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진지하게
덕질. 덕질이란 무엇인가?
무릇 모든 뭐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땐 정의가 필요한 법이다. (Justice 아닙니다.)
덕질이란 단어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파생된, 오타쿠를 구성하는 한자를 음 그대로 읽어 생겨난 단어 ‘오덕’의 파생어다. 비슷한 단어로는 ‘마니아’, ‘팬’ 등이 있다. 일본에서의 ‘오타쿠’는 음습하고 부정적인 의미여서 초창기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비슷한 뉘앙스였지만,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덕질’은 주류적인 의미를 얻어낸 듯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별안간 내 주변에 ‘덕후’ (오-타쿠)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마니아라는 말이 뭔가 고급진 취향을 아주 정중하고 품위있게 즐기는 느낌을 준다면, ‘덕후’는 그보다는 이런 저런 다양한 것들에 푹 빠져들어 ‘마니아와 팬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인상을 준다. 영화 덕후, 만화 덕후, 음악 덕후, 책 덕후, 그 전부를 좋아하는 그냥 찐 덕후…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참 한없는 일반인이란 생각이 들어 입 밖으로 꺼내면 그들은 나에게 “유유상종인데 어딜 도망가”라며 나를 애써 덕후의 범주에 엮어놓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난 내가 딱히 덕후도, 덕질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486 컴퓨터와 게임들, PC통신, 인터넷, 1세대 아이돌, 야구, 농구, 축구 등등에 미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나 또한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정도였지 흔히 말하는 ‘사생팬’들처럼 어느 특정 대상에 맹목적으로 미쳐있던 기억은 없…
다고 하려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불과 1년 전이었다. 그 깨달음이 쌓이고 묵혀 있다가 지금 이 글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덕후다. 나는 인생 전체에 걸쳐 덕질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 내가 제대로 미쳤던 첫 번째 대상은 ‘교회’였다. 하나/느님이나 예수라고 하고 싶지만, 뭐 실제로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그런 것 같다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그렇듯이 사람의 ‘마음 문’을 열어제끼는 건 교회와 그 안의 사람들이니까.
교회를 다니기 전까지의 나는 컴퓨터 게임과 음악을 조금 좋아하는 수줍음 많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음악은 패닉이나 윤도현 같은 뮤지션부터 ‘오버그라운드’의 음악 중에서 좀 괜찮은 것들을 따라 좋아하는 수준이었다. 교회는 아웃 오브 안중 정도가 아니라 꼬꼬마 시절 친구 따라 떡볶이 얻어먹으러 갔다가 “부처님 믿으면 지옥 가요”라는 전도사의 말에 나이롱 불교 신자로서 대충격을 받고 친구들과 “대머리 깎아라” 놀이를 할 때면 “하나님” 대신 “부처님이 깎아주신대”라고 소리치거나 “후레쉬맨”이 필살기를 쓸 때 뒤에 등장하는 부처님을 보고 종교뽕이 차오른다거나 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가 친구 따라 교회를 간 이유는 순전히 외로워서였다. 수줍음 많고 부끄러움도 잘 타는 내게도 베프라 할만한 친구가 있었고 심지어 그 친구와 둘이 종로에 징거버거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 당일치기로 단양에 기차여행을 갔다 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나는 감수성이 민감하다는 점에서 너무 많이 닮아 있었기에 즐거운 만큼 서로의 에너지를 빼앗는 사이였던 것 같다. 그러니 단짝처럼 지냈어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을 것이고, 교회에 다니던 친구 녀석이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당시의 나는 키가 작았음에도 농구하는 걸 참 좋아했다. (아이고…이것도 덕질같은데…) 망설이는 나를 향해 친구가 던진 최후의 카드는 교회 동갑 친구들과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거였고, 거기에 홀랑 넘어가 장장 십 년이 넘는 시간을 신앙 덕질을 하며 살았다.
