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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Jul 10. 2019

일본도 한국에 의존. 경상흑자 21% 한국에서 가져간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의도는 직접적으로는 일본 정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우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규제 대상 품목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일본의 억측은 ‘소설’일뿐이다. 문득 이번 조치를 놓고 트럼프와 아베 사이에 사전 교감은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오늘 자 ‘중앙시평’에서 “아베 정부의 대한 선공에는 미국 트럼프의 그림자가 함께 어른거린다. 하나는 제3의 탈아입미(脫亞入美)로 불릴 만큼,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적극 가담하여 미국-일본-인도-호주로 이어지는 미일협조체제, 트럼프-아베 신뢰 관계의 그림자이고, 다른 하나는 미일 안보협약과 무역역조에서 트럼프의 대일 선공을 차단하기 위한 한국희생·한국공격의 그림자이다”라고 진단했다. 침묵하고 있는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지켜볼 일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520569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무역전쟁을 벌이듯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포석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삼성 출신인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의 말이다. “한국이 메모리에서 거머쥔 패권을 비메모리에서도 확보해 반도체 양 날개를 다 갖추는 것을 일본은 두려워한다.”“일본의 소재 수출 제한은 한국의 반도체 패권이 커지는 걸 막으려는 정밀 타격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제 국력’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견제심리가 발동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에 다목적 의도가 숨어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520606


며칠 전 한 언론은 역대 경제 장관들의 ‘對日해법’ 제언을 보도하며 기사 제목을 “국력差 냉정하게 직시를,,,경제적 맞대응은 피해야”로 달았다. ‘맞대응 자제’에 대해서는 공감했지만, 그 이유로 ‘국력差’를 든 것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꼈다. 물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도 글로벌 무대에서 만만치 않은 국력을 보유한 국가이며, 특히 일본과의 국력差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좁혀지고 있다. 우리 하기에 따라 이 차이는 얼마든지 좁혀나갈 수 있다.



먼저, 경제 전체의 크기인 명목 국내총생산 GDP를 비교해보자. 일본의 GDP는 지난 1970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25.9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을 우리 경제가 지속하면서 그 배수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10.8배로, 그리고 지난해에는 3.2배로 좁혀졌다. 1인당 GNI는 30%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세계은행이 자체 방식을 써서 발표한 국민총소득 GNI의 지난해 국별 순위를 보면 일본은 5.2조 달러로 세계 3위, 우리나라는 1.58조 달러로 세계 11위이다. 일본과 아직 큰 격차를 보이지만, 우리도 11위 ‘경제 국력’을 가진 국가이다.


https://nschoi76.blog.me/221579921657


특히 그 차이는 계속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일본을 상회하고 있어서이다. 2015년~2018년 기간을 보면 우리나라의 실질경제성장률은 일본보다 1.2~2.3% 포인트 높았다. 지난해만 해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2.7%, 일본은 0.8%로 우리가 1.9% 포인트나 높았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보면 한때는 일본이 우리보다 수십 배가 많았지만, 지금은 두 배 정도의 격차로 좁혀졌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국력 차를 부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하지만, 우리도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가 아니며 그 격차가 계속 좁혀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최근에 구로다 전 선케이지국장은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국이 이만큼 풍요로운 나라로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에 대해 일본이 기여했다"라고 강조했다. 구로다 씨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지원된 3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과 경제개발과정에서 일본 기업의 투자 등을 거론했다. 일본의 협력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구로다 씨의 발언과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짚어봐야 한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177837


첫째, 3억 달러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은 전후에도 식민지 점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들어온 것이다. 일제는 36년간 한반도를 수탈해갔다. 우리 국민은 신체, 재산, 심리 등 모든 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받았다. 그 피해와 3억 달러가 비교 가능한 것인가.



둘째,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내용을 보면, 일본은 필리핀에는 5억 5000만 달러, 인도네시아에는 2억 2000만 달러의 돈을 제공했다. 지금 한국이 이룬 경제 성과를 이들 나라와 비교해 보면, 일본이 제공한 자금이 현재의 풍요를 가져오는 근거가 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작은 불쏘시개의 역할을 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가난한 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한국민이 하나로 뭉쳐 흘린 피와 땀의 결과 그 자체일 뿐이다.



셋째, 경제지표를 보면 현실은 한국이 일본을 돕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경상수지를 보자. 일본의 2017년 경상흑자는 1,958억 달러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대일 경상적자폭은 287억 달러에 달했다. 일본 경상흑자의 15% 정도가 한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한 셈이다. 기간을 넓혀보면 2005년~2017년의 기간 중 일본이 낸 경상흑자의 21.2%, 즉 5분의 1은 한국에서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무역에서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1965년부터 지난 5월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수출입 거래에서 누적적으로 6,130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관광객의 경우도 지난해 일본으로 여행을 간 한국인 관광객은 748만 명으로 한국에 온 일본인 관광객(295만 명)의 두 배 반 수준이다. 54년 전에 일본이 한국을 조금 지원해줬을지 몰라도 그동안 내내 일본이 한국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취해간 게 현실이다. 지금 누가 누구를 돕고 있는 것인가.



이런 면에서 보면 한일 두나라는 경제, 인적교류 등 여러 측면에서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말하는 게 맞다. 교역관계에서도 국제분업 구조 속에서 상호 도움이 되는 거래를 해온 것이다. 일본에서 핵심소재를 수입해 반도체를 만들어 일본은 물론 미국, 중국 등에 수출해 온 게 대표적 예이다. 이 같은 국제분업 구조를 무시하고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해서 그 소재를 무기로 삼는 것은 그래서 치졸한 무리수인 것이다.



어찌 됐건 이번 사태는 냉정하게 대응하면서 결국은 정치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맞대응하며 상황을 악화시켜 갈수록 한일 양국의 상처는 더욱 커지고, 세계 경제에 주는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어느 나라가 어부지리를 얻을지도 돌아봤으면 한다. 불룸버그는 중국을 지목했다.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19-07-09/japan-south-korea-trade-spat-may-play-into-china-s-hands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첫째, 한 나라에 소재든 부품이든 장비든 절대적 비중을 의존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세계 무역질서가 자국 이기주의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에서 이 같은 편중적 대외 의존 구조는 언제든 ‘힘든 일’을 당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둘째, ‘축적의 힘’을 비축해야 한다. 일본이 소재 등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힘은 기초과학을 중시하는 토양 위에서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파온 ‘과학 장인’들에서 나오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만 20명이 넘게 나온 이유이다. 특히 이 축적의 원동력이 일본 경제의 풀뿌리인 중소중견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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