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종이 교과서로 배우는 아이들 인공지능 혁명시대에 버려지지 않을까?
개, 돼지보다 못한 존재를 만드는 인공지능 시대의 한국 교육??
교육부의 한 기획관이 시민을 개, 돼지로 여기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다수의 시민들이 분노하고 동시에 살다 보니 별말을 듣는다는 말들이 들렸다. 우리 공동체의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부의 책임 있는 고위직 관료가 그 교육부의 교육과정을 통해 길러진 시민 다수를 향해 아무 생각이 없는 개, 돼지로 불렀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인식과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세종의 뇌에서 열라 왔다 갔다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생각 없는 인재들을 길러낸 것을 자랑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시민 다수의 생각 없음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려고 한 것 같은데, 이런 생각 없음은 자신이 속한 교육인적자원부의 교과과정을 통해서 대량 생산된 인재들의 의도된 특성 (? 생각공장의 시선 - 교육 편 1,2부 참고 필요)인데 이걸 또 비난한다고 하니 참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게 되도록 생산해 놓고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비난하는 이런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기획관의 인식과 판단 참 놀랍다. 생각 없는 개, 돼지를 만들어내는 부서의 책임자가 시민 다수가 생각 없는 개, 돼지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시추에이션을 필자는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참고로 세종은 필자의 호이다. 세종은 조선왕조의 그 왕이 아니라 세계적인 종합 지식인의 줄임말이다. 웃어도 된다. 어쨌든 이 교육인적자원부의 기획관의 말은 자기가 싼 똥을 보고 이거 누가 싼 거야?라고 비난하는 꼴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사람이 다 쓰면 버리는
자원인가??
그리고 이 막말하는 기획관이 속한 부서 이름 자체에도 세종은 동의할 수 없다. 교육 인적 자원부? ‘사람이 쓰고 버리는 자원일 수 있는가?’란 물음에 세종은 상당한 재수 없음의 감정을 느낀다. 물론 쓰고 버리기 쉬우라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졸라 헷갈리는 단어를 마치 좋은 단어 인양 떠드는 놈들한테는 인간을 자원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능력이 저는 극소수의 노동자들, 사정없이 스카우트될 수 있는 인재들 빼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재앙이거나 프란체스코 교황이 말했던 ‘경제적 살인’에 해당하는 섬뜩한 단어다. 노동시장이란 단어도 노예시장을 연상시키는 말처럼 들린다. 노동력을 수요 공급 곡선에 근거해 형성된 가격에 맞춰 사장들이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고, 동시에 사장들은 언제든 자기들이 사고 싶은 환상적인 스펙을 가진 노동력을 가장 싸게 구입하고, 반면에 노쇠한 노동력은 쉽게 해고하고, 더 나아가서 언제 해고될지 몰라 덜덜 떨고 있는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알아서 기어 안 그러면 언제 니 책상이 빠질지 몰라!’를 눈치채게 만드는 공포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다. 참고로 요새는 해고할 때 책상을 사무실에서 빼지 않고, 해고 대상자의 책상을 화장실이나 복도 앞에 놓는 창조적인 방법을 쓴단다. 창조경제 시대다! 사장들이 이런 식으로 노동자를 해고해도 된다는 뜻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단어다. 근데 뉴스를 보면 가끔 전문가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서 OECD 국가들 중에 노동 시장의 경직성이 대한민국이 단연 최고라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외치는 일명 ‘전문가 개떼’들의 면상이 화면에 자주 등장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외치는 전문개 (?)들
종이 신문에서도 이 개떼들의 짖는 소리가 매우 시끄럽다.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기업의 투자촉진이나 기업의 활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 뜨린다는 개소리들이 매우 시끄럽게 들린다. 정말 시끄럽다. 개장사들은 여름에 저런 개들 안 잡아가고 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장사들의 일자리가 혹시 가장 빨리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쨌든 이 글의 주제로 잘 돌아왔다.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 이래서야 되겠는가?’가 이 글의 주제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혁명 시대에 버려질 인재를
만드는 교육
‘어쩌면 현재 한국의 교육제도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아무 쓸모없는 인재를 대량 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매우 강한 의심이 든다는 사실을 이 잡스런 글을 통해서 세종은 강력하게 외치고 싶다. 물론 교육이 단지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제도로 전락한 부분은 인정하기도 싫고 인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다수 시민의 욕망은 교육을 통해 괜찮은 연봉이 보장된 일자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교육이 이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한 번 세종이 따져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난 후에 ‘교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문제, 그리고 ‘우리는 머 해 먹고살지?’와 같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궁금해 보도록 하자. (인공지능, 직업의 미래와 기본소득제와 관련된 지식은 '생각공장의 시선 - 인공지능과 기본소득제'를 참고하시길 강추!) 일단, 현재 교육 시스템이 인공지능 혁명이 만들어 낼 시대에 맞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는지, 아니면 최소한 개, 돼지 이상의 효용을 가진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스마트폰 시대에 종이 교과서로 교육하는 한국 교육?
