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쏟기 Nov 22. 2023

약장사, 약 파는 사람들

약장사에게 당한 에피소드

“너 나한테 약 파냐?”

간혹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뭔가 원하지 않는 것을 제안하거나 권유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혹은 너무 상대방 말에 설득되어 그 진위를 의심할 때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말들이 있는 걸 보면 약을 파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마케팅이 뛰어난 모양입니다.




서울에 오기 전, 중국의 유행성 폐렴에 걸렸습니다.

몇 주전 감기도 아닌 것이 유난히 피곤하고 나른함을 느껴 며칠을 누워 있었죠. 혹시나 싶어 먹었던 감기약은 별 진도가 없고, 결국 최근 유행한다는 유행성 폐렴 약을 먹으니 좀 나아지더군요. 웬만해서는 병원을 가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러다 나을 거라 믿고 있었죠. 그렇게 몸의 무기력함이 조금 나이질즈음 목감기가 올라왔습니다. 목이 좀 불편해지더니 잔기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잔기침이 이어져서 서울에 오는 전날까지도 걱정이 좀 있었습니다. 발표를 해야 하는데 목상태가 안 좋으면 듣는 분들에게 불편을 드릴까 싶어서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약국에 들러 증상을 설명하고 약처방을 받았습니다.

간단하게 한약 비슷한 성분의 약과 목사탕을 받았습니다. 도합 해서 만원 좀 안 되는 비용이었죠.

약의 효과인지 심리적 영향인지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우려했던 것보단 발표가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말을 조금이라도 하면 잔기침이 완전히 떨어지진 않아 불편함은 남아 있었습니다. 샀던 약도 다 먹고 동일한 약을 사려고 이동 중에 한 약국에 들렀습니다.  


"어떤 약을 찾으세요?"

"(전에 먹던 약상자를 보여주며) 이 약을 찾는데요."

"아 이 약은 저희 약국엔 없습니다. 어떤 증상이신데요?"

"네 몇 주전에 유행성 폐렴증세를 앓다가 좋아지더니, 목에서 잔기침이 계속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약을 먹으니 좀 나아지는 거 같아서요."

"기존 약을 드시니 좀 나아지시던가요?"

"네 완전히는 아닌데 조금 괜찮아지는 거 같습니다."

"저희 약국에서 제가 따로 조제한 게 있는데, 성분은 비슷하고 아마 효과는 훨씬 좋을 겁니다. 이 약으로 드릴까요?"


전 가격도 안 물어보고 약사 말에 왠지 더 나을 듯싶어 그거라도 달라고 했습니다.

이틀 치를 주셨는데 해외로 나가야 하기에 하루치를 더해 구매를 했습니다.

봉지에 약을 담으면서 약사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약사님께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게 되었죠.


"열이 나거나 특별하게 심한 증상은 없었는데, 며칠 동안 무기력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이틀을 누워있었어요. 그러다 조금 괜찮아졌는데 그땐 왜 그런지 '고기'가 그렇게 당기더라고요."

"이전에 업무에 바쁘셨던지 아님 다른 이유였는지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허약해져서 기침이 올라오고 이게 오래가는 겁니다. 손님 증상은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원기를 보충해 주는 게 필요한 거 같네요."

"보약을 해 먹어야 하나 보네요. 그나저나 뭐 도움 되는 게 있나요?"

"저희 약국에서 최근 잘 나가는 000이 있는데 이거 한 박스 드셔보세요. 분명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벽에 전시되어 있는 은색의 큰 박스를 들고 보여주시려고 하더군요.

전 그렇게 큰 건 필요 없고 우선 작은 포장된 거 있음 하나 먹어볼게요 하면서 맨 앞에 전시되어 있던 같은 종류의 작은 포장으로 된 보충제를 집었습니다.


"이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이렇게 무심결에 카드를 긁었는데, 도합 5만 원 정도 금액이 나왔습니다.


집에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묘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 집에서 나오면서 약국에 들러 엊그제 먹던 5천 원짜리 약을 사려고 했었는데, 어느덧 제 손엔 5만 원짜리 약이 들려 있었으니 말입니다.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전 이 상황을 참 신기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그 상황에서 전 무장해제되어 약사님의 의견에 동조하고 스스로 추임새를 넣으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약을 사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어머니가 약을 샀냐고 물어보시기에,

'오늘 나 약장사한테 당한 거 같아...."라는 농담 섞인 대답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과거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시더군요.

한 번은 아버지도 길거리에서 약장사에게 홀려서 '명약'을 사 오셨다더군요. 절뚝거리며 들어오던 사람들이 약을 먹고 금방 나아지는 모습에 굉장하다 싶어 약을 사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냥 끓어먹는 차종류였답니다.


아버지는 그게 참 신기하셨던 모양입니다.


예전엔 이런 일이 참 많았었죠. 특히나 시골동네에서는 떠돌이 약장사들이 사람들을 모아 약을 팔곤 했습니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이런 행사가 있으면 옆집 아저씨, 뒷집 할머니 모두들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정신줄을 쏙 빼놓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이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그 상술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나 약을 파는 사람들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항상 있네요.

그렇다고 제가 약을 파신 약사님을 비판하거나 음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단지 저 자신이 생각지도 않다 10배의 비용을 내게 된 상황이 좀 웃기기도 하고 해서 몇 자 남겨보는 겁니다.)


특히나, 건강과 관련한 사항에는 '전문가'라는 분들의 의견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처럼 당연히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을 때가 많죠. 하지만, 과연 약을 파는 마케팅의 개념이 전혀 없을까요?


병원이나 약국도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이기에 분명 마케팅을 할 겁니다.

더구나 몸이 아파 심신이 쇠약해졌을 땐 더욱 공략하기 쉬운 소비자가 되겠죠.

그렇게 세상일이 흘러가나 봅니다.


어쨌든, 전 받아 든 약봉지를 오늘도 입에 털어 넣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도 잔기침은 조금씩 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 같긴 합니다.

'거금'을 주고 산 면역보충제는 곧 제 구실을 하겠죠.


그렇게 믿으려고 합니다.


"역시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 중국약보다 나은데?"라는 희망사항을 가지며 말이죠.


말은 약장사에게 당했다고 했지만, 마음만큼은 절대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렵니다.

증상이 호전되면 약값은 하는거니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중부동산 포럼을 마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