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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Feb 24. 2019

'아픔이 길이 되려면'/질병은 공동체 문제

따뜻한 책이다. 저자인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타인의 아픔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신선한 책이다. 건강 하면 그저 개인의 책임 문제로만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고나서 건강과 질병의 원인이 사회적이며, 그 대책도 공동체적 시각에서 마련돼야 함을 알게 됐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사회역학.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과문해서 사회역학이란 학문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참으로 의미 깊은 분야임을 공감하게 됐다.


이 책은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며 한국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한다. 예컨대 사람은 남녀 불문하고 차별을 경험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더 많이 아프다.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쉬지 않고 일해야 했던 노인들이나 에어컨은 꿈조차 꾸지 못하는 쪽방촌 사람들의 사망 위험이 더 높다. '불평등한 여름'이다. 



시카고시는 이 문제에 공동체적으로 대응한다. 폭염이 시작되자 시카고 당국은 75곳에 에어콘이 작동하는 쿨링센터를 설치하고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버스를 운영했다. 쿨링센터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그 결과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다.



경제 위기도 사람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한 국가들의 결핵발생률과 사망률은 각각 14%, 1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졸업하면 결핵 사망률이 평균적으로 31% 가량 줄어든다. 프로그램 운영 당시 공공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게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인 것이다.



경제 위기 때는 또 대량 실업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자살률이 상승한다. 그런데 스웨덴은 1991년에 경제 위기를 겪으며 근로자의 10%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자살률은 꾸준히 낮아졌다.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을 가동해 실업부조금을 지급했음은 물론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직을 도와 이들이 사회적으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자답게 강조한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 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한다.

"개인이 맞닦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중요한지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그리고 제안한다.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이 책 덕분에 사회역학을 알고, 가슴이 따뜻한 학자가 있음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건강과 질병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원인이 존재하며 그러기에 그 대응책도 공동체 사안임을 깨닫게 됐다. 좋은 책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문제를 제대로 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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