일단 한국 교육과정은 졸라 느리다. 스마트 폰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스마트 폰의 운영체제는 한 달이 멀다 하고 계속 업그레이드시키라고 난리다.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를 하도 안 하니까 필자의 스마트 폰인 사과 폰은 요즘은 지가 알아서 업그레이드한다. 그래서 이거 혹시 해킹된 거 같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리고 이 스마트 폰의 운영 체제도 수시로 업그레이드하라고 난리다. 참 성가시다. 시간도 몇 분 걸리고 스마트 폰에서 한 시도 눈과 손가락을 뗄 수 없는 요즘의 스마트 (?)한 상황에 몇 분 걸리는 이런 업그레이드 요구를 하는 팀 쿡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조상이 요리사였던 것 같은데 왜 사과 기업을 맡게 되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어쨌든 장황하게 말했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우리의 목을 부러뜨릴 정도로 빠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근데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외우는 종이 교과서는 아무리 빨라야 1년에 아주 조금씩 업데이트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 억 원에 이르는 부모님 돈을 들여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들의 뇌에 탑재한 지식은 그저 아무 쓸모없는, 철 지난 지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업데이트 쩌는 스마트 폰 시대에
종이책으로 교육??
하지만 최근 5년간의 인공지능 기술, 생명 공학 특히,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의 발전 속도는 놀랍다. 최근에 미래학자 레이 커츠와일 (Ray Kurzweil)의 인공지능 혁명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가장 긍정적인 미래 시나리오는 인간의 영생 (immortality)이다. 그리고 커츠와일이 말한 인공지능 혁명의 완성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완벽한 융합이다. 아무리 늦어도 이번 세기 안에, 커츠와일의 상대적으로 빠른 예측에 따르면, 2040년 경이면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지능이 170,000배 똑똑한 초강력 인공지능 (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된다. 물론 다수의 미래학자는 커츠와일 만큼 이렇게 빠르게 초강력 인공지능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카이스트의 뇌과학자 김 모교수도 앞으로 40년 후에 강한 인공지능 시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40년만 딱 살고 죽기를 원한다고 교육방송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떠드는 것을 세종이 본 기억이 난다. 어쨌든 다수의 학자들은 2060년 경 이면 초강력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초강력 인공지능 시대가 오긴 온다는 말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조금 더 늦게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초강력 인공지능 시대가 올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극소수다. 이런 인공지능 혁명이 가져 올 암울한 시나리오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 시나리오는 스티븐 호킹이나 빌 게이츠가 걱정하는 것처럼 인류의 멸종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멸종을 두려워하지는 말자. 다 같이 갑자기 동시에 죽는 거니까 머 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갈 때 혼자 가는 것보단 다 같이 그 길을 가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세종에게는 든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융합이 낳은 새로운 인류
