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문화관 단상 12 - 복숭아꽃 밭에서
강원도 흥업면 매지리 79(회촌), 이 마을은 31-4번 버스 한 대만 들어오는 종점 동네다.
토지문화관, 원주 농악전수관, 아쉬람(흙집 짓기 실습, 교육) 등 의미 있는 공간들이 있고 토속 음식점과 찻집도 있다. 옥수수, 감자, 복숭아 등의 농작물을 원주시 인증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감자처럼 담백한 마을 사람들도 있다.
처음 간 날 창을 열자 창 밖에 키 큰 나무 한그루가 움이 보일 듯 말 듯 서 있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기운이 돋아나던 나무에서 팝콘이 터지듯 톡톡 꽃이 피어났다. 어느 날 아침 창을 여니 눈꽃처럼 나무 가득 피어난 꽃이 방안으로 향기를 불어넣었다. 매화였다.
때를 맞추어 논둑은 민들레를 비롯한 이름 모르는 들꽃들이 덮었고 산과 골짜기는 벚꽃이 만개했다. 40분쯤 걸어가면 전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연세대 미래 캠퍼스도 있었다. 이 학교의 저수지 둘레 길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데 운 좋으면 수달도 만날 수 있다.
4월이 익을 무렵엔 언덕의 과수원마다 분홍빛 복사꽃 망울이 터졌다. 그러자 골짜기마다 환장하게 고운 개 복숭아꽃이 보란 듯이 춤추었다.
어느 작가는 “이름 앞에 개자가 들어가는 식물이 더 아름답다.” 했다.
내가 지낸 3~ 4월, 온 동네가 꽃밭이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원주의 풍경과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짧은 단상들로나마 이 글 마당에 써 둔다.
토지문화관에 입주한 본래의 목적은 별 성과를 못 만들고 있지만 한 때의 고운 추억은 오롯이 남았다.
그 마을에 지금쯤은 복숭아가 달게 익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