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오름 둘레 길, 야자수 매트 깔린 계단을 내려오다 길 가운데 서 있는 노루와 딱 눈이 마주쳤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노루의 까만 눈앞에서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선채 한껏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있다 잠시 후 한발 짝 내려갔다. 순간 노루는 옆의 숲으로 폴짝 뛰어들었지만 멀리 가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또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작게 속삭이니 알아듣는 것 같아 조금 더 다가섰지만 노루는 가만히 서 있었다.
이곳에서 가끔 노루를 만났고 지난해 두 마리가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혼자 노는 녀석이 외로워 보였다.
제주도 숲에서 노루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고 노루 또한 사람들이 익숙해서 별 두려움이 없다. 그래도 가까이 가면 휙 달아나는 게 일반적인데 신기하게도 이 녀석은 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눈에 경계가 없었다.
노루와 나는 제법 긴 시간 그렇게 서로 바라보다 내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안녕, 안녕, 말하며 손을 흔들어도 녀석은 여전히 미동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열 발짝 쯤 걷다 보니 살짝 후회가 왔다. 좀 더 있다 올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