Homo Intelligence
그러면 매우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이런 인공지능과 인류라는 종의 융합을 통해 전혀 새로운 생명의 종이 지구에 출현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어쩌면 우리 은하계, 아니 우리 우주에 가장 강력하고 똑똑한 생명체가 우주에 출현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이번 세기에 일어날 수 있다고 커츠와일을 포함한 미래학자들, 그리고 커츠와일의 비평가들조차도 예측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미래학자들은 많지 않다. 레이 커츠와일의 예측이 너무 이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가고 호모 인텔리전스 혹은 스마트 휴먼 (Homo Intelligence or Super Smart Human; 세종의 표현)의 시대가 온다고 한 목소리로 미래 전문가들이 떠든다. 인간이 드디어 태양계라는 은하계 변두리 지역에 있는, 그리고 거기에서도 변두리 외딴섬인 지구를 벗어나서 은하계를, 그리고 옆 동네 은하계인 안드로메다를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빛의 속도로 은하계를 여행하면 시간도 거의 멈추기 때문 (상대성 이론)에 인간은 거의 늙지도 않는다. 동시에 인간의 몸속에서 활동하는 수십 억 마리의 나노봇 (nanobots - 1밀리미터의 백만분의 일 크기의 로봇들)들이 우리 몸을 자동차 부품 고장 나면 고치고, 부품 갈아 끼우듯이 우리 몸의 세포나 세포핵을 고치고, 고장 난 세포들 그리고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를 갈아 끼우기 때문에 인간은 처음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고 많은 미래 전문가들이 예측한다. 다음 세기에 인류는, 아니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다고 세종은 상상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죽기 싫어도 죽었다며?, 암이 사람 잡던 시대가 있었데!, 너 근데 그거 어떻게 알았어? 인체 냉동 보관 방식 (cryonics)의 통에서 나오신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그래서 그 통에 2-30년 유리처럼 굳은 채로 좀 답답하게 계셨었다고! 그 답답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근데 너네 증조할아버지 그 말로만 듣던 혐오스러운 슈퍼리치 (the super-rich - 재산이 한국 돈으로 1조 원 이상 가진 넘들을 일컫는 역사적인 극혐 호칭)였었니? 너네 가문 정말 대단히 포악한,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이코 패스 가문이었구나! 정말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21세기 자본주의에서 나머지 동료 시민이 배고파서, 물이 없어서, 간단한 에이즈 약 같은 것들이 없어서 수없이 애 어른 할 거 없이 죽어 가는데 혼자 이 모든 게 남아도는 데도 사람들이 죽는 걸 무시하고 혼자 편하게 살았던 그 족속들의 후손이 너였니? 아냐 절대 아냐! 네가 우리 가문을 상놈의 가문으로 보는구나? 우리는 그런 호래자식 집안이 아니야! 냉동보관기술은 돈이 많아야 되는 거 아니었어? 아니 백 년 전 (2016)에도 보험으로 매달 조금씩 납부하는 방식을 통한 인체 냉동보관 서비스가 있었데!............’
이런 종류의 대화들이 가십 (gossip)이 되는 세상을 우리를 개, 돼지라고 부르는 교육부의 나 기획관은 상상했을까? 만약 상상하지 못했다면 이 글에서 주장한 세종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이 잡스러운 글 서론에서 제기한 세종의 걱정은 다음과 같다: ‘한국 교육제도가 인공지능 혁명이 이루어진 시대에 최소한 개, 돼지 정도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아니면 폐기 처분되거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지적 능력만을 가진 인재를 붕어빵 기계의 붕어처럼 똑같이 찍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세 번의 혁명과 인공지능?
