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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Apr 06. 2020

급여 줄여 해고를 없애다...그래비티 페이먼츠의 경우


1997년 말의 외환위기. 나라의 외환금고가 바닥이 나 국가가 부도위기를 맞았다. IMF의 긴급자금 수혈로 최악의 고비는 넘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파장이 기업, 그리고 근로자의 가정으로 격류처럼 밀려들었다. 당시 나는 YTN 경제부 차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교롭게 맡고 있던 일은 정부와 IMF 간의 긴급자금 공여 협상과 정책 대응 등 직접적으로 외환위기와 관련된 일이었다. 국가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취재 자체도 연일 강행군이었다. 이른 새벽, 밤샘을 가리지 않고 취재 현장을 찾았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회사 현금이 바닥났다. 월급을 못주는 최악의 상황이 반년 동안 이어졌다. 생활인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예금을 털어 쓰고, 보험까지 해지하면서 겨우 한 달 한 달을 버텨나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YTN은 증자가 이뤄져 위기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남은 직원들은 받지 못한 급여를 절반은 현금, 절반은 회사 주식으로 받는 선택을 했다.


경제의 큰 위기가 몰려올 때면 그 당시 겪었던 어려움이 떠오른다.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 국면에서 비슷한, 아니 더 심각할 곤경에 직면한 기업과 근로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감염 확산 억제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일상이 정지돼 매출이 수직 하락하는 상황. 문제는 전례 없는 이런 위기의 먹구름이 언제 걷혀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말 그대로 비상이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최근 색다른 접근을 하는 미국 기업 두 곳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먼저 최근 국내외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신용카드 결제 대행사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 Payments). 이 회사는 2004년 창사 당시 CEO인 댄 프라이스가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글을 읽은 후 최저 임금을 7만 달러로 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 만 3천 개 소기업의 카드 결제를 처리해주고 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거래 기업들의 매출이 급감해 역시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 회사가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져들자 프라이스는 일방적으로 경영진이 의사 결정을 하는 대신 210명의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 지난 3월 19일, 프라이스는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후 프라이스는 직원들을 소그룹으로 나눠 40시간에 걸쳐 이들과 만났다. 직원들과 얼굴을 맞댄 자리에서 프라이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직원들은 경영이 어렵다고 수수료율을 올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고객 기업들을 배려한 마음에서였다. 직원들은 특히 고용이 유지된다면 경제적 희생, 즉 급여 삭감을 감수할 수 있음을 밝혔다. 문제는 직원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일정 기간 버틸만한 사람도 있고, 가족의 실직 등으로 아주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직원들에 양식 서류를 배포해 개인적으로 감당 가능한 급여 삭감 폭을 적어내도록 했다. 그 결과, 6명은 해고가 없다면 몇 달 동안 급여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응답했다. 24명은 급여 절반 삭감도 괜찮다고 했고, 나머지 직원들은 일정 폭 급여를 깎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이 기업은 그래서 어느 누구도 절반이상 급여가 줄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인별 삭감 수용액을 받아들였다. 임원들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경영진과 직원들이 함께 ‘연대’에 동참한 효과로 그래비티는 9~12개월 동안 견딜 여력이 생겼다. 40명 정도를 해고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이 기업은 향후 경영이 정상화되면 직원들이 반납한 급여를 회복시켜 줄 계획이다. 프라이스는 “직원들이 이렇게 나선 동기는 어느 누구도 해고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https://www.fastcompany.com/90483711/how-one-tech-company-avoided-layoffs-even-when-revenue-was-cut-in-half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0/04/28104/


위기 상황에서 해고를 막기 위해 직원들과 경영진이 희생을 선택한 사례이다. 배에 탄 전원을 지키기 위해 서로 감당 가능한 고통을 분담한 기업은 그래비티 페이먼츠만이 아니다. 세일즈 포스(Salesforce)의 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고, 버즈피드와 GM은 해고 대신 급여 삭감을 선택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fA)의 움직임도 이런 관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재계 인사 중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BofA의 CEO인 브라이언 모히니안은 최근 이번 위기 국면에서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모히니안이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질문: 최근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모히니안: 우리에게 근로자들의 안정은 위기 국면에서 그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마다 상황이 다르다. 직원들을 지원해야 그들이 고객을 도울 수 있다. 직원들은 집에서 일하기 위한 장비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사무실에 나가야 하는 직원들은 서로 충분히 떨어져 일하고 있다. 우리는 콜센터 직원들의 초과 수당을 두 배 올렸다.


(For us, the security of workers is to try to keep them employed during the crisis. Different business models have different ramifications. We have to support our clients and support our teammates so they can support the clients. They have equipment and conditions for working at home. Those who have to go to the office have massive social separation of 15-20 feet. We’ve doubled the overtime pay in the call centers.)


https://www.barrons.com/articles/bank-of-america-ceo-brian-moynihan-on-putting-employees-first-51585845197?mod=hp_DAY_4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는 대공황을 넘어설 큰 위기로 평가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 모두 사실상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자금이 바닥나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로 인해 대량 실직이 일어나고 있고 실업률도 크게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희생을 통해서 회사와 동료를 지키려고 나서고 경영자가 고용 유지에 대해 확고한 약속을 하는 모습은 감동을 주는 상생, 공감 자본주의의 모범적 사례임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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