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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Dec 24. 2021

링컨,이순신,세종 대왕을 닮았어도 반드시 챙겨야 할것

 

  도서관이 주는 '고요의 힐링'이 좋다. 이따금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도 연주로 들린다. 일주일에 한 번 그 분위기를 우리 집에서도 맛볼 수 있다. 매주 수요일 밤이다. 다른 요일은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이나 내가 책을 읽어주지만, 수요일은 관에 있는 것처럼 각자 조용히 읽는다.

  네 식구가 거실 탁자 앞에 둘러 앉아 저마다 원하는 책을 펼쳤다.

   “엄마, ‘오케스트라’가 뭐야?”

  여섯 살 로운이가 앙증맞게 물었다. 녀석은 요 며칠 위인전들을 꺼내 들곤 했는데 그날은 세계적인 지휘자인 ‘카라얀’을 읽었다. 집에 있는 위인전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었지만 여섯 살에게는 낯선 단어들이 제법 됐다.

 나는 로운이를 보며 손가락을 입에 대 보인 뒤, 속삭이며 답해주었다. 로운이도 목소리를 낮췄다가 또 다른 질문을 할 때면 속삭이는 걸 깜빡했다.  
  “엄마, ‘신동’이 뭐야?”
  “엄마, ‘어깨너머로’가 뭐야?”

  “엄마, ‘안달’이 뭐야?”

  여덟 살 라온이가 거친 한숨을 내뱉으며 조용히 해달라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자 로운이를 노려보며 눈빛 레이저를 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운이는 머릿속 물음표를 지우는 일에만 몰두했다. 형이 폭발해서 버럭 소리를 지른 순간에도 하던 질문을 마저하는 꿋꿋함이란. 

  나는 라온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답답함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로운이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섯 살 호기심 요정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 세례를 다시 시작했다.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어느덧 잘 시간을 훌쩍 넘겼다. 로운이는 나의 설명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면 짜증스레 반응하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졸음 탓이었다. 내가 그만 읽고 자러 가자고 하니 녀석은 얼굴을 찌푸렸다.
   “히잉. 나 조금밖에 못 읽었어.”
   “그래. 오늘은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조금 밖에 못 읽었지? 그럼 우리 내일은 좀 더 길게 읽을 수 있도록 일찍부터 책을 읽자.”
   “아니, 지금 더 읽고 싶어!”
   양 눈가에 졸음이 짙게 깔렸는데도 고집을 부렸다. 잘 시간이 훨씬 지났고, 다음 날 유치원에 가려면 그만 자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힘껏 젓더니 울상을 지었다. 꿈나라로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책 때문에 버티는 것이었다. 이렇게나 책을 좋아하는데…….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마음을 정했다.

  “어머나, 우리 로운이가 책을 좋아하는 게 꼭 링컨 같네. 링컨도 책이 너무 좋아서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었잖아.”
   얼마 전 ‘링컨’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로운이다. 내 짐작대로 녀석은 눈을 크게 뜨고 반짝였다. 눈빛에 자부심이 담겼다. 나는 말을 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건 세상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의 특징이지. 링컨도, 이순신 장군도, 세종 대왕도 모두 책을 좋아했어. 우리 로운이도 그분들의 특징을 갖고 있네. 분명히 위대한 사람이 돼서 지구에 엄청난 일을 할 거야. 그런데, 위대한 사람 중에는 안타깝게도 건강 관리를 잘못해서 하늘나라로 일찍 떠난 사람들이 있어.”
   “누구?”
   “예를 들어서…… 이 휴대폰 있지? 지금은 사람들이 누구나 편하게 휴대폰으로 영상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사진도 찍고, 길도 찾지? 이렇게 휴대폰으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은 건강 관리는 잘못했어. 그래서 일찍 하늘나라로 갔지.”
   “그 사람이 아팠어?”
   “응, 많이 아팠어. 만약 그 사람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지구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더 많이 만들었을 텐데……. 참 안타깝지? 엄마는 건강 관리를 잘할 거야. 로운이도 그러면 좋겠어.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지구를 위해 위대한 일들을 함께 많이 하는 게 어때?
   “좋아.”
   “역시!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잠을 잘 자는 거야.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지. 그러니까 지금은 자러 가고 내일 다시 책을 읽을까?”
   “응.”
   로운이는 결의에 찬 얼굴로 씩씩하게 걸어서 침대로 갔다.
 
