진단한다. 특히 비서구 사회는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고유문화의 부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서구의 몰락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헌팅턴은 완만할 것이라고 본다. 서구가 부상하는 데 400년이 걸렸으니 퇴장에도 그만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2020년에는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력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을 인용하기도 한다. 헌팅턴이 앞에서 인용한 서구 밖의 7개의 문명 중 어느 문명의 서구 도전이 제일 거셀까. 지속적 경제 성장으로 경제력을 키운 아시아와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이다. 인도도 빠른 경제 성장을 하면서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문명은 자기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도 매우 높다.


그러면 문명 간의 긴장 국면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까. 헌팅턴은 비슷한 문화를 가진 민족과 문화를 가진 민족과 국가끼리 뭉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조상, 종교, 언어 등을 가진 사람들과 뭉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문명에는 질서를 부여하는 핵심국과 소속국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중국 문명의 경우 중국이 핵심국이고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대부분 나라가 소속국이다.


헌팅턴은 가장 격렬한 대립은 이슬람 사회와 아시아 사회, 이슬람 사회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는 이슬람 사회와 중국, 북한 간의 군사적 유대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예정된 전쟁’에서 그레이엄 앨리슨은 미국과 중국간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경고한다. 신흥국이 기존 지배국의 위치를 위협할 때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있었던 충돌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정의하며 그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같은 주장은 1996년에 이미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했다는 사실이다. 헌팅턴은 ”서구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사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고 예상했다. 앨리슨이 주장이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헌팅턴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실제 미국과 중국의 교전 시나리오를 그려보기도 한다. 두 거인의 충돌로 중국, 일본, 한국이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얘기도 나온다. 헌팅턴은 이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한 서구의 과제와 국제적 과제를 각각 제시한다. 먼저 서구는 다른 문명에 대한 기술적,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이슬람을 견제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국제적으로는 안전보장이사회에 문명별로 종신 회원국 자리를 한두 개씩 배당하고, 문명 간에 공유하는 가치관, 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만이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이라는 게 헌팅턴의 제언이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냉전체제 붕괴 이후 세계적인 갈등 증폭이 문명에 기반을 둔 것이었고, 특히 최근의 미국과 중국 간의 글로벌 헤게모니 전쟁을 이런 문명 충돌의 관점에서 내다봤다는 측면에서 통찰력 있는 식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문명 충돌이 극단적인 무력충돌로 비화해 세계가 또다시 전화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헌팅턴이 제안처럼 지혜로운 노력이 필요한 데 그런 지혜와 역량을 서구와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럭비공 튀듯 단견의 승부에만 집착하는 트럼프, 중국몽을 꿈꾸며 ‘屈起’를 이뤄내려는 시진핑, 小兒的인 일본 등 헝클어진 리더십을 보면 미래를 밝게 내다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의 안전과 발전을 유지해가는 묘수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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