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을 받았는데 왜 못쓰니
아이가 어버이날 선물을 가져왔다. 쿠폰이다. 삐뚤빼뚤하게 자른 쿠폰을 보니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직접 잘랐네. 노력이 가상하다. 쿠폰을 아이가 직접 전달 할리는 없고, 저녁에 유치원 가방 정리를 하다가 왠지 내 거(?) 같아서 꺼내봤다. 쿠폰이 6개나 된다. 하나씩 살펴보니 청소하기, 뽀뽀하기, 안마하기, 심부름하기, 빨래 널기, 식사 돕기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매일 하는 집안일 아닌가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반드시 하는, 그런 기본값이다.
쿠폰을 받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지난해 학교에서의 일이었다.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만들었겠지. 가족은 항상 고마운 사람이지만 가장 가까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쉽다. 그런 가족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은 일 년에 고작 한 두 번뿐이다. 카네이션을 곱게 접고, 쿠폰을 만드는 것은 부모님의 수고를 기억하자는 작은 활동이었다. 쿠폰의 내용을 직접 쓰고, 알록달록 꾸며 쿠폰을 완성한다. 쿠폰 내용은 제각각이 이었다. 대개 집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한 번 더 고민해보고 할 수 있는 가족을 위한 일이면 뭐든지 된다고 했다. 만약 집안일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면 이번에 한 가지라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교사로서의 의도도 포함된 것은 물론.
며칠이 지나 의외로 이 쿠폰이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다. 어버이날이 지나고 지나가듯이 물었을 때, 쿠폰 다 사용한 사람 손들어볼래? 하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쿠폰을 쓰고 싶은데 부모님이 귀찮다고 성가시다고 저리 가란다. 쓴 걸로 할 테니 거기 두란다. 5학년 정도 된 아이들은 설거지, 청소, 빨래 등 모든 집안일이 가능할 텐데, 부모님이 볼 때는 뭔가 성에 차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 듯하다. 그래서 쿠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책상 위에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쿠폰은 써야 제 맛인데 아이들도 아쉽고, 듣는 담임으로서의 나도 뭔가 아쉬웠다.
예전에는 집안일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그 속에 내 역할이 항상 있었다. 방 정리를 하거나 식사 후 먹은 그릇을 치우거나, 반찬 뚜껑을 덮는 것은 당연히 내가 할 일이었다. 집안일을 하면서 나도 가족 안에서 내 역할이 있었고, 원활하게 가정이 돌아가는데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요즘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집안 살림의 규모도 예전 대가족에 비하면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바뀐 환경 속에서 가족이 함께 사는데, 일을 분담하지 못하며 결국은 누군가가 더 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그 대상은 엄마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엄마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들이 서투르게 하는 집안일을 기다려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차라리 내가 빨리 해치우면 한 번에 할 수 있으니까. 이래 저래 어른이 직접 하는 것이 효율성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에서 효율성을 논하기는 참 어렵다. 아이들은 어른과 비교해서 당연히 효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경험도 부족하고, 요령도 없기에 계속 연습할 기회가 필요하다. 그 기회를 어른이 뺏어간다면 아이들은 현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효율성 이전에 아이 입장에서는 쿠폰이 열심히 만든 작품(?)인데 부모님께서 활용을 못하며 실망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작년 함께했던 5학년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겉모습은 영락없이 어른 같으면서도 입을 여는 순간 아직 덜 여물었구나 하고 매번 깨닫는다. 한 번은 한 아이가 자신이 만든 쿠폰이 쓰이지 않은 채 쓰레기통에 들어있었다고 내 눈을 피하며 말을 하였다. 마치 내가 쿠폰을 만들자고 하여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고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 뭐라고 대답을 해줬던, 그 말이 위로가 안 되었을 텐데… 참 미안했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일어나는 배움이 단지 이론이 아닌 결국은 가정과 사회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교육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학교와 가정이 서로 연계가 되었을 때, 아이가 낯선 사회에 나가서도 서투르게나마 적응하는 것이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쿠폰일 뿐이지만, 꼭 써주시면 좋겠다고 가정에 알림을 보내는 것은 이런 내소망을 담은 행동이었다. 만약 이번 어버이날에 쿠폰을 받았다면 당당하게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 아이가 부모를 생각하면서 정성껏 만든 쿠폰을 쓰면서 아이와 한번 더 소통하고, 아이가 한 번 더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면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서로 좋을 것이다. 쿠폰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학교가 그리워지면서 슬며시 웃게 된다. 벌써 그곳이 그리워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