외롭다는 건, 외로움을 크게 느낀다는 건 다른 존재가 끼어들 수 있는 커다란 빈 틈이다. 그 때의 내겐 실제로 그랬던 것 같고, 그래서 나를 환영하는 교회 사람들이 좋아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신나게 놀다가도 예배시간이 되어 통성기도(울부짖으며 하는 기도)를 할 때면 세상이 무너질 듯이 울며불며 기도하는 모습이 낯설다 못해 무섭고 기이하기까지 했지만, 그 때의 내게 그런 “갭”은 일종의 “모에”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내 덕질의 대상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갭모에’다.) 짧은 시간 안에 나 또한 그런 전형적인 교회 청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했으니까.
당시 교회에 동갑내기 친구들이 나 포함 6~7명 가량 됐는데, 고3이 되어 다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면서 학교와 교회를 오가는 단조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교하면 교회에 모여 공부하는 척 놀다가, 있는 예배 없는 예배 (새벽기도는 거의 제외) 다 참석하며 찬양팀도 했고, 놀고 먹는 것(?) 못지 않게 각자 악기를 배우며 찬양팀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게 커다란 관심사였다. 내겐 그 또한 덕질이었다.
심지어 대학 진학 후 청년부가 되면서는 나 또한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심지어 심지어 다들 다른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인서울 대학이라는 점 때문에 이 교회에 미친 인간들은 급기야 교회에 모여 거의 매일 잠을 자기에 이른다. 이른바 “교숙”을 시작한 것이다. 교회에서 놀고 먹고 자고 예배 드리면서 나는 점점 교회 내에서의 “찬양 사역”이라는 것에 몰두하게 되었고, 기독교 음악 CD를 미친듯이 사 모으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사귄 친구가 기독교인이었는데, ‘하필’ 걔도 기독교 음악에 나만큼 미친 애여서 음반을 추천받았고, ‘하필’ 찬양집회에서 인도자가 “집에 있는 세상 노래 음반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 찬양하는 노래만 들으십시오”라고 외치는 바람에 가요 음반을 다 버렸고, (…) 돈도 많지 않은 그 시절에 한 달에 3~4장은 꼬박꼬박 기독교 음반을 사 들었다.
이 쯤 되면 사람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종교가 덕질의 대상이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종교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거지 님 같은 식의 몰두하는 행위는 실제 종교적인 본질과 동떨어져 있잖아요.”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울지도.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다른 종교는 잘 모르니까 제끼고 기독교라는 종교의 궁극적인 대상인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친한 사람도 거리가 멀어지면 관계가 소원해지기 일쑤인데,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기독교라는 종교에겐 신앙을 지켜줄 장치가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종교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토대 위에서 상징이나 제의 같은 ‘굿즈’를 생산한다. 그걸로 당연히 신을 완전히 설명할 순 없고, 신을 향한 마음을 유지하고 북돋는 방편으로 사용된다. 그런 면에서 각 신자마다 종교 안에서 집중하는 영역, 몰두하는 분야가 다를 것이다. 나의 ‘종교 음악 덕질’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튼 내가 했던 “기독교 덕질”은 내 인생 전반의 가치관과 방향을 바꾸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드러나지는 않았던 나의 무언가를 흔들어 깨웠다고 할 수 있겠다. 너무 종교적인가? 신의 섭리라든가 예정되어 있었다든가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나로서 살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건 종교였고, 그 종교는 어떤 방향으로든 내 삶을 변화시켰다는 이야기다. ‘덕질’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내가 변화되는 경험을 한 게 이 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기독교 덕질이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게 잡아준 데는 또 다른 덕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이다. 이것도 사실 ‘덕질’이라고 수식하기에는 좀 어색하긴 한데, 흔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진보라고 부르는 어떤 이야기들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희한하게도 내가 이 덕질을 시작한 시기는 교회에 처음 나가던 시기와 비슷하다. 둘 다 고등학교 시절 일어난 일인데, 개인적인 사건에 대한 충격과 당시 학교의 전교조 선생님들로 말미암아 사회(노동)운동과 전태일, ‘신영복’이라는 거대한 선생님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90년대 말에 고등학생이 실제 투쟁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했으니 말 다했지 뭐.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던 (이 문구도 워낙 맥락이 삭제된 채로 무슨 대전제인양 쓰이는 게 문제긴 하지만)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나는 한 쪽으로는 ‘뽕(?)’을 맞고 한 쪽으로는 현실이 날리는 ‘싸다구’를 맞으며 그야말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20대를 살았다. 신영복 선생님이 좋아 그 분이 계신 학교를 재수끝에 들어가 처음으로 그 분의 수업을 직접 들었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용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마다 보여주셨던, 선생님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사람의 느낌은 지금도 선명하다. 