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을지 말지 정해주지 않고 왜 환자에게 물어보는 걸까?
“1개월 전부터 허리가 심하게 아프고 왼쪽 다리도 너무 저려서 왔어요.”
“MRI를 보니까 요추 4번 5번 사이의 디스크가 터져 나와 신경을 꽉 누르고 있습니다. 마비 같은 신경학적 증상은 없으니 우선은 약물 치료와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서 비수술적 치료를 시작해야겠습니다.”
6주 후
“선생님, 약도 계속 먹고 있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도 계속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요”
“비수술적 치료에도 통증이 호전이 안 되니 수술을 고려하는 게 좋겠습니다. 수술받으시겠어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정해주시는 게 아니라, 수술할지 말지 제가 정해야 하나요?”
척추 문제로 병원을 다니다가 비수술적 치료에 호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수술을 권유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척추 전문의가 봤을 때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라고 환자에게 얘기하겠지만, 위의 대화처럼 ’수술 받아 보시겠어요?’라고 수술을 '권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과 같은 질병은 ‘수술을 해야 합니다’라고 의사가 의학적 판단을 내려줍니다. 하지만 척추의 경우 왜 수술 여부를 환자에게 물어보는 것일까요?
추간판 탈출증, 척추관 협착증이 있을 때 반드시 수술을 받도록 권유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된 경우입니다. 신경학적 증상의 예로는 심한 마비, 마미총 증후군, 척수병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경학적 증상은 없이 통증만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신경학적 증상은 없으니까 수술은 하지 말고 약물 치료, 물리치료, 운동, 경막외 스테로이드 주사와 같은 보존적 치료만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비록 통증만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보존적 치료에 호전되지 않는 통증이 지속되며, MRI 영상에서 수술적 치료를 통해 통증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판단되는 병변이 있다면 수술적 치료받는 것이 환자에게 더 이로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척추외과의는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수술을 합시다’가 아니라 ‘수술 받아보시겠어요?’ 라고 '권유'를 하는 것일까요? 환자는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술을 받을지 말지를 왜 환자한테 물어보지? 그건 의사가 나한테 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저 또한 전공의 시절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의료 지식이 없는 환자에게 수술을 받을지 여부를 물어본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 간과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통증은 ‘주관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증
교과서에 나오는 통증의 정의는 ‘실질적이거나 잠재적인 조직 손상, 혹은 이러한 손상에 관여하여 표현되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불유쾌한 경험’입니다. 동일한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 동일한 자극이라도 통증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혈액검사를 하면 나오는 백혈구, 전해질 수치와는 달리 통증은 객관적인 수치로 계량화 할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을 시각통증등급(Visual Analogue Scale), 숫자등급척도(Numerical Rating Scale)를 이용해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매기기도 합니다만 이 역시도 환자 스스로 느끼는 통증의 강도를 환자 스스로 주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것입니다.
즉, 똑같은 길이와 깊이로 칼에 손가락을 베여서 왔더라도 A 환자는 8점으로, B 환자는 4점으로 다르게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관적’이라는 통증의 특성으로 인해, 통증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은 환자도 수술 결정에 일부 참여해야 합니다. 수술을 권유받은 환자는 스스로 느끼는 통증이 견딜만하다면 수술을 받지 않고 보존적 치료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할 정도면 수술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결국 환자 본인만이 판단할 수 있는 주관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수술 할지 여부를 환자에게도 물어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