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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쏟기 Jun 15. 2023

'유 퀴즈 온 더 블록' 의자의 비밀

앉는 자세와 심리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유 퀴즈 온 더 블록 자주 보시나요?

한국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가끔 시간이 맞거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접하곤 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김은희 작가 편


왜 저렇게 작은 의자에서 무릎을 맞대고 불편하게 앉아 있을까?


이 의문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저 나름대로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바로 상해의 한 상점의 이미지를 보면서부터죠.


상해 长乐路624의 公路商店(공로상점:길거리상점이란 뜻)

이 상점은 단지 길거리에 있는 각종 맥주류를 파는 상점에 불과합니다. 안에는 자리가 많지 않고 맥주 진열로 꽉 차 있죠. 대부분 맥주를 사서 밖에 거리에 앉아 이렇게 지인들과 담소를 나눕니다. 뭐 그냥 한국의 여느 동네 편의점과 별 반 다를 바 없을 거 같죠?  다음 이미지들을 한 번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公路商店의 다양한 모습 (출처 : 인터넷 검색)
상해의 公路商店 (출처: 公路商店 페이스북)

어쩌면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들은 2021년도 이미지들인데, 상해의 봉쇄와 함께 이 지역이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인해 밤마다 너무 시끄럽고 번잡해서 지금은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현상들이 벌어지곤 한다는 겁니다.  


중국에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핫플레이스를 '打卡点‘이라고 합니다. 

打卡 da ka는 일반적으로 카드를 긁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요. 처음에 이 단어가 왜 이렇게 쓰이는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근데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일종의 인증숏~ 다녀갔다는 인증~ 뭐 이런 의미로서 打卡라는 단어가 쓰인다는 걸 알게 됐죠.

역시나 여기도 중국의 인플루언서들의 打卡点 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건축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 간의 거리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거리에 따라 일반적으로 인지하는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를 잘 정리한 내용이 Edword T. Hall의 Personal Space 4단계입니다.



1. 친밀함의 거리 (46cm 이하) :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한 유대관계
2. 개인적인 거리 (46cm ~ 122cm) : 일상적 대화에서 가장 무난, 격식과 비격식의 경계지점
3. 사회적인 거리 (122cm ~ 366cm) : 사무적인 대화, 별다른 제약 없이 제삼자 개입 허용
4. 공적인 거리 (366cm ~ 762cm) : 연설이나 강의 같은 특수한 경우


최근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어 있었지만(다른 의미의), 이미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간의 거리를 통해서 친밀감을 드러내곤 하죠


어느 택시 기사는 남녀가 탑승한 모습만 보고도 대략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재미있는 점은 부부간에는 앞 뒤 따로 앉는 경우가 많은데(결혼연차와 비례...), 불륜의 경우 대부분 밀접 접촉을 한다는 거죠.

 

이렇듯 '관계'를 이야기할 때 서로 간의 거리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프로그램에서 왜 그토록 작은 의자에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지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거리가 가까울수록, 격식이 해제될수록 우린 더욱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프로그램의 특성상 게스트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고, 이를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 이런 '콘셉트'를 생각해 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공간을 기획할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형태의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죠. 카페들에 놓여있는 의자의 형태와 배치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감성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중국에 와 중국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을 보았는데요. 그중의 하나가 식당에서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아닌 꼭 같이 붙어 앉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한국 연인들도 많이 그러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20년 전의 한국에서 건너온 저에게는 너무 극명하게 느껴지던 모습이었죠. 


어렸을 때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딱히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 앉거나, 옥상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무 대서든 서로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죠.

사회에 나와서 누굴 만나서 이야기할 때, 이렇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호텔 카페에서 또는 고급 레스토랑에 예약을 잡고 만나곤 하죠.  


앉는 형태, 방식, 공간.... 모두 우리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중국 쇼핑센터 설계 시 좌석형태에 대해 제안했던 내용 @NSPArchi

한국의 카페를 살피다가,

매우 재미있는 작은 카페가 있어 소개해 보려 합니다.

제가 위에서 설명했던 좌석과 앉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매우 재미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드네요.

연남동 커피냅로스터스 (서울)

특별한 공간 경험은 그 공간이 가진 시각적 표현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그 안에서의 다양하고 특별한 경험이 더욱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고객 개인의 경험적 행위를 유도할 수 있는 공간 연출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네요. 


더불어, 오늘 포스트의 주제와 같이 편하게 걸터앉고 어깨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서로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가까웠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서로 마주 보거나 나란히 앉는 것, 혹은 편하게 기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등 많은 자세와 우리의 심리는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제 조금 '유 퀴즈 온 더 블록' 의자의 비밀이 풀리셨나요?  


오늘은 한번 주변의 동료와 어깨를 붙이고,  어디든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바지가 더러워진다고요? 아마 그보다 더 많은 관계의 씨앗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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