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건들
중국의 대표적 비즈니스 강연 중의 하나인 '진화의 힘'을 보다 보니 '청년 양로원'에 대한 소개가 잠깐 나왔습니다.
청년 양로원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지인에게서 들었던 터라 알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새로운 개념으로 소개가 된 것이 흥미롭더군요.
우리는 양로원은 늙고 쇠약한 노인들이 돌봄이 필요해서 가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노령화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점차 양로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회적 담론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죠. 그런데 중국엔 올해 새로운 개념의 양로원이 생겨서 소개를 하려 합니다.
청년들은 왜 양로원에 가는가?
청년 양로원에 입주 조건부터 알아보죠.
- 45세 이상은 받지 않음
- 일한 경험이 없는 분은 받지 않음
45세라는 나이에 기준을 두는 이유는 이 나이가 넘어가면 대부분 사교적 교류보다는 그냥 쉬다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 청년 양로원은 그냥 이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통한 교류를 지양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사회적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프리랜서들이 있고, 두 번째는 일이나 생활에서 병목 현상을 겪고 다시 시작하기 전에 적응과 휴식이 필요한 젊은이들입니다.
이곳에 입주한 이들 중엔 이곳은 요양원 일뿐만이 아니라 '병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했을까요?
중국엔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躺平 (탕핑 tang ping)', '内卷(네이쥬엔 nei juan)',‘啃老(컨라오 ken lao)’
탕핑은 평평하게 눕다는 뜻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시체처럼 누워있다는 표현이고, 네이쥬엔은 안으로 말려있다는 뜻으로 심화된 내부경쟁을 빗댄 말입니다. 컨라오라는 말은 부모에게 빌붙어 있다는 뜻이죠.
이런 단어들이 자주 언급 되듯이 지금 중국사회는 청년들에게 점점 암울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한국에서도 수능시험이 치러졌죠.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의 수능시험(高考까오카오)은 우리보다 경쟁이 더 심합니다. 게다가 어떤 도시에 사는가부터 합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시골에서 가난하게 지내는 자녀들은 점점 기회를 얻기 힘든 세상이죠.
게다가 대학을 졸업해도 요새처럼 침체된 경기 속에서는 마땅한 일자리를 얻기 힘듭니다. 그래서 대학을 나와서 혹은 유학을 갔다 와서도 배달일을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죠. (배달을 하다 비명횡사를 한 한 청년의 사고 소식을 담은 제 글도 참고하세요.)
'청년 양로원'은 올해 들어 정저우, 윈난, 충칭, 허페이 등지에 등장했습니다.
그중 윈난성에 위치한 한 곳을 살펴보죠.
시골에 위치한 이곳은 총면적 약 700제곱미터 규모로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학교 기숙사였는데 버려져서 쓰레기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토지개간을 하고 나무를 심고, 구조를 보강하고 총 12개의 방을 만드는데 총 45만 위안 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6~7명이 함께 서있을 수 있는 큰 부엌을 만들었는데 입주자들이 그룹으로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거나, 함께 식사하기 싫으면 혼자서 요리를 해 먹기도 합니다.
이곳은 운영한 지 1년이 넘었는데, 현재 입주자는 10~15명이라고 합니다.
입주자의 대부분은 1990년대생이고, 00년대, 80년대생도 있습니다. 프리랜서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장인들이 더 많이 오고 싶어 한다고 하네요. 잠시 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1인당 월 비용은 비수기엔 1500위안이고, 청소 및 숙박 비용 교환을 위해서 '자원봉사 숙박 교환'도 제공한다고 합니다. 창업자의 개인 경험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쿠폰들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 7시쯤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정오까지 잠을 자기도 합니다. 입주자들끼리 모여서 악기연주, 농사, 폭포 옆 하이킹, 복싱 배우기, 명상 등의 활동 등을 한다고 하네요. 저녁엔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서로 간에 교류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 요양원'은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영적 매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결혼하고 싶지도 않고, 집을 사고 싶지도,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은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곳이 필요하다는 의미이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느끼거나 소속감의 부족을 느낍니다. 이곳이 이런 욕구를 얼마나 만족시킬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런 사회적 현상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따뜻함을 느끼는 공간" = '청년 양로원'
도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핸드폰을 내려놓고 이렇게 서로 간에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만의 공감과 따뜻함을 느끼는 곳입니다. 개념상으로는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입주 경험자들의 의견으론 개선할 점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이제 이런 공간들이 시작이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들이 생기겠죠.
언젠간 자본이 들어와서 대규모의 사업으로 진행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변화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사회적 상황으로 봤을 땐, 이런 공간들이 등장하는 현상들에 대한 이해가 더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사회는 점차 심화되는 부와 기회의 불평등으로 청년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상하이 한 마트에서 있었던 칼부림, 주하이에서 있었던 자동차 폭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 등등. 사회적 불만들이 이렇게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중국에서 가장 혜택을 본 세대는 80년생들이라고 보입니다.
