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과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이다. 참사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유가족들은 그날의 고통과 슬픔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은 가슴에 한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 본문의 시는 그런 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자 몇 년 전 "잔인한 4월의 눈물( https://brunch.co.kr/@nsh-607/4 ) "이란 글을 작성하면서 적은 것이다.
'뼛속까지 녹아버린 통증은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썩어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라가 된 채,
침몰한 시간이 토해낸 한 줌의 유골에
심장을 박아 넣은 어미의 절규는
단장(斷腸)의 메아리인가,
부질없는 미망(未忘)의 집념인가.
○2막
아우성치는 뇌리에 흘러내리는
밧줄 하나 없는
빈사(瀕死)된 주검
소리 없이 떠오른 부레 없는 푸른 등뼈만
유유히 방을 거슬러 오르는데
"정녕 그 숨죽인 절규가 안 보이느냐"
"저 정사(情思)의 가없는 혼돈이 안 들리느냐",
돌아오지 않는 배는 온갖
소문을 달고
붉은 그림자마저 기억을 지우면
어둠의 페르소나(persona)들은 비정(非情)한 단문을 허공에 매단다.
'이제 그만 잊으라'
'자식팔아 한 몫 챙겼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익명의 비수(匕首)는 그렇게 어미의 피 묻은 심장을 조금씩 저며 낸다.
○3막
생령(生靈)들 위에 그렇게 춤추던 무리들 해 저물자 제각기 감열(感咽)한 길로 자취를 감추는데
수심에 사멸(死滅)된 피맺힌 울부짖음은 여전히 적멸(寂滅)을 잉태하고
거미줄 늘어진 형체도 없는 유골 한 조각 던져진 방은 지하로 속절없이 침잠(沈潛)하다 기다림에 지친 붉은 눈동자는
파도를 타고 먼 길을 나서는데
애타는 지문(誌文)은 그마저 닳아 없어지고
낯익은 수면의 파동에
어김없이 짓무른 속살을 한 거풀씩 벗겨낸다
그 위를 헤집고 뛰쳐나온 피 묻은 손가락 하나 어미를 가리킨다.
제 귀를 파먹으며,
숫제 눈 하나를 가린 채,
물의 방(房)에 잿가루로 흩어지고 그렇게 꿈은 먼지가 되어 떠나간다.
"울지 마 이제 그만...", (미안해, 나 때문에.."), (잘 있어...)
이제는 안다 그날의 일을.
어찌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날의 기억을.
이제는 알지도 모른다 그날의 침묵을.
어떻게 부정하랴 그날의 존재를.
하지만
아직도 모른다 그날의 이유를.
누가 알면 나에게 좀 가르쳐다오..
그날의 진실을.. 제발...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
◇ 에필로그
별이 뜨지 않는 사각 방 녹슨 폐선은
귓문을 닫아걸고
접혀진 시간들 사이로 숨겨진 흔적들, 오르지 않는 낮달을 끌고 내려온 길 잃은 바람은
돛대 위에서 울음을 타전(打電)한다.
침묵에도 흔들리지 않던 방은 마침내 별을 찾아
항진(航進)한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없는 푸른 궁전엔 시퍼런 물거품만 떠다닐 뿐..
팽목항 어디에도
그 흔한 인어의 전설은 없었다.
둥지 잃은 별들만 긴 하루를 접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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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보다시피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과 한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의 전설에 빗대어 풀어낸 것입니다.
사고 당시 팔다리가 다 잘려나기도 좋고 눈멀고 귀먹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돌아오라던 팽목항의 피맺힌 절규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더욱이 당시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던 비방과 유가족들을 향한 손가락질에 가슴을 때려가며 울부짖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어찌 그리도 잔인할 수 있는지.., 내 부모와 내 형제가 죽어도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었겠는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있고 그래서 천국이라는 곳도 존재한다면 부디 그곳에서나마 모든 걸 다 잊고 평안히 안식할 수 있기를 빕니다. 더불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그나저나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차기 정권에서는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될 건데.., 지금도 선제타격 운운하며 북한에 대고 도발을 하니, 그것도 생때같은 우리 국군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말입니다. 참 걱정이 아니 될 수 없군요. 부디 금도(禁度)는 지켜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