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업공간 엿보기
중국에서는 상업공간 설계를 하다 보면 '장경场景'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중국단어는 한자어가 많이 쓰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죠. 오히려 한자를 해석해서 의미가 더 명확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데 '장경场景'이란 이 단어는 한국말로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참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찾아봤는데 그나마 비슷한 단어가 그냥 Scene로 번역이 되기도 하는데, 책을 찾아보다 보면 scenescape란 단어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전문영역을 다루는 책들에서는 종종 '단어+scape'란 표현을 쓰는 걸 봤을 때 scenescape라는 단어가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장경이란 어떤 공간에서 보이는 스타일, 느낌, 주제.... 뭐 이런 종류의 개념입니다.
보통 영화나 연극 같은 데서 보이는 배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공간 디자인에 들어오면서는 그 의미가 조금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일본에는 시대적 배경이나 외국의 분위기를 옮겨놓은 상업공간이 많이 있습니다. 2004년 중국에 오기 전에 일본을 먼저 여행을 했었죠. 나름 일본을 좀 돌아보고 한국, 일본, 중국의 삼국을 좀 비교해 보고자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때 일본 쇼핑몰들을 보면서 신선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많은 상업공간에 '장경场景'에 많이 몰입하는 분위기입니다.
먼저 대표적으로 설명드릴 곳은 这有山이라는 곳입니다. 중국 장춘에 있으며 2019년 10월에 개장했습니다. 전체면적은 73600제곱미터에 총 투자비 4.7 억인민폐이며 시공기간은 약 4년이라고 합니다.
这有山(zhe you shan, 굳이 번역을 하자면 '여기 산이 있다'입니다)은 실내에 산을 만들고 그 경사에 따라서 상업시설을 배치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과감한 공간시도로 많은 화제를 몰고 온 프로젝트죠. 전문적 시각에 따라서 호불호가 나뉘겠지만, 그 화제성만큼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文和友(wen he you, '문화와 친구'정도로 해석될 듯)라는 프로젝트를 소개해 드립니다.
2012년에 창사长沙라는 도시에 등장해서 광주, 심천으로 확장되면서 많은 화제를 몰고 온 테마식당입니다.
전 얼마 전에 심천에 있는 곳을 답사해 보면서 느낌을 공감할 수 있었죠.
이곳은 1990년대의 중국 풍경을 실내에 옮겨놓은 테마 식당입니다.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지라, 이젠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어버렸죠. 일종의 중국판 레트로 열풍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몇 년 전만 해도 대기표가 몇 천몇 만이라는 기사가 연일 나왔었는데요. 제가 심천에 직접 가보니 과장은 아닌 듯했습니다
이들이 표방하는 목표가 '식당업의 디즈니'라고 공언하는 걸 보니 자신감이 대단한 듯싶었습니다.
근데, 최근엔 이들의 희망이 꺾인 듯싶습니다.
뉴스에서 보면 대규모 감원이 일어나고 성장이 멈춘 듯 보이네요.
전 개인적으로 이러한 류의 개발에는 회의적인 시선입니다.
잠깐 고객을 끌고 시선을 모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고객은 쉽게 질리고 금방 다른 '사진이 이쁘게 나올 HOT한 공간'으로 옮겨가기 때문이죠. 많은 투자비와 너무 명확한 공간 분위기, 그리고 변화가 어려운 공간 구조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시장에서 얼마나 투자성이 있는지는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한국에도 다양한 모습의 '장경场景'을 시도하는 상업공간들이 눈에 띕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더 현대서울'이 먼저 떠오르네요. 이 백화점은 기둥을 없앤 확 트인 공간에 실내 공원의 콘셉트를 들여다 놓았습니다. 확연히 공간을 해석하고 보여주는 내용에 대한 개념에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공간의 주제를 명사로 할 것이냐, 형용사로 할 것이냐에 따라 관점은 많이 달라집니다. 소비자들이 어떤 공간이 '매력적이다'라고 할 때 그 매력이란 부분이 어떤 인식작용에서 생기는지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어떠한 의미로 고객에게 전달되느냐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더욱더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선택에서 공간을 기획하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분명한 건 나라와 문화마다 갖고 있는 발전단계(혹은 소비자 인식)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걸 '컬처코드 Culture Code'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동일한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생겼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서로 다른 컬처코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고 각 문화마다의 개발 타이밍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게 있어 하나 더 올려봅니다.
중국 남경에 2021년 9월에 오픈한 南京建邺吾悦广场 프로젝트입니다.
실내에 약 400미터에 이르는 수로를 만들어서 화제가 된 쇼핑몰입니다. 상업면적 약 8만 제곱미터이고. 영국 설계회사 benoy에서 설계를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떠오르는 이유는 처음 중국에 오기 전에 방문했던 일본 오다이바의 VenusFort가 떠올랐기 때문이죠. 벌써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인데... 솔직히 일본의 그것보다 전체적으로 품질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비너스포트가 수경공간은 아니지만 실내에 하늘을 표현한 이미지가 너무 와닿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굳이 유사한 공간을 찾아보자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치안 호텔의 수로'가 떠오르도 합니다. 이 호텔이 1999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경场景' 만들기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욱 발전된 공간일 것이라 기대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네요.
'장경场景'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아마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공간을 모방하고 단순히 옮겨 놓는다는 생각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잠깐의 관심을 받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소비자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모양을 베끼는 것이 아닌 그 내면에 깔린 소비자들의 공감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점차 차별화가 어려워지는 시대, 공간의 차별화 역시 다른 마케팅과 마찬가지로 고객을 향한 '진정성'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