인류 역사에 크게 세 번의 혁명이 있었다. 첫 번째는 곡식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숲이나 나무를 빨리 찾았던 사람 그리고 동작이 굼뜨거나 신경이 둔한 동물을 먼저 찾아서 사냥을 할 수 있었던 그냥 운이 좋았던 사람들을 별 볼일 없게 만들었던 혁명이었다. 바로 농업 혁명이다. 이 혁명은 대략 지금으로부터 1만 2천 년 전에 일어난 걸로 알려져 있다. 이제 뜀박질을 잘하거나 동물을 잘 사냥하는 사람보다 집을 잘 짓거나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로 즉, 세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다음 인류 역사에 찾아온 혁명은 지금으로부터 2-3백 년 전에 발생해서 사람들이 쥐고 있던 삽과 곡괭이를 버리고 도시로 모여들게 만들었던 산업혁명이다. 이 혁명에서는 갑자기 대신 농사를 줘 주던 농노가 다 도시로 가면서 갑자기 상당히 많은 수의 귀족들이 새가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생산수단을 가진 기업가들이 결국 귀족들 위에 올라서서 그동안 받았던 설움과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또 세상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농노들은 단지 월급 노예로 전환되었다.
세 번의 혁명에도 다수는 불행한 세계??
그리고 마지막 혁명은 지금으로부터 (2016) 대략 한 세대 전에 시작된 인터넷 혁명이다. 전 세계 흩어져 사는 인간을 묶어주고 이들이 만들어 낸 지적 산물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만든 네트워크 혁명이다. 이 혁명은 야후, 구글, 페이스북 등의 테크 거물들의 이름을 평범한 시민의 입 속에 넣어 준 혁명이었고 이 혁명은 또 하나의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혁명이다. 물론 인터넷 혁명은 전통적인 기업을 경영해 온 기업가들보다는 실리콘 밸리의 테크 산업의 CEO들을 빛나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제조업이나 자원 관련 산업의 기업가들보다 테크 관련 기업가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나 구글, 인텔, 오토데스크 (Autodesk) 그리고 애플과 같은 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을 더 혁신적이고 더 멘토스럽게, 그리고 더 섹시한 문화적인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 세 번째 혁명에서 시민 다수는 이 최고경영자를 우러러보는 배고픈 관객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지는 재능 vs. 뜨는 재능?
어쨌든 첫 번째 혁명부터 특정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지고 다른 특정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마디로 ‘뜨는’ 현상들이 생겨났다. 돌멩이 던지기와 졸라 잘 달리기 등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서 끈기 있게 농사짓고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라고 세종이 말할 줄 알았나? 아니다. 힘센 놈에게 그리고 지주에게 권력이 농업혁명 이후에 넘겨졌다. 그리고 이 지주들이 산업 혁명에 이르는 거의 만 년에 가까운 시기 동안 귀족이라는 계층을 형성해가며 권력을 독점했다. 이 소수의 귀족들은 교활한 지배 이념으로 다수를 지배하는 방법 즉, 지배 이념을 다수의 뇌 속에 심는 방법을 통해 다수를 쉽게 조종해왔다. 종교가 대표적인 교활한 지배 수단이었다. 지배 이념만으로 다수의 지배가 힘들어지고 그래서 반란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람들의 저항을 짓밟았다. 그러다 그다음 혁명에서 이 귀족 계층은 수 명이 다하고 새로운 권력 귀족이 등장한다. 기업가들이다. 이 기업가들은 이전 지배계층인 귀족이 가졌던 대중지 배의 교활한 술수와 공포정치 방식에 능통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공장에서 물건 많이 만들어 졸라 돈 버는 기술이라고 세종이 말할 줄 알았나? 아니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거의 헐값으로 사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경찰에 노동조합의 파업 진압과 노동자에게 폭행을 가할 것을 요구함을 통해서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지키는 매우 혁신적인 기술을 몸에 체득했다. 그리고 수많은 정치인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창의적이고, 동시에 이젠 식상해진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기 회사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기업가들의 지갑 속엔 새로운 종류의 돈이 하나 더 들어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법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그래서 이 돈으로 자신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법을 만들어 마치 서민들이 돈을 지갑에서 꺼내 쓰듯이 기업가들은 그 법을 지갑에서 꺼내어 사용한다. 사실 세종의 분석이 아니다. 장 자크 루소의 분석이다. 자본가들은 사람들이 마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쓰듯이 법을 자신들의 지갑에서 원할 때면 언제든지 꺼내어 쓴다고 세종이 존경하는 루소가 말한 적이 있다. 어쨌든 이 신흥 귀족인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법과 정책을 만들게 함을 통해서 자신들의 기업경영 환경을 최적으로 만드는 금권정치 (plutocracy)의 시대를 열었다. 뇌물을 로비라는 합법적인 이름으로 정치인들에게 처먹이는 놀라운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 (masters)들이다. 그래서 마스터 카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립이다.