   아이가 책을 더 읽겠다며 고집부리는 기특한(?) 모습에도 나는 끝내 책을 덮게 했다. 어떤 경우에도, 그 무엇을 얻는다 해도 ‘건강’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한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알고 있던 나다. ‘건강이 우선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이 말들은 내 가슴에 잠시 앉았다 금방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서른다섯에 맞은 큰 사건 이후 나의 뼛속까지 들어와 자리 잡았다.
   ‘아빠와의 영원한 이별’이 나를 바꿨다. 아빠는 암 진단을 받은 후, 두 달 반 만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빠를 보고 싶고, 손잡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면 눈물을 삼키며 목구멍의 쓰라림을 견뎌야만 한다. 정말이지 아빠와의 이별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나는 슬픔 속에서만 살고 있지 않다. 아빠가 남겨주신 소중한 선물들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채우려 노력 중이다. 건강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도 그 선물 중 하나다. 아빠 덕분에 내 삶에서 ‘건강’은 매우 소중한 가치이자,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엄마의 가치와 기준은 육아에도 고스란히 녹아든다. 내가 꾸준히 강조했더니 라온이와 로운이도 건강의 소중함을 잘 안다. 하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피자, 치킨, 과자, 사탕을 좋아한다. 분명 해로운 음식이지만 나는 철저히 막지는 않는다. 녀석들도 유치원, 학교, 놀이터 등에서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먹거리에 깐깐하게 구는 것은 어려움이 있고, 너무 먹고 싶은데 참게만 하면 마음 건강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도 한때의 나처럼 건강의 소중함을 머리로만 아는 걸까? 아니다. 내가 꾸준히 연습시키는 것이 있다. 몸의 말에 귀 기울이기! 나는 녀석들의 몸이 하는 말을 해석해주었다. 소변 색이 노랗다면 “그동안 물을 너무 안 마셨다는 걸 몸이 알려 주네. 물 좀 많이 마시자꾸나.”, 방귀 냄새가 고약하면 “그동안 몸에 안 좋은 것들을 너무 많이 먹었다고 몸이 알려주네. 당분간은 몸에 좋은 것만 먹도록 하자.”…….
   두 꼬마는 몸이 알려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걸 당연시하고, 좋아하는 거지만 건강에 안 좋 당분간 참았다. 그 결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깨닫곤 했다. 몸에 대한 책임을 키우는 경험을 쌓은 것이다. 물론, 몸의 이야기에 더디게 반응하거나 모르는 척하려는 때도 있지만 내가 타이르고 이끌어주면 결국은 멋진 실천을 해냈다. 녀석들의 기특함에 나는 아낌없는 축하와 칭찬을 해주었다.


   ‘몸이 주인을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그 주인이란 몸과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몸이 얼마나 속상할까? 힘들다고, 문제가 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외면당하기 일쑤일 테니까. 몸은 자신이 얼마나 토라지고 심통 났는지를 ‘건강의 이상’으로 드러내고 만다. 부디 내 아이들은 지혜로운 주인이 되길 바란다.
   자신의 몸과 소통하고 건강을 지키려는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단단히 키워야 한다. 아이가 그 습관을 갖추도록 꾸준히 지도하고 도움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문득 진한 한숨이 나온다. 건강을 지키는 일을 뒷전에 두어야 하는 아이들이 떠올라서다.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 시간에 책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 말이다. 학습적인 능력을 키우려고 몸과의 소통 능력을 못 키우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말한다. 아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그러는 거라고. 과연 건강을 뒷전에 두고 외면하는 삶이 보다 나은 삶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아이의 몸이 토라지고 심통 나서 건강이 깨져버리는 위험을 안고서라도 그리해야 하는 걸까?

 
   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면 몸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그것은 삶에서 큰 자산이다. 그 자산을 갖춘 사람만이 꿀 수 있는 위대한 꿈이 있다. 오랫동안 지구에 머물면서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런 꿈을 꾸는 삶이야 말로 보다 나은, 멋진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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