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작가 with 공동체공간
인싸감성. 이 네 글자로 현 시대의 유행은 표현된다. 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을 뜻하는 ‘인싸’는 사회성 짙은 공적 용어고, 개개의 공감을 부르는 ‘감성’은 개성담긴 사적 용어다. 현 시대는 사회와 개인이 만나는 지점에 소위 핫플레이스라는 공간 문화를 만들며 도시에 시대를 입히고 있다.
연남동과 해방촌 그리고 명실상부 최고의 상권 홍대입구도 이 과정을 지나 상업과 문화의 교차공간이 되었다. 상업과 문화의 교차로에 선 대림동 주민들의 <대림역 12번 출구>에 대한 감성이 <홍대역 4번 출구>의 의미와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림동으로 떠나기 전 소위 핫플레이스의 세가지 공통 조건을 정리해봤다.
핫플레이스에는 ‘외부인의 유입’. ‘청년 유동인구’. ‘저렴한 토지비용’이 있다. 세 요소가 한대 모여 만들어낸 시너지로 ‘뜨는 동네’가 생긴다. 여기서 하나라도 망가지면 핫플레이스의 명성을 유지할 수 없다. 정확히 ‘인싸감성’이 ‘뜨는 동네’의 지위보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거리가 변하고 다음 거리로 이동한다. 이렇게 도시의 생태도 순환한다. 그리고 여기, 순환이 시작되는 기류에 “한우리 문화센터”가 있다.
대방동과 신도림의 사잇동네, 도림천이 흐르고 동명의 지하철 2개 호선이 위치한 대림동은 요즘 뜨는 동네다.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의 골목동네로 감성과 감각을 자극하는 레트로 문화가 스며있다.
대림동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 다가구주택 지구로 개발됐다. 주인세대와 세입자가 함께 사는 다가구 주택과 옛 시장골목에 이주민이 유입되며 새로운 문화가 덧 입혀졌다.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날 것의 도시생태가 보인다. 같은 이주민촌이라도 이태원이나 서래마을과는 다른 맛이 있다.
우리만 모르는, 우리 도시 핫플레이스 :
“중국 동포들은 서울시청이 어디있는지 몰라도, 대림동 12번 출구는 알아요”
<한우리 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김종석 대표의 말이다. 김대표는 대림시장의 지역 토박이기도 하다. 대표의 설명을 따라 12번 출구를 나와 시장골목으로 걸어내려가 본다. 평일 오전임에도 쏟아지는 인파에 휩쓸리듯 흘러가보면, 왼쪽 귀에는 한국어가 오른쪽 귀로는 중국어가 그리고 정면에는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낯선 억양이 들린다.
눈으로는 한글과 중국어가 섞여있는 간판을 보며, 도로 양 옆 식당가에서 풍기는 튀김냄새와 콧 속을 자극하는 향신료 냄새를 맡는다.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거리, 여기는 대림역 12번 출구다. 중국어로 된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에게 다시 길을 물었다.
“중국 글자 못 읽으면 이건 안 줄거다”
신문처럼 보이는 전단을 얻는 건 실패했지만 길을 묻는데는 성공했다. 그는 주민센터보다 공영 주차장을 알아들었다. 공간의 공식 명칭은 <한우리 문화센터>다. 그러나 이 거리에선 <대림 2동 공영 주차장>을 묻는게 더 빠르다. 문화센터가 주차장보다 나중에 들어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들의 삶의 우선 순위에 문화나 여가라는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우리 센터의 형성은 순서를 따랐다. 반경 500미터내에는 문화-체육시설이 없다는 대표의 말을 빌어 주변을 다시 보면, 이 거리의 개발은 삶의 우선 순위와 닮아있다. 집이 생기고, 시장이 생기고, 주차장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 여가와 문화가 들어올 차례다. 주차장 건물을 한 층 증축해서, 공간을 만들었다. 커다랗게 트인 증축공간을 나누고, 필요한 순위로 채웠다. 최대한 주민의견을 반영한다는 대표의 운영설명처럼 추상적인 문화예술보다 직관적인 여가 문화가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아직도 쓰임을 찾는 공간이 남아있다.
공간 구성은 헬스장이나 탁구나 요가같은 생활 체육 시설을 제일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여기에 부차적으로 찜질방처럼 유용한 시설들을 만들었다. 기획은 성공적이었다. 촬영을 위해 방문한 시간은 한창 활동시간인데도 적지 않은 주민들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대표가 강조하는 낮은 문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림동에는 유독 길 가에 앉아있는 통행객들이 많다. 대표는 한우리 센터가 거리를 배회하는 이주민에게도 쾌적한 쉼터가 였으면 한다.
센터의 문턱은 낮다. 대림동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게, 대림의 물가에 맞췄다. 이를테면, 센터와 함께 있는 주차장 가격은 5분에 50원, 월 정기권 65,000원으로 서울시내 어디와 비교해도 경쟁력있다. 헬스장 요금도 한 달에 3~4만원 정도다. 기름기를 쫙 뺀 공간, 대림동의 문화는 쓸모를 찾아 적응하면서 공간에 스며들고 있었다.
문화가 없는 동네에 문화센터가 들어온다면, 환영 받을 일이다. 그러나, <한우리 문화센터>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공간은 조성 초기부터 목적을 설명하고, 존재의 필요를 확인 받아야 했다. 하물며 지역주민에게도, “우리” 세금이 이주민 복지에 쓰이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한다.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벽을 허물고, 대림 2동의 화합의 장이 되겠다.”