'소수'의 돈과 명예를 위한 혁신이 아닌
'다수의 복지'를 위한 혁신은 언제?
그리고 한 세대 전에 일어난 최근의 혁명에서는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나 자원 산업 분야의 기업가에서 새롭게 뜨는 젊은 테크 (Tech) 귀족들이 셔츠 단추 2-3개를 풀고 섹시하게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이 가진 새로운 기술은 말 그대로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세종이 말할 줄 알았나? 아니다. 이들은 ‘전지전능’한 신 (God)을 자신들도 모르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착한 신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사탄을 불러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끊임없는 혁신, 그리고 여가 활동을 잊은 채 경쟁을 해 나가는 데에는 자신들에게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다.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의 반이나 거의 99%를 기부한다. 그래도 평생 다 못 쓰고 죽을 정도의 돈이 그들에게 여전히 남는다. 이들에게 주어진 명예는 굳이 셔츠 단추를 2-3개씩 풀지 않아도 느껴지는 섹시함이다. 쇄골이 보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풍기는 섹시함이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선 이들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회색이란 단어에 50여 가지의 그림자 색깔 머 대충 이런 제목의 영화다. 이쯤 되면 부자는 변태여도 된다는 돈에 환장한 문화가 만들어 낸 정신 나간 문화적인 허용이다. 그래서 정말 이 테크 산업의 새로운 섹시한 최고경영자들은 자신의 섹시함을 선망하는 대중의 시선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착한 신인지 아니면 졸라 악한 사탄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술이 우리 사회에 가져 올 결과를 예측하지 않고 무작정 사람들의 관심과 선망을 사기 위해 앞 다투어 혁신 쩌는 기술을 발표한다. 문제는 이렇게 숨 가쁘게 진행되는 혁신적인 기술의 경쟁을 인류 공동의 선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 제도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가 바뀌는 속도와 혁신의 속도를 잠깐만 생각해보면 큰 일이라는 세종의 말에 쉽게 동의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도를 타는 사람보다 그 파도를 만들어내는
다수에 주목하자!
- 세종 -
어쨌든 세종이 보기에 이런 스타들이 뜨게 된 현상의 원인은 이 스타들이 우리 현시대가 만들어낸 파도를 그냥 우연히 올라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우연히 공대를 갔고, 그 공대에서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알고리즘이란 걸 짜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 신기술 혹은 혁신이라고 하면 환장하는 20세기와 21세기 미국에 이들이 태어났다. 다 우연이다. 지들이 태어날 시대와 장소를 골라서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부인한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세종이 말할 줄 알았나? 아니다. 운이 노력보다 졸라 더 컸다고 세종은 강력하게 주장한다. 셔츠 단추를 평소에 아무리 2-3개씩 풀어도 이 나르시시스트들보다 별로 섹시하지 않다고 평가되지만 그래도 세종은 운이 더 컸다고 말한다. 다시 요약하면 돈과 명예를 먹이로 주면 자신들의 기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 바로 이 테크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다. 이런 기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세종이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세종이 말할 줄 알았나? 아니다. 자신들의 혁신 때문에 경제적 살인 즉, 난 데 없는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수 십억 명의 precariats (precarious 불안정한 + proletariat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밖에 없는 빈털터리 노동자의 합성어)이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이코 패스 기술’이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관심 모으는 기술 하나 더!
