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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Jul 18. 2016

생각공장의 시선 - 정치철학 편 1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치철학은 무슨? 1





   

   

     

   모든 것은 전적으로 정치가 결정한다

- 장 자크 루소 -
                                  

     






참 이상한 게 언제부턴가 중, 고등학교에서 정치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재미없고 지루한 과목이 되었다. 사람들이 정치라는 과목 자체를 너무 딱딱하게 느끼고 지루하게 느끼는 상황에서 정치 철학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필자에겐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정치철학은 딱딱하지도 않고 지루하지 않은 매우 재밌는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우긴다. 진짜 재밌다.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정치를 들여다보면 개그 콘서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동시에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한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돌려서 까지 즐기는 게임처럼 정치도 일종의 게임이기에 필자는 정치를 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정치철학은 정말 재밌다고 강력하게 우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정치란 게임의 특징은 다른 게임들과 달리 게임 자체에 규칙이 없다. 규칙이 없다는 점이 정치의 유일한 규칙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필자는 마키아벨리의 이런 막가파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정치의 이런 규칙 때문에 정치가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권투보다는 규칙이 좀 느슨한 격투기에 더 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란 게임에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 정치인들이 민망한 경우를 연출할 때가 있어 애들과 같이 보기에는 좀 부적절해 보일 때가 상당히 많다. 근데 또 이래서 더 재미있다. 왜 좀 부적절해 보이는 것이 더 끌리는 경우가 우리 인생에는 많지 않은가? 위의 여섯 번째 줄의 개그 콘서트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의 내용은 사족이다. 근데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이런 군더더기를 자제하라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또 사족을 달고 싶다. 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는 게 삶이 가르쳐준 교훈 아니던가? 이제 그만 본론으로?















정치인의 변덕에 우리의 복지를 맡기는
민주주의??





정치철학을 좀 진지하게 살펴보면 정치철학은 우리가 낸 세금을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또한 누가 이러한 문제에 관해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판단의 기준을 정치철학이 제공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에 공원과 도로를 확장하는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경제적 보호가 갑자기 필요해진 암 환자나 실업자, 혹은 노인과 같은 동료 시민을 위한 복지에 우선적으로 세금을 사용해야 할지, 또는 기업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시민의 세금을 여러 기업의 연구 개발비 지원에 사용할 것인지와 같은 여러 사업들 중에 어떤 사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정해야 하며, 얼마만큼의 돈을 그 우선순위에 따라 써야 할지를 정치는 결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 그룹이 이러한 문제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의 피 같은 돈을 환경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대기업 건설사에 퍼주는 사업을 세금을 낸 다수의 시민의 동의 없이 정치 엘리트 그룹이 지맘대로 결정한다. 현재로선, 정치 엘리트 그룹이 어떤 정치 철학을 가졌느냐에 따라 한국이 헬조선이 될지 아니면 좀 괜찮은 사회가 될지를 결정한다. 시민의 행복이 정치 엘리트의 변덕에 달려있는 참 반민주적인 상황에 한국 시민들이 처해 있다. 시의 공립학교 교육의 질 향상, 예를 들면,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력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사업에 얼마만큼의 돈을 시정부가 지원해야 할지와 학교급식비 지원을 포함해서 중등교육과 대학교의 등록금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지에 대한 원칙 또한 정치철학이 시민인 우리와 정치인들에게 친절하게 말해 준다. 근데 불행한 점은 정치인은 정치철학에 관심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치철학이 가장 필요한 이유는 시가 막대한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결정할 때,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만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지, 아니면 시의 주인인 시민도 이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지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정의롭고 바람직한가를 판단해 주는 기준을 정치철학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철학은 학생, 성인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물론 누구에게는 정치철학이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치철학은 우리가 일생 동안 배우는 모든 과목 중에 가장 중요한 과목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아냐?? 그래도 영어, 수학이 중요해? 좌절이다. 다시 힘을 내고! 이 뿐 만이 아니다. 저렴한 에너지 확보를 위해 화력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해야 할지 아니면 비싸더라도 국민이 안전하게 숨 쉴 수 있게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발전소를 지어야 할지를 결정할 때에도 정치와 정치철학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깨끗한 물의 공급에서부터, 심지어 담배 값을 올려서 서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할지 아니면 법인세를 올려서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할지에 대한 토론에서도 정치철학은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 아이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한 가정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부와 기업이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 또한 정치와 정치 철학이 결정한다. 담배 가격, 공기 질, 깨끗한 물과 같은 환경 문제에서부터,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여러 복지의 문제, 사실 거의 어느 문제 하나 정치와 그 철학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정치인들이 결정하는데, 그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철학을 가졌느냐에 따라 우리가 헬 조선에서 헬렐레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삶의 만족도가 항상 가장 높게 나오는 북유럽 국가들과 같은 건강한 사회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것인지가 결정된다. 필자가 판단 건데 인류 역사상 가장 시민들 편에 섰던 루소의 말을 이젠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정치가 결정한다.’ 몰랐었네! 젠장!