운영단의 목표는 과정을 통해 단단해졌다. 공간을 운영하는 <한민족 공동체>는 한국계 대림동 토박이들과 중국계 이주 동포들의 연합인데, 공간 조성 이전부터 활동하던 자치회다. 이들은 대게 시장에서 상업활동을 하며 살아가던 이들이다. 생업의 공간에서 함께 하다보니 자연스레 알게되고 이어졌다. 어우러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만큼 대림동 토박이들은 평균 연령이 높다. 운동이 필요한 나이대의 토착민과 주로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이주민의 교차점을 운동에서 찾은 건 논리적이었다. 거기에 함께 땀 흘리며 친밀감을 높이자는 운영진의 철학이 반영됐다.
이용자들은 공간을 활용하며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서로의 방식을 배우고 있다. 이를테면, 토착민들은 음식을 나누거나, 공간에 필요한 물품들을 기증하곤 한다. 그러자 이주민들도 하나둘씩 뭔가를 가져와 나누기 시작하며 거리의 문화에 적응한다고 김종석 대표는 설명한다.
한우리 센터는 주차장의 옥상부분에 증축을 통해 만들어졌다. 통으로 된 공간을 칸으로 나누고, 목적에 맞춰 집기를 넣었다. 가장 넓은 공간이자 공을 들인 공간은 운동기구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헬스장으로, 운동 후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는 찜질방과 샤워실도 함께 마련됐다.
공간을 조성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조성 기금이었다. 특히 운동기구 시설비 확보가 가장 힘들었다. 모든 문제는 대화로 해결한다는 박대표는 자치회 주민들에게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자치회의 금전적 도움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어렵게 체육시설을 조성했다. 고생한 보람은 있다. 헬스장 수익은 현재 공간 운영의 주요 자원이다.
체육 시설 이외의 공간들은 필요에 의해 움직인다. 단체는 공간이 필요한 단체나 사람들에게 공간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운영회 사무실 옆에는 <문화 관광형 시장> 사업단 사무실이 자리 잡았다. 이 단체는 대림 중앙시장을 관광형 시장으로 활성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출입국 관리사무소도 매달 여기에서 이주민 대상 간담회나 법률 설명회를 개최한다. 설명회를 진행하는 회의실이나 공연장으로 변경될 수 있는 요가실등은 이용자에 따라 변경된다. 그리고 중앙 정원과 유지보수 문제로 방치되고 있는 옥상부분같이 아직 쓰임을 찾길 기다리고 있는 공간들도 있다.
김종석 대표가 찍어준 대림2동의 대표 키워드는 대림동의 중국식 발음인 <따림동>이나 대림시장으로 내려오는 지하철 출구인 <대림역 12번 출구>였다. 그러나, 위치 태그를 통해 살펴보면, 양꼬치, 칭따오, 마라탕, 차이나타운 등이 더 자주 보인다.
“조선족은 중국식 명칭이예요. 우리는 중국동포라고 해야 합니다”
김대표와 공간 운영자인 <한민족 공동체>는 대림동이 “차이나 타운”이라는 말을 부정한다. 대림동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은 본래 뿌리가 한국계다. 대림동 이주민들은 구한말 조선인 난민들로, 본국으로 재이민을 한 셈이다. 대림 2동을 차이나 타운으로 정의하는 순간, 관광사업은 성공할지 몰라도 중국계 이주민들에게 외국인이라는 낙인을 찍는 거라고 대표는 설명한다.
그런 한 편, 대림 중앙시장은 적극적으로 관광형 시장으로 개발 중이다. 들리는 언어, 눈에 보이는 거리 풍경, 냄새와 분위기가 여행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경쟁력도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풀어내는 중심에도 한우리 문화센터가 있다. 시장의 중심이고 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위원회도 이 안에 둥지를 틀었다. 무엇보다 운영진이 지역 주민 본인이다. 센터는 대림동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원한다. 김대표는 인터뷰 몇 일전에도 공간을 찾는 청년 단체가 찾아갔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단체의 바람대로 특정 문화의 중심지가 아닌 문화 교류지가 되려면, 한국 젊은이도 섞여야 한다.
닫히거나 열리거나, “문”과 친숙한 형용사 두 개에는 서로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문”은 때에따라 타인과 나를 단절시키는 가림막이 되기도 하고, 연결시켜주는 이음새도 된다.
마찬가지로 뜨는 동네와 슬럼가는 한끗차이다. 뜨내기가 많다고, 반드시 슬럼가가 되는 건 아니다. 외부인의 유입으로 형성되는 독특한 문화와 저렴한 임대료는 창작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추천받은 시장 맛집에서 중국 냉면인 량피와 만두를 사봤다. 점원은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 청년이었다. 말이 아닌 몸짓과 표정으로 대화를 하며, 여행하는 재미를 느낀다. 가게를 찍는 나를 위해, 뚜껑을 열어 만두의 김을 피워주는걸 보며, 우리가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한 시대 사람이란 걸 다시 깨닫는다.
가까운 옆 동네에 우리가 섞여들길 기다리는 공간이 있다.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 시즌 2, 정현미 작가
본 글은 서울시공동체공간 X NSPACE with 도시작가 프로젝트로 쓰였습니다.
한우리 문화센터(대림2동 주민공동이용시설)
서울 영등포구 디지털로37나길 21
김종석 대표님 qkscks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