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우기 버튼을 눌러요. 그리고 씁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완성한다.

by 미아취향





먹물을 붓에 찍어 글을 쓴다. 글을 긴 화선지 한 장에 다 쓰려고 하면 비율에 맞게 작게, 알맞게 써야 한다. 쓰는 중에 정신을 다른 곳에 두면 한 글자를 틀리게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많진 않다. 가장 속상한 것은 글자가 마음에 안 들 때 다. 온 정신 집중해서 한 장에 글을 쓰는데 분명 한 번에 마음에 든 적은 잘 없다. 글자 몇 개를 지워버리고 싶다. 도려내어 다른 종이에 써서 붙여 넣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한 장에 쓸 글자수가 적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가령 50자 정도가 되는 긴 글이면 한 번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쓰는데도 오래 걸리지만 집중에 또 집중하는 시간도 길기 때문에 한 장을 다 쓰면 진이 빠져버릴 때도 많다. 50자도 힘든데 70자, 80자를 한 번 썼다가, 종이의 중간까지 왔는데 글자를 틀려버린 날이 있었다. 화가 나 화선지를 한껏 구겨 버렸다. 이 날은 긴 글 쓰긴 글렀다. 짐 싸서 집으로 온다.

서예를 하고 있으면 마음에 드는 글을 쓸 때까지 인내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먹물도 지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 할 때가 많다. 쓰고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하면 완성도 높은 한 장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매일 일기를 쓴다. 다이어리에 생각나는 것을 휘갈겨 쓰기도 한다. 이건 혼자 보기 때문에 고칠 필요 없다. 글씨가 틀리면 시커멓게 동그라미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블로그에 쓰는 글이든 여러 명이 보는 글을 쓸 때는 한 번 쓰고 바로 공개할 수가 없다. 설사 한 번에 써서 올린다 하더라도 다시 읽어보고 수정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보인다. 보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어떤 날에는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이 낯설기도 하다.

그렇게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지우기 키를 더 많이 이용할 때, 즉 쓰고 지우기를 더 많이 반복할 때 어떤 소설이 완성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이 사실을 체감하면서 왜 육필로 쓸 때보다 키보드를 이용할 때 소설을 완성시킬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지에 대한 이유도 깨닫게 됐다.

<시절일기_김연수 지음>



메모로 끄적거리다가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쓴다. 몇 문장 적고 나서 더 이상의 문장이 나오지 않아 빈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잠시 음악을 듣다가 책도 읽다가 글감에 글감이 이어지는 아이디어가 솟아난다. 그때 비어있던 화면을 활성화 시켜 글을 이어서 쓴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과감하게 쓴다. 이걸로 끝난다면 일기나 메모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지우기 버튼을 여러 번 누르고 계속 쓰고, 수정에 수정을 한다. 고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읽을만한 글이 된다.






예전에는 글 쓰는 데에 의의를 뒀다. 그 순간에 쓰고 싶은 것을 먼저 썼다. 읽기만 하는 사람이 다이어리에 끄적이다가 살을 보태고 다듬어서 SNS에 올리고 공개를 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공개하기 때문에 마구 썼던 글을 여과지에 거르듯이 수정을 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처럼 소설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유 깊은 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칼로 연필 깎듯이 집중하다 보면 관심 가는 주제에 대해 더 쓰게 된다. 지우고 정리하면서 머릿속에서 모래 회오리 바람 치던 생각들이 정제됨을 알게 된다. 이제 공개해도 될 것 같다.


역시 읽을만한 글이 되려면 지우기 버튼을 계속 눌러가며 수정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