우리 일자리를 전부 다 빼앗아갈 바로 그 기술 ‘사이코 패스’?
문제는 세종이 만들어 낸 신조어인 ‘사이코 패스’ 기술은 수십억 명이 가지는 불안한 미래에 관해 느끼는 감정에 전혀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이 사이코 패스들이 만들어 낼 세계 즉, 인공지능 혁명이 일어난 세계에서는 인간을 위한 새로운 직업의 출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혁명이 만들어 낼 새로운 일자리는 처음부터 인공지능이, 그리고 계속해서 인공지능이 맡게 될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큰 반면에 사라질 일자리의 종류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직종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 달 전쯤에 아이폰을 조립하는 중국의 팍스콘 공장에 로봇이 도입되어 6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는 뉴스가 외신을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 남의 나라 얘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살아 있는 아이언 맨이라고 불리며 동시에 대표 관종인 테슬라 사장 엘론 머스크는 내년에 소형, 대형 트럭부터 버스까지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를 출시하겠다고 2-3주 전에 자신의 ‘마스터플랜’이라며 기자들 모아 놓고 발표했다. 근데 문제는 이 자동차들에겐 준무인 자동 주행 기술인 ‘Autopilot' 기술이 탑재된 자동차들이라는 점이다. 테슬라의 무인자동차 주행 기술은 구글의 무인 자동 주행 기술보다 훨씬 앞서 있다. 왜냐하면 이미 테슬라 전기자동차는 대중에게 판매가 시작돼서 3년 이상 미국의 실제 도로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 기술은 한국에 유명하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테슬라의 무인 자동 주행 인공지능은 거의 항공기에 탑재된 수준의 인공지능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엘론 머스크의 마스터플랜은 미국에서 운전으로 밥 벌어먹는 3백만 명의 운송업 종사자들을 precariats (가진 것 몸 밖에 없어 해고될 경우 손가락을 빨아야 할 상황에 처한 불안한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으로 만들어 버렸다. 참고로 엘론 머스크는 그나마 자신의 사업이 가져 올 대량 실업을 대비해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론을 통해 최근 밝혔다. 그래서 사이코 패스 기술을 가진 아무 생각 없는 CEO 명단에서 엘론 머스크는 빠져야 할 듯하다. 세종이 보기엔 앞으로 5년 정도면 운송업 종사자들의 실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듯하다. 바로 오늘 세종이 생각공장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전한 아마존의 드론 꿈이란 기사도 향후 5년 내에 드론을 통한 첫 상품 배송이 세계 어딘가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이것이 가능해지면 소비자들이 주문한 상품의 운송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아마존의 한 이사의 흥분된 감정을 전했다. 그럼 온라인 쇼핑 몰의 거대한 창고 관리와 운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도 안전하지가 않다는 쉬운 예측이 가능해 보인다. 필자가 2달 전쯤에 모든 부품을 3D 프린터로 제작한 3미터 크기 정도의 모형 비행기가 비행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네이버 생각공장 블로그에 게시했다. 이 3D 프린팅 기술도 전 세계의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에게서 일자리를 본의 아니게 빼앗아 갈 것으로 예측된다. 세종이 지금까지 언급한 일자리들은 대부분 저 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였다.