노예제가 왜 나빠? 세종 말이 아니고
로마의 정치철학자 세네카가 말했어!






정치철학을 알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인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면서 살펴보자.

     


‘여러분이 노예라고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여러분과 똑같은 방식으로 태어나고, 같은 햇빛을 즐기고, 여러분과 똑같이 숨 쉬며 인생을 산 다음 여러분과 똑같이 죽는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그 노예를 주인인 여러분과 같다고 쉽게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노예 또한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인생을 산 여러분을 주인이 아닌, 자신과 같은 노예로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세네카, essays and letters, p. 193

     

정치철학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자가 세네카의 말을 인용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주인과 노예를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먼저 얘기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서 주인과 노예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 시민이 살아가는 사회의 여러 정치, 경제, 사회적인 제도에 대해 정치철학은 시민에게 비판적인 판단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세네카의 인용문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첫 번째 이유도 두 번째 이유와 연결된 문제이긴 하다.




우선 ‘주인과 노예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별로 물어보면서 살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 우린 바쁘기 때문이다. 게임도 해야지, 동영상 잡지인 드라마도 열심히 봐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골 빈 소비자가 돼야지, 주말에는 비싼 드라마인 영화도 봐야지! 스포츠 경기도 관람하면서 스포츠 산업의 육성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야동도 봐야 한다. ㅋ. 다 필요하다. 애들 어른 할 것 없이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갑 질과 스트레스로 가득 찬 용광로 같은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나간다. 우리에겐 마취제가 필요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에겐 매우 저렴한 마취제가 있다. 엔터테인먼트이다. 근데 이런 엔터테인먼트는 대중이 만들지 않은 대중문화다. 누가 그랬다. 이런 대중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이게 대중, 니들이 즐겨야 하는 문화라고 했다. 우린 그래서 그냥 믿었다. 설마, 저렇게 훌륭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자인 대기업이, 그리고 권력 있는, 서울대 나온 애들이 우리한테 거짓말하겠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사족일까? 아니다. 이건 필자가 보기엔 필요한 얘기였다. 이런 오락의 형태들이 우리를 정말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끄도록 꼬시기 때문이다.








노예와 주인을 나누는 기준은??







어쨌든 정치철학은 우리에게 이 질문 즉, ‘노예와 주인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란 질문을 다시 진지하게 묻는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위에 언급된 여러 종류의 오락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인과 노예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기준은 규칙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느냐의 여부이다. 쉽게 말하면, 주인은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노예는 규칙을 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으며, 규칙이 자신에게 이롭든 해롭든 관계없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사람이 노예다. 좀 불편한 얘기다. 왜냐하면, 우리가 민주적인 사회라고 부르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한 번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규칙을 정하는 일에 참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을 가도, 학교를 가도, 심지어 대학을 들어가도 우리가 진정으로 동의해 본 적도 없는 규칙이 이미 그곳에 존재했고,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 규칙을 우리가 정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거의 이 십 년 동안의 공교육 기간의 학습을 통해 규칙을 정하는 일보다는 규칙을 따르는 태도를 압도적인 비율로 아무 생각 없이 배워왔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 규칙을 그냥 외웠고 잘 지켰다. 설령 어떤 학생들이 학교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자고 하면 그 학생들은 찍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민주사회의 시민의 자격이 주어진 시점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게임의 룰인 헌법과 법률, 시의 조례를 결정하는 일을 정치인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아무런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이없는 현실이다.








