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모 쑹칭링宋庆龄 이야기
중국에서 지내는 추석은 조금 외롭습니다.
차례를 지내거나 추석날 아침 친척들이 모여서 집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죠.
한국인들의 명절습관과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상하이에 있는 저 같은 한국인은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맛난 것을 나눠먹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죠.
상황이 조금 생겨서, 이번 추석은 조금 더 외로웠던 거 같습니다.
바로 전날 추석날 아침 미팅이 생겼습니다.
잘 알고 지내는 중국친구가 상하이의 예전 조계지 쪽에 있는 '쑹칭링 고택'에 조그마한 커피숍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네요. 꼭 시간 내서 가보고자 한 곳이라 약속을 수락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전 날 상하이에 태풍이 불어 거리엔 온통 부러진 나무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일상으로 여기는 중국인들인지 태풍이 쓸고 간 맑은 하늘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습니다.
'쑹칭링宋庆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중국 근대역사를 보면 매우 유명한 '송 씨 3 자매'가 있습니다.
쑹자매 또는 송 자매(宋家姐妹, 宋氏三姐妹)는 쑹아이링(송애경宋蔼龄), 쑹칭링(송경령宋蔼龄), 쑹메이링(송미령宋美龄) 세명을 말합니다.
지금 대륙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평가에 따르면, 쑹아이링은 "돈을 사랑한", 쑹칭링은 "중국을 사랑한", 쑹메이링은 "권력을 사랑한" 여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남편들 때문인데요.
쑹아이링의 남편은 당시 중국의 재력가이자 재무관이었던 쿵샹시이고, 쑹칭링의 남편은 많이들 아시는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 그리고 마지막 막내인 쑹메이링의 남편은 중국 국민당의 총통이었던 장제스이기 때문입니다.
참 대단한 자매죠.
자매들이 모두 근대 역사에 있어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이들의 부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넘어서서 본인들 또한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지금 현재에도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들을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쑹칭링과 쑹메이링의 관계는 현재에도 민감하게 여기는 대륙과 대만의 관계와 연관이 되기에 가족의 슬픔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네요. 쑨원 즉 손문이 사망하고 쑹칭링은 국민당이 아닌 공산당인 마오쩌뚱을 지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자매는 정치적으로 갈라서게 되어 역사 이야기가 진행되죠.
쑹아이링은 쑨원 사망 이후 공산당을 지지하면서 생애 내내 중국 대륙에서 생활합니다. 마오쩌둥과 동년배인데 생일이 빨라 마오쩌둥이 누님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요, 쑨원을 잃고 남은 생애 홀로 지냈습니다. 제가 들렸던 곳이 쑨원을 만나고 두 번째로 이사했던 집인데 이곳에서 집가사를 돌봐주는 분과 같이 지냈다고 합니다. 집안 곳곳에는 당시 생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치는 이전에 제가 소개했었던 ‘우캉따샤武康大厦’의 바로 맞은편에 있더군요.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이곳에 '그곳'이었는지는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이곳은 상하이시 정부에서 관리해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요새는 중국의 많은 유적지들이 큐알코드를 통해서 사전에 예약을 하는 곳이 많아서 저도 안내에 따라서 20위안을 지불하고 오전 10:30에서 12시까지의 시간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못 가게 되면 바로 핸드폰에서 환불이 되니 참고하시면 되겠네요.
(참고) 우캉따샤에 대한 내용은 제글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1949)된 후 쑹칭링은 민감한 정치적 역할보다는 자상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이어갔습니다. 중국 내의 여성활동 및 사회복지 활동에 헌신하며, 중국의 국모로서 중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됩니다. 고택 내에는 비둘기를 키우는 우리가 있는데요,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회의 또는 세계인민평화회의등에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비둘기는 쑹칭링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쑹칭링과 3 자매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곳에서 검색이 가능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검색을 통해 이분들의 이야기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여겨집니다.
고택 내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보면서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이런 취향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력과 권력, 그리고 학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죠. 본인은 15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조지아주 웨슬리안대 문학부를 졸업합니다. 45세의 이미 결혼하였던 손문을 만나 22살의 나이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할 뚝심과 자기주장이 있는 여인이었죠. 중공성립 후 국가부주석,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부녀연합회 명예주석 등을 맡았으나 죽기 전까지 공산당에는 가입을 안 한 모양입니다. 1981년 사후 당원으로 받아들이고 명예주석으로 추대했다고 하네요. 글쎄요, 생전 3번이나 공산당 가입을 원했으나 거절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자기들 멋대로 한건 아닌지...
근대 중국에서 태어나 당시 최고의 재력과 권력을 누리는 집안에서 3자매들은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좋은 예가 되기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3 자매 중에서는 가장 야망이 크고 똑똑한 이는 쑹메이링이 아닐까 싶은데요, 당시의 미국의 지지와 화려한 언변 그리고 장제스와의 역사적 스토리들이 쑹메이링을 증명하고 있죠. 하지만, 대륙에서는 쑹칭링은 '국모'의 자리로 모시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권력을 사랑한' 메이링보다는 '중국을 사랑한' 칭링을 더 쳐주는 거죠.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역사도 달리 해석되는 면이 있습니다.
세계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이 여인들의 이야기. 한번 관심을 가져볼 만하네요.
(참고로 송가황조(宋家皇朝)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장만옥이 연기한 작품인데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제 중국친구는 이곳에 자그마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하는 곳이기에 딱히 돈을 크게 벌겠다는 의미보다는 이런 점포를 이런 역사적인 곳에 운영하고 있다는 그런 '미엔즈面子' 즉 체면을 더 중시하는 거 같습니다. 다양한 일을 벌이는 친구다 보니 수긍이 가기도 하고요.
역사유적이나 역사적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당시의 재력과 권력을 갖추고 좋은 교육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연 중국을 이끄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해본다면 간혹 중국인들로부터 이들을 뭐라 지칭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무리들이 존재했었다고 하네요. 이들은 수많은 정권의 변화 속에서도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대로 명맥을 유지한 이들이죠. 공산당 혁명으로 마오쩌둥이라는 걸출한 시골뜨기 인물이 나올지언정 그런 공산당 정권 속에서도 역시나 시대를 이어온 이들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네 역사도 마찬가지죠. 시대와 변화에 맞춰서 수시로 색을 바꾸면서 자신의 가문의 이익을 유지하는 이들. 결국 이들의 부와 권력에 의해 키워진 자녀들이 다음세대의 주인공들이 되어있고 대중의 사랑을 받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 서글퍼지기도 하네요.
우리가 어떤 이들의 삶에 더 감동을 하고 지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할 듯싶습니다.
주택내부에 한복차림의 이미지가 있는 자수작품이 보였습니다.
이런 게 왜 있을까 들여다보니 김일성이 선물한 작품이었네요.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중국은 이러나저러나 우리와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수작품에는 '리련수, 장인애 수'라고 또렷이 적혀있었는데요 아마도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의 이름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