누가 우리를 프리캐리아트 (precariats)로 만드는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은 ’ 기계 학습 (machine learing) 혹은 딥 러닝 (deep learning)'이라는 자기 향상 프로그램을 탑재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종류의 인공지능은 전통적으로 고수입 업종이었던 법률가, 의사, 그리고 기자들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직업을 야금야금 빼앗아 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왜냐하면 IBM이 개발한 슈퍼 컴퓨터는 2011년쯤 에 미국의 퀴즈 세계 챔피언 2 명을 한 게임에서 이기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이 인공지능은 직업을 바꿨다. 천재적인 진단 의사인 하우스를 넘어서는 정말 정확한 진단 의사가 되어 인간 의사를 능가해 버렸다. 엄친아다. IBM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시작이다. 경제와 스포츠 뉴스 분야는 인간 기자들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더 기사를 많이 쓰고 있고 잘 쓴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의 능력은 인공지능에 비하면 거북이 수준이다. 현재에 미국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는 거래의 절반이 인공지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펀드 매니저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의 일거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섹시하게 나오는 법률 전문가들 예를 들면,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미래도 밝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의 주된 업무는 재판정에서 토론 배틀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수많은 재판기록과 서류를 분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많은 서류와 재판기록 그리고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훨씬 잘하기 때문에 미국의 법률회사에서 인간 변호사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었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프리캐리아트 (precariates)로 만드는 인공지능?!
이 연구결과는 미국의 정책 연구소인 Pew Research Center가 2014년 8월에 발표한 ‘인공지능, 로봇공학, 그리고 자동화가 만들어 낼 2025년의 직업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의 내용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이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해 헬조선 최초 인문학 전문학원인 생각공장의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종합 지식인인 세종이 분석해서 강의했다. 자랑스럽다. 또한 교육서비스에 종사하는 초중고 그리고 대학의 교수들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판단하는 데에는 그리 큰 상상력은 요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단 변수가 존재한다. 이들의 머릿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가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좀 있다. 사실 1980년대 인터넷 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학교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왔다. 하지만 학교가 아직 건재하지 않은가? 공무원 중에 특히 교육 공무원의 밥그릇은 정말 철 밥통 같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입증된 것 같다.
마무리 글
요약하면 ‘인공지능이 누구 직업을 빼앗아 갈까?’란 질문은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앞으로 2-30년 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어쩌면 직업이란 말이 없어지거나 이 낱말이 갖는 의미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세종의 뇌를 더운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얼마나 비싼 누진율이 적용된 에어컨 바람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에어컨 바람이다. 드립은 아니었다. 좋다 인정! 그냥 시대 비평 드립이라고 하자. 근데 세종이 몹시 피곤하다. 더운 여름에 인공지능 특강을 하느라, 생각공장이라는 이름의 브런치에 세종의 통찰을 잡스러운 글의 형태로 옮겨 쓰느라,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 수많은 최첨단 테크 기사와 저널의 내용을 소개하느라 바쁜 세종은 몹시 피곤하다. 어쨌든 다음에 이어질 글은 ‘인공지능 혁명 시대에 어떻게 일 안 해도, 말 그대로 직업이 없어도 시민 다수가 여유 있게 살아갈 방법은 있는지?’에 관한 최신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직업 아니 어떤 활동을 인공지능 혁명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인간이 하면서 살아야 하고 살게 될까?’ 란 주제를 세종이 고민해 보려고 한다. ('생각공장의 시선 - 인공지능과 기본소득제가'가 이 글의 2편입니다. 신뢰할 만한 지식과 이에 따른 상당한 정도의 고민을 일으키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구독, 좋아요, 그리고 공유, 댓글'까지 달아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Bibliography
A. Smith and J. Anderson, 'AI, Robotics, and the Future of Jobs', Pew Research Center [website], <http://www.pewinternet.org/2014/08/06/future-of-jobs/>, accessed 25 Mar. 2016.
Tim Urban, 'The AI Revolution: The Road to Super-intelligence' WAIT BUT WHY [website], (updated 22 Jan. 2015) <http://waitbutwhy.com/2015/01/artificial-intelligence-revolution-1.html>, accessed 24 Jul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