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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Apr 19. 2019

민주당, 정의, 민중, 녹색, 우리미래당 청년 당원께

생각공장이 청년 정치인에게 드리는 글



젊음을 정당 정치의 생리에 익숙해져, 십 년 후 기성 정치인이 되었을 때, 본인이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전 6-7년 전 즈음에 정치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 데, 정치 철학 입문서에 충격적인 문장을 봤지만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치인은 어차피 정치철학의 “정”자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란 문장이었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정치 철학을 꾸준히 연구하고, 관련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사건과 그와 관련한 대표 논객 정치인들의 토론을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잊혔던 그 입문서의 문장이 사실이었구나!” 으스대는 국회의원들의 머리엔 정치철학의 “정”자가 없단 사실을 어이없어하며, 때론 진의를 의심하며, 심지어 어떻게 저렇게 모르는 소리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랑스럽게 확신에 차 얘기하는지 의아하고 참담했습니다.

정치학 관련 전문가들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현 체제인 대의 민주제의 신봉자들인 몇몇 이름 값있는, 진보 행세하는 학자들에게 자문 구하는 민주당 의원과 정의당 의원, 심지어 젊은 대표들까지 보았습니다. 직접 민주주의 제도 도입해 정치에 시민 참여를 높이자는 주장을 가볍게 “좌파”의 견해로 치부해 버리는 그 학자들에게 정치인 자신의 정치적인 평판 즉, 공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세탁을 위해 보수적인 학자에게 자문 구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소위 진보 진영이란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이 보수적인 학자에게 보수인지도 모르고 자문 구하는 무뇌의 정치인들의 무식함과 무분별함이 참 안타깝습니다.

진보의 가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긴 그렇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든다면 이렇습니다. “현 체제와 제도(status quo)를 부정해 더 진화한, 더 민주적인 제도로 개혁해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학교에서 배운 정의는 잠깐 잊으시길 바랍니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인 모든 시민에게 공정하고 정의롭게 핵심 권력(입법권, 예산 편성권, 법의 해석권한 등)을 나누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 당원들에게 당면한 실업문제도 중요하지만, 청년 문제의 근본 원인 즉, 청년의 문제를 그동안 청년의 삶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했던 나이 든 국회의원에게 맡겼기 때문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게 가장 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청년들도 입법권을 가져 스스로 법을 만들 수 있을 때, 청년의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는 작은 나라에서만 가능하다고요? 중국에서도 가능합니다. 시민의 입법권을 보장하는 국민발안(시민 입법;citizens’ initiative)이나 시민이 직접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게 하는 시민 주도의 국민투표(citizens’ initiated referendum)로 여러분의 주권(결정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판단의 합리성을 보장하기 위한 숙의 민주주의 형태인 “시민 심사위원단(citizens’ juries) 제도를 활용하면 브렉시트와 같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까지 예방할 수 있습니다. 헌법과 법률의 주인은 시민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가 아닙니다. “모든 주권(결정권)은 바로 여러분, 젊은 청년의 것입니다!”란 사실을 인식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의제냐 직접 민주주의 제도냐? 는 토론의 대상 자체가 아닙니다. 권력 즉 결정권은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 모두의 것입니다. 우린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는 대의 민주제에 우리 권한인 입법권을 선거라는 제도로 위임했습니다. 내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소수 의원에게 위임한 데서 우리가 겪는 모든 불행이 비롯된 것입니다. 남이 중요한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하는 사회에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위임했던 그 핵심 권한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규칙(헌법과 법률)을 소수만 정하게 하고, 그 법을 또 소수인 판사만 해석해 자의적으로 판결하게 하고, 내가 낸 세금을 행정부의 관료와 대통령만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게 하는 걸 민주주의라고 하는 건 정말 사기입니다. 이런 반민주적인 제도를 그동안 우리와 여러분에게 민주주의라고 세뇌한 것입니다. 직접 민주주의는 의미는 좋을 수 있으나 비효율적이고 중우정치(어리석은 시민의 정치)로 흐를 수 있다고 우리를 기만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엄친아딸인 소위 귀족(국회의원)이 우리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대신 정하고, 우리가 낸 세금을 대신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고, 법률을 대신 해석해 준다면서 자신들을 믿어 달라고 하는 게 대의 민주제의 민낯입니다. 형제와 베스트 프렌드도 돈 때문에 갈라서는 상황에서 어떻게 막대한 소득세(부가세 포함)를 내고 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이런 제도를 소위 가디언쉽(guardianship)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가디언(돌보미 혹은 지킴이)은 보호받는 대상보다 자기들이 먼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돌봄 대상자(중우; 어리석은 시민)가 독립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원 가디언들께서는 정말 창의적으로 내가 먼저 죽으면, 내 아들 딸이 또 국회의원 돼서 너희 어리석은 시민들을 지켜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믿어달라고” 합니다. 정치가 이쯤 되면 종교가 되는 겁니다. 정치를 신앙을 강조하던 중세시대로 돌리라고, 반동(reactionary; 진보적인 변화를 거부하는)을 넘어 퇴행을 요구하는 자들이 국회의원들입니다.

상당수 국회의원은 앞서 언급했듯이 뇌가 없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자신들이 시민에게서 입법권을 강탈한지도 모를 것으로 보입니다. 소수 그나마 뇌가 있는 국회의원은 직접 민주적인 제도는 너무 급진적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부터 도입해서 사표를 줄이는 방식이 더 우선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개선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 또한 고장 난 대의제를 보완하자는 주장일 뿐임은 분명합니다.

긴 글을 정리하면, 젊은 청년 당원들께서는 부디 정당의 부정적인 생리나 관행부터 익숙해지지 마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걸어야 할 길은 선배 정치인인 국회의원에게서 찾지 마십시오. 그들은 눈먼 목동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위해 걸어갈 길은 책 속에 있습니다. 루소, 토크빌, 마르크스, 존 스튜어트 밀, 샤를 푸리에 같은 위대한 사상가에서 길을 찾으십시오. 이들이 꿈꾸고 설계했던 제도와 그 공동체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정치에 “정”자도 모르는 선배 의원들처럼 길을 잃고, 여기저기 방황하다 자기 정치 인생일 마감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부디, 누구를 이끌겠다고 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 정치란 게, 제도란 것이 어떻게 쓰이고, 작동하는지를 철저하게 학습과 고민을 통해 선명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방향을 잃지 않고, 표면적인 현상에 휘둘리지 않고 그 목적지 즉, “더 정의롭고 더 민주적인 사회 건설”에 이를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정치철학에 “정”자도 모르고 길을 잃고 헤매다 권력욕에만 물들어 자신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먼저 살며, 공부하고 고민한 한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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