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우드 Mar 28. 2022

하현달이 그믐달이 되어도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듯

도종환 시집 <사월 바다>를 읽다


“계단 있는 이층 집 살고 싶어.”

아이는 그 언제부턴가 이런 마음을 가졌던가

쉬러 갔던 휴양림이 복층인 것이 아이 맘에 스몄나 보다

한걸음 한 발짝 올라가는 동안

살짝 뜬 아이 마음도


‘작은 마당이 있으면 좋겠어.’

사르륵 흙을 만지고

맨질한 감자도 한 알 심어 흙 이불 덮어주고

모래로 두꺼비집 여러 채 만들어 작은 이웃 만들고

풀씨도 훠어이 흩날려

타고 있는 모닥불이 타다닥 말을 걸면


내 마음 깊은 곳에 늘 이런 마음이 있지.


언젠가는

조만간

잘하면

어느 순간이 되면

바로 눈앞에


우리 마음속에 있던 그 집

조금씩 구체화되어 손으로 만져볼 그 집.

- - - - - - - -

아래 시는 도종환 <사월 바다> 중에서 골랐습니다.


나머지 날


고립에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이층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봄이면 조팝꽃 제비꽃 자목련이 피고

겨울에는 뒷산에 눈이 내리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아침 기도가 끝나면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고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면 좋겠네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음의 물결에서 벗어나

적막이 들판처럼 펼쳐진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자작나무들과 이야기하고

민들레꽃과도 말이 통하면 좋겠네

다람쥐 고라니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평화롭게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네

낮에는 씨감자를 심거나 남새밭*을 일구고

남은 시간에 코스모스 모종과 구근*을 심겠네


고요에서 한 계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

단풍 드는 잎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나무들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곳에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 좋겠네

울타리 밑에 구절초 피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굽은 길이면 좋겠네

추녀 밑에서 울리는 먼 풍경 소리 들으며

천천히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네


짐을 조금 내려놓고 살았으면 좋겠네

밤에는 등불 옆에서 시를 쓰고

그대가 그 등불 옆에 있으면 좋겠네

하현달이 그믐달이 되어도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듯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묻지 않으며

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나를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벽난로의 연기가 굴뚝으로 사라지는 밤하늘과

나뭇가지 사이로 뜬 별을 오래 바라보겠네

 - - - - - - - -

따로 사전에서 찾아본 말


남새밭 : 채소를 심어 가꾸는 밭

구근 : 지하에 있는 식물체의 일부인 뿌리나 줄기, 잎 따위가 달걀 모양으로 비대하여 양분을 저장한 것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를 등원시키는 효과 빠른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