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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Dec 02. 2021

멋진 우정을 쌓으려면

친구를 대할 때의 마음 가짐

  

   “엄마! 나 학교에서 엄청 좋은 일 있었어.”

   “우와! 뭔데?”
   “나도 베스트 프렌드가 생겼어!”
   라온이는 유치원 시절 내내, 초등학생 1학년이 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짝이 없었다.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다. 여러 명과 아주 친하지도,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며 두루두루 놀던 것이다. 담임은 그것이 라온이의 장점 중 하나라고 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녀석에게 언젠가는 자연스레 각별한 친구가 생기리라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게다.
   “우와! 누군데?”
   “바로바로 김OO!”
   의외였다. 지금껏 학교생활 얘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 이름은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라온이는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원래 김OO이랑 이OO가 베스트 프렌드였는데, 이OO가 배신을 했대. 엄마, 배신이 뭐야?”
   “배신? 음…… 믿음을 깨버리는 거.”
   “이OO가 김OO을 배신했대. 그래서 나한테 베스트 프렌드 하자고 했어.”
   “그래서 라온이는 어떻게 대답했어?”
   “좋다고 했지.”
   이런 식으로 단짝이 생길 줄이야!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조금 더 아름답고 훈훈한 과정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쉬움은 잠시였다. 라온이가 기뻐하니 나도  좋았다. 또한 모를 일이다. 비록 시작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둘이 돈독한 우정을 쌓으며 서로에게 그야말로 좋은 친구로 발전하게 될지도.
   “그런데 왜 라온이한테 베스트 프렌드 하자고 한 거야? 둘이 원래 친했나?”
   “응. 요즘 친하게 지냈어. 원래는 김OO, 이OO, 박OO 이렇게 셋이 친했거든. 그런데 내가 팽이(종이 팽이)를 잘 접으니까 박OO가 나도 끼게 해 주자고 했어.”
   “그래서, 라온이가 그 삼총사랑 친하게 지내게 된 거야?”
   “응.”
   삼총사 무리에 끼게 된 과정까지 들으니 왠지 염려가 됐다. 혹시 라온이가 친구에게 맞춰주기만 하고 이끌리는 건 아닌지……. 나는 밝게 웃으며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라온아, 중요한 건 그 친구들이 라온이를 끼게 해 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라온이가 거기에 끼고 싶은지 아닌지야. 만약 안 끼고 싶으면 ‘난 괜찮아.’하고 거절해도 되는 거고. 라온이 마음이 중요하지. 라온이는 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거야?”
   “응.”
   “그럼 된 거야. 우리 라온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거 자체가 아주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지. 라온이랑 단짝이 된 김OO는 참 복이 많은 아이다. 엄마가 만약 학생인데 반에 라온이 같은 아이가 있으면 엄마도 단짝으로 지내고 싶을 거야. 그렇게 되면 엄청나게 행복할 거고.”
   “흐흐. 우리는 이미 가족이잖아.”
   “그래. 그래서 엄마가 복이 참 많은 거지. 라온이 같은 아들을 두어서 매일 함께 있잖아.”
   어찌 됐건 내 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는  다행으로 여길 법도 한데, 나는 마냥 축하와 응원만 해줄 수는 없었다. 라온이를 삼총사에 끼게 해주자던 박OO라는 이름이 익숙했다. 반에서 제일가는 개구쟁이이자 말썽꾸러기였다. 기발한 장난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수업에 방해가 되곤 해서 선생님의 주의를 자주 받았다. 친구를 골탕 먹이는 일도 잦았다. 특히, 라온이처럼 순한 성격의 친구에게 더욱 짓궂은 편이었다. 언젠가 라온이도 그 아이 때문에 속상한 적이 있었고 담임의 중재로 사과를 받았었다.
   박OO와 삼총사를 이루며 친하게 지냈던 두 친구는 어떤 아이일까? 그들 중 한 명인 김OO와 단짝이 된 것이 괜찮은 일일까? 아주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왠지 그 삼총사가 친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라온이랑 어울리려는 걸까? 라온이는 학생으로서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내왔다. 평소 모습으로 보아 학교 생활도 바르게 하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담임과의 정기 상담 시에도 확인했다. 담임에 따르면 라온이는 매우 순탄하게 지내고 있는,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아이였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내 아이에 대한 걱정 때문만이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소중한 자식을 문제아로 판단하면 안 되건만, 내가 그 오류를 범하고 있다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나는 하나의 질문을 떠올린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잠시간의 생각 끝에 바로 답을 찾았다. 나는 내 아이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올바름’을 단단하게 지키는 멋진 사람이길 바란다. 그 누구를 만나건 말이다.

  그제야 머릿속이 맑고 시원해졌다. 라온이에게 해줄 말도 선명해졌다.
   “라온아, 김OO이 우리 라온이랑 단짝이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라온이가 멋진 친구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줘야 해. 한번 생각해보자. 아주 어린아이들은 주로 누구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게 될까?”
   “엄마.”
   “맞아. 주로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지. 그래서 부모는 아이 앞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거고. 그런데,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다니면 그때도 여전히 부모만 따라 할까?”
   “아니. 친구 따라 해.”
   “맞아. 부모 아니라 친구도 따라 하게 돼. 엄마가 늘 말했지? 놀이터나 주변에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 라온이를 보고 따라 할 수 있으니까 늘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이제 김OO이는 라온이랑 특별한 사이가 되어서 더욱 라온이의 영향을 받게 될 거야. 그러니까, 라온이가 올바르고 멋지게 행동하는 게 더 중요한 거야. 만약 김OO이 라온이 덕분에 더욱 멋진 친구가 되면 어떨 거 같아? 참 좋겠지?”
   “응.”
  
  누군가와 어울릴 때 자신이 그 사람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소 과장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과 유사한 것이면 좋겠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자식 앞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이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타인과 어울릴 때 그와 같은 결의 마음으로 임한다면 늘 올바르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그런 마음을 지닌 이들의 우정은 눈이 부시게 빛날 것이다. 내 아이들이 그런 우정의 주인공이면 얼마나 좋을까나!


 덧. 그날 이후 라온이는 단짝이 있어 너무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며 그 친구와의 일들을 전해주었다. 단짝에게 특별한 팽이를 접어주는 것은 물론이요, 세심하게 신경 쓰고 야무지게 챙겨 주는 라온이가 사랑스러웠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김OO이 ‘꿩 대신 닭’의 마음으로 라온이에게 말했던 게 아니었음을. 라온이가 멋진 친구기에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것이다. 김OO은 앞으로도 계속 라온이와 단짝으로 지내고 싶다고도 했단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알고 보니 라온이만큼이나 단짝도 멋진 아이였다. 둘의 우정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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