문화혁명을 겪으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세대에 비해 중국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경제적 지식적 혜택을 바로 받았으며, 사회에 나와서도 많은 기회를 얻은 세대들이죠. 이들이 지금 중국사회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뒷 세대인 90, 00세대들은 아직 젊은 80세대에 밀려서 자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게다가 최근의 경기불황으로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한동안 마윈을 선두로 한 IT의 붐으로 창업의 열기도 있었으나, 정치적 문제로 꺾여버리면서 그 열정들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이미 부를 이룬 이들의 자녀들은 좋은 교육과 용돈으로 세계여행을 하며 SNS에 과시욕을 맘껏 뽐내지만, 대부분의 중국 청년들은 하루하루 살아갈 걱정으로 미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지친 젊은이들을 잠시 요양하게 해 주겠다는 발상이 '청년 양로원'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볼 수 있죠.
얼마 전 (2024.11.9) 정저우에 모여든 대학생들로 인해 중국정부가 바짝 긴장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약 20만 명에 육박하는 청년들이 정저우에서 카이펑(开封)까지 약 60Km에 이르는 거리를 5시간 동안 야밤에 공유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夜骑大军’(야밤의 자전거 대부대)라고 지칭되는 이 사건은 정저우에 모여든 4명의 여대생들로부터 시작됩니다. 6월 정저우에 여행 온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카이펑까지 이동하면서 SNS에 '青春没有售价(청춘에는 대가가 없다)'는 제목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게 됩니다. 이에 많은 청년들의 이들이 모험심에 공감을 얻게 되었고 동참을 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대학생들이 단체행동을 하면서 중국정부는 바짝 긴장을 하게 됐죠.
학생들은 애국가를 부르거나 중국 국기를 들고 주행을 했지만, 코로나 봉쇄 때 상하이에서 있었던 '백지항의'의 경험도 있던 터라, 이 불씨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거였습니다. 급기야 더 많은 학생들을 유입을 막고자 학교 봉쇄령을 내리고, 공유자전거 회사는 지역 간 이동을 못하게 자동 잠금으로 시스템을 돌려놓기도 했죠.
다행히도 다른 의미로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참가를 한 이들의 소견으로는 군중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이 공동체 의식과 거대한 젊은 에너지를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거리 축제를 경험하는 거죠.
우리나라도 요새 윤석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들이 매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하나의 구호를 외칠 때의 그 짜릿함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때 우린 그 열기를 느꼈고, 촛불시위를 통해 군중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일제강점기의 만세운동, 이승만 때의 4.19 등등. 우린 참 많은 군중의 힘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군중이 모였을 때, 권력을 쥔 이들은 긴장합니다.
중국의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렇게 조금씩 자신들의 답답함과 불만을 조금씩 자신들의 방식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 시작한 행동일지 모르지만, 대중이 공감한다는 것은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애국가를 부르고, 중국 오성기를 들고,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지만 그 깃발과 노래가 누군가를 향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 포털에서는 검색이 안될 줄 알았는데, 검색이 되는 걸 보면서 중국 정부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무조건적인 '봉쇄'로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도 잘 알 것입니다. 젊은 새 시대 인민은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니깐요.
밤새 힘든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는 거리에서 식당에서 정류장에서 아무 데서나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중국 젊은이들은 청년들은 이렇게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거죠.
때로는 사회에서 받은 부당함과 불편함 그리고 불만들을 떨치고자 거주하던 곳을 떠나 '요양'을 떠나기도 합니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조용한 농촌에서 그들만의 따뜻한 안식을 청하는 시간을 갖는 거죠.
이렇게 올해 등장했던 두 가지 사건을 가지고 중국에 사는 청년들의 현실을 이야기해봤습니다. '헬조선'이니 '이생망'이니 하는 한국의 청년들이 이야기가 들린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두 나라의 청년들이 겪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하지만, 우리 역사가 지나온 그 어느 시대에도 녹녹한 시대는 없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환경에 기대어 기회를 찾길 보다는 자신이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 과정이 덜 어렵고 쉽게 산다고 느낄 때가 있기도 할 겁니다. 한 탈북민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한국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보면 하루라도 북한에서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럼 정말 이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있으니... 너무 뻔한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요?
우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탈북민의 경험을 대신할 수 없으나, 그의 말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공감이 가는 나이에 왔습니다. 전 우리 청년들이 조금은 더 도전적이고 열정적으로 자기 삶의 태도를 다듬어 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제가 다시 청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지 잠깐 생각해 보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