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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Nov 15. 2019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서 어떻게 탈출했는가

'불황탈출'(박상준 저) 서평


일본 경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잃어버린 20년’이다. 1980년대 초반에 일본 경제가 미국을 바짝 추격하자 미국은 엔화의 급격한 절상을 골자로 한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경제에 대해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달러당 엔화 환율이 일 년 사이에 240엔에서 150엔으로 수직 하락해 일본 경제는 ‘엔화 강세 발 불황’이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일본 경제는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오랜 기간 무기력한 상태를 지속해왔다.     



이런 일본 경제가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재기의 길에 들어섰다. 일본 경제는 20년의 긴 불황터널에서 빠져나온 것일까? 와세다 대학의 박상준 교수는 ‘불황탈출’이란 책에서 “사실”이라고 일본 경제의 탈불황을 명백히 밝힌다. 실제로 일본 경제는 올해 완전 고용(2018년 실업률 2.4%, 20대 실업률 3.7%)을 이뤘고, 주요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20대 인구가 60만 명이나 줄어들었는데도 20대 정규직 취업자는 오히려 33만 명 늘어났다.     



일본은 어떻게 긴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박 교수는 일본 정부의 정책도 정책이지만 일본 기업의 부활이 근본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먼저 일본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GDP 대비 3~4% 정도 수준의 순소득을 벌어들인 게 일본 경제를 되살리는 불쏘시개가 됐다.(한국은 0.3%) 여기에다 한국을 넘어서는 높은 연구개발비가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정부 예산과 일부 대기업의 연구개발비를 기준으로 한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4.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세계적 컨설팅 기업인 PwC의 발표를 보면 연구개발비 상위 1,000개 기업 중 일본 기업은 161개(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4.3%)나 되지만 한국 기업은 34개(3.4%)에 불과하다. 박 교수는 일본은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 독일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미래의 성장 동력에 관한 한 뚜렷한 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박 교수의 이런 평가는 혁신경쟁력 면에서 한국 경제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면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를 기준으로 해서 보면 한국은 1위로 9위인 일본을 크게 앞서고 있다.    


 

어쨌든 일본 기업들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표적 기업이 소니이다. PC와 TV 등 주력사업의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소니는 바이오 사업 매각, TV 사업 분리 등 과감한 개혁으로 8세대 게임기인 PS4를 성공시키면서 게임과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로 변신했다. TV도 프리미엄 시장에만 주력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박상준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암흑기를 탈출한 요인으로 기업 내 긴장감 공유, 과거 관행의 탈피, 개혁을 향한 리더십과 경영이념,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혁신에 성공한 요인치곤 일반적 분석에 그쳐 실제 그같은 변신이 이뤄진 구체적인 전략 실행의 과정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점 중 하나는 일본 경제 내에 퍼져있는 일종의 공동체 의식이다. 대부분 전문 경영인들이 경영을 맡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경영진과 근로자 간에 긴장감과 책임감이 공유되고 있다고 박 교수는 전한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지만, 선은 넘지 않아 중소기업과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이 임금이 대기업의 80% 수준에 이르는 이유이다. 이러다 보니 중소기업도 성장 가능성이 크고 직장 만족도가 높아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근로자로 이어지는 경제공동체적 구조가 일본 경제의 강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서는 이 조치가 일본 경제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박 교수는 이와 관련, 지난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를 일본이 극복한 사례에서 한국이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시 일본 기업인 소지쓰는 일본 정부 기구인 JOGMEC과 공동으로 호주의 희토류 생산업체인 라이너스에 출자해 해외 공급선을 확보했다. 아울러 히타치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산업용 모터를 개발하는 등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총력전을 기울였다. 그 결과 희토류 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가 2009년의 86%에서 2015년에는 55%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중국 업계가 적자를 내는 등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WTO가 2014년 8월 중국의 규제가 WTO 협정 위반이라고 판결해 중국이 체면만 구기게 됐다.     



박상준 교수는 이 책에서 정부 부채 문제도 짚고 있다. 일본의 경우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던 초기에만 해도 50%에 불과했다. 현재는 이 비율이 200%를 상회하고 있다. 이런데도 일본 정부가 버틸 수 있는 것은 국채 대부분을 일본 국내 금융기관이 매입하고, 그 자금원이 일본인들의 예금이기 때문이다. 일본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GDP의 200%에 이르고 있다. 박교수는 한국은 이 비율이 100% 정도 수준이어서 정부 부채를 늘리는 데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 경제가 장밋빛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마찰로 인한 악영향, 10월 중 이뤄진 소비세 인상의 부정적 여파 등이 우려되고 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도전의식 부족이 문제이며 한국의 청년 인재들이 일본보다 나은 점이 한국의 장점이라고 박 교수는 평가하고 있다.      



한 나라 경제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대개 분석은 정부 정책의 성공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불황탈출’은 일본 기업의 변신을 향한 절박한 노력이 성공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한 점이 일본 경제의 강점임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와 기업에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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