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게 맞는 담임은 따로 있을까.

출근은 싫지만, 학교는 좋습니다.

by 그린우드


넌 학교랑 맞지 않아. 금방 그만두고 나올걸.”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교사가 돼야지 하는 생각에 다니던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했다. 그 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많이 좋아했고,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한 언니였다. 생각보다 나를 더 잘 아시네요. 빙긋이 웃었다. 나는 다행히 아직 학교에 잘 있다.


선생님은 내가 보니까 성격이 많이 느긋한 것 같아요. 그런데 선배 교사들이 이미 베테랑이고 빠릿빠릿한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겨울방학을 앞두고 새 학년 배정시기에 교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 해 나는 원하는 학년을 맡지 못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은 싫지만, 그곳이 학교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11년 차 초등교사이다. 좋아하는 학교임에도 여전히 낯설고 어려워 부적응 교사라고 스스로 가끔 생각한다. 부적응이라고 하면 학교라는 사회에서 겉돌고 뭔가 빈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나에게는 맞는 말이다. 난 아직도 여러 교사들 틈에 있으면 조금은 주눅 들고 덜렁거리고 이유 없이 느긋해 보이는 사람이다. 또한 말주변도 별로 없고, 소위 말하는 말발이 없어서 아이들을 어떻게 휘어잡느냐가 최대 고민인 소심한 귀뚜라미 교사다. 그러고 보니 위의 두 사람 말이 어느 정도 맞는 것 하다. 공통점은 내가 교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교사에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일까.


교사에도 다양한 분류가 있다. 수업 내용을 잘 가르치는 교사, 아는 것이 많은 교사,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 일처리에 빠른 교사, 그리고 나처럼 그냥 교사. 교사에 어울리는 성격이 뭘까 떠올리면 아이들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이고, 규칙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리 원칙주의자로 빈틈이 없으며, 뭔가 존재만으로 위엄이 느껴지는 딱 봐도 그런 사람이 있다. 타고난 교사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아우라를 풍기는 교사 말이다. 나는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 그냥 교사라 오늘도 버둥거린다. 그럼 나는 교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까.


내가 어떻게 교사를 할 수 있냐며, 여전히 부모님조차 갸우뚱하신다.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냐면서 때로 나의 안부를 물어보신다. 올해는 몇 학년을 맡았는지, 교실에 속 썩이는 아이는 없는지, 옆반 선생님은 누가 됐는지 궁금한 게 많으신가 보다. 여전히 부모님 눈에는 어리숙한 자식으로 비치나 보다. 할 말 제때 못하고, 감정적이고, 줏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성격에 언제든지 규칙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내가 교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 아실 테지. 그런데 이런 나도 교사로 지내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 나에게 맞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고, 학교라는 사회에도 다양한 학생과 다양한 교사가 있다. 다양한 학생이 있다는 것은 그 아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사는 이래야 한다는 교사들만의 고정관념이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가 좋고, 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매년 어떤 담임을 만나느냐가 학부모의 최대 관심사다. 올해 담임을 잘 만났다는 아이들이 말하면 부모로서는 일단 안심이다. 아이들의 눈은 꽤 정확하다. 담임교사에 따라 아이들은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기도 하고, 아무리 뛰어난 담임을 만나도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아이는 1년 내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아무리 교사가 최선을 다해도 아이들과 닿지 않기도 하고, 별로 노력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저 잘 맞는 학생과 담임이 있기도 하다. 아이러니하지만, 학교도 결국 사회의 한 부분이기에 조금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덜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동료 교사와 조금 다른 성격으로,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학교 생활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매년 날짜만 다르게 바꿔 행하는 학교에서의 교육과정, 너무나 익숙해진 학생 생활지도를 할 때 이게 맞는 것인가 고민하는 것. 너무나 당연하여 잊고 있던 것을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끔은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듣고, 능력 있는 교사들 사이에서 치이는 다소 불쌍한 모습도 있지만, 나로 인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신나는 일이다.


출근은 싫지만, 학교는 여전히 좋다. 오늘도 나는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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