규칙과 법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이등 시민은 누구??







규칙이 우리 동의도 없이 정해진 이런 사회에서 사는 것이 왜 어이없는 일인지 한 번 잠깐 생각해보자. 정말 잠깐이면 된다. 만약 명절 때 친척들이나 형제들이 모여서 고스톱을 칠 때에 누군가 한 사람이 고스톱의 모든 규칙을 결정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버럭 화를 내며 고스톱 담요를 뒤엎을 것이다. 푼돈 나가는 게임의 룰을 누가 정할지에 관해서는 분노하지만 매년 몇 백만 원 혹은 몇 천만 원의 자기 돈이 세금으로 나가고, 이 돈이 어떻게 쓰여야 하며,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권을 소수의 권력집단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별로 분노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거라고 사람들이 그랬다. 원래부터 그랬다고! 그래서 세금의 사용 계획과 집행 과정에 결정권을 시민 자신이 눈곱만큼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 분노해야 하는지도 좀 애매하게 보인다. 놀랍다! 설령 이러한 문제에 소수의 맨 정신 가진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인 시민은 막상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어떻게 얻어낼 수 있는지, 심지어는 그 예산이 어떤 과정으로 계획되고 실제로 얼마나 투명하게 집행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쉽게 찾아낼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사회가 실제 주인인 시민을 대접하는 방식이다. 이걸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외우고 그 아무 생각 없음의 결과로 이렇게 대접받으며 산다. 정말 제대로 된 노예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은 노예가 자신이 노예인지를 도저히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래서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감정적이기만 한 개, 돼지라고 부른다.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해 눈곱만큼의 결정권도 우리는 가지지 못한다. 정치철학이 가르쳐준 주인과 노예를 구별하는 기준은 우리를 매우 불편한 진실로 이끈다. 젠장 노예였네!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 아니면
부정적으로 봐??







정치철학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세네카의 말을 인용한 두 번째 이유는 세네카도 노예제도 자체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세네카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였다. 당대에 지식인 세네카도 노예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네카는 태어나면서 노예란 종류의 인간이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차별받는 현실 속에서 성장했다. 세네카가 성인이 되어서도 노예는 자기 주변 어디에나 존재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노예제도는 세네카가 살고 있는 로마제국의 확립된 한 제도로서 당연하게 인정받고 있었다. 사실 인정받을 필요도 없었다. 누구도 노예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네카의 노예제도에 관한 무지는 한 개인이 동시대의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혹은 그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제도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과 판단력을 갖지 못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의 부정하는 힘이 그 사회의 진보와 건강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그 사회의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제도들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긍정의 힘’이란 표현이 어디서 들리거나, 자신의 뇌 속 어딘가에 이런 똥 같은 정보가 처박혀서 내 생각과 내 삶을 헬과 같이 만들 때, 욕을 해야 한다. 열여덟 꺼져! 괜히 똥한테 미안해진다. 서양의 정치, 경제, 법, 예술,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초를 놓은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성과 노예의 영혼은 자유로운 남성 시민의 영혼과 질적으로 달라서 여성과 노예가 정치적으로 차별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무지막지한 주장을 그 위대한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도 펼쳤었다. 진심으로 ‘일베’ 같다! 그리고 요샛말로 여혐 주의자 (mysogynist)다. 그렇다면 2016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세네카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졌던 같은 종류의 무식함을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생각이 있는 척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다! 2016년의 정치, 사회, 경제제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세네카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들의 시대에 관해 가졌던 판단과 다를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세네카와 아리스토텔레스는 몇 천 년 동안 기억되는 지식인이고 서양세계의 문명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사상가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같은 실수를 혹은 이 사상가들이 범한 똑같은 무지막지한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정치철학의 힘을 빌려 정치의 핵심 원칙인 2016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꼼꼼히 한 번 따져 보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에 대해 현대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 보자. 이게 정말 민주주의야??








2부에서는 반민주적인 대의민주주의 해부??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치철학은 무슨? 2부에서는 국가론에서 보여준 플라톤의 민주주의 극혐과 이런 극혐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반민주적인 제도가 민주적인 제도로 위장될 수 있었는지를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Bibliography     

Oksala, J. (2013), ‘Political philosophy’, All That Matters (London: Hodder & Stoug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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