저런 분을 그야말로 ‘선생님’이라고 하는구나, 늘 그런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학교는 특성상 소위 진보적인 기독교 신학을 가르쳤는데, 이 때문에 두 덕질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순간도 많았다. 종교와 사회정의, 그 어느 쪽도 나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나를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내 20대는 두 덕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오롯이 쏟아부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와 사회운동은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덕질의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둘 중 어느 쪽을 따르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덕질임을 인지하고 인정할 때 되려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종교나 정치(운동)가 자신을 망가뜨려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고 내가 나 자신으로 살며 다른 이들과 어우러져 살려면, 오히려 가장 덕질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대상이 얼마든지 덕질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몇년 전 문화영역의 일자리에 도전하면서 에세이를 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썼던 에세이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건 기독교, 사회운동, 음악이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종교를 덕질할 때조차 내 옆을 떠나지 않았던 건 바로 음악이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듣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느 순간 노래를 쓰고 부르는 내가 있었다. 작곡의 동기부여에서 종교만큼 확실한 건 없다. 내가 만든 첫 노래도 신앙에 대한 고백의 노래였고, 이후로 가끔 쓰던 노래도 대부분 종교 음악이었으니까. 다만 그런 식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행위에 물꼬가 트이자 창작의 욕구가 주제를 가리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건 2013년이었다. 처음으로 공연에 섰던 날을 기준으로 하면 말이다. 들을 만한 곡을 썼던 건 2012년 말이었고, 그 곡은 음원이 되어 <찹쌀떡>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이후 몇 년간 폭발적으로 곡을 썼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든 음악을 하며 살고 싶었고 음악으로 먹고 살고 싶었다. 당시 여기저기서 알바를 할 때마다 음악을 한다고 소개하면 “좋아하는 일 해서 좋겠다”,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두 가지 반응에 시달려야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로는 한동안 노래를 쓰지도, 부르지도 못했다. 아이패드와 간단한 오디오 인터페이스만 가지고 혼자서 한 주에 한 곡씩 자작곡과 커버곡을 업로드하는 <주간 엔틸드> 프로젝트를 1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참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었고, 무엇보다 음악을 찐하게 덕질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어떻게든 음악을 놓지 않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은 한다. 음악은 덕질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고통의 대상이기도 하다고. 이건 어떤 덕질의 대상이든 필연적으로 줄 수밖에 없는 고통과는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종교도 사상도 음악도 그 궁극적인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들음으로써’ 음악이라는 대상을 즐기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내가 덕질의 대상을 ‘창작’하게 되는 순간 어떤 선을 넘게 되는 것이고, 그 선 너머는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싫어진다.”고들 말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인류가 내가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게 불과 150여년 전이다. 그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직업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었고, 대다수의 인류는 내려진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는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싶은 것, 해야하는 것들이 마구 뒤섞여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종교를, 사상을 덕질한다는 이야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하고싶은 것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인류는 이제 막 알아가는 중이다. 덕질은 생각보다 훨씬 의미있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갈 힘이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그 마음에 솔직할 수 있고, 또 그 덕질이 나와 그 대상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고받는다는 대전제만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덕질학개론마냥 진지하게 이야기했다면, 다음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덕질의 대상들과 함께 즐겁고 신나는 덕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다만, 이 글을 준비하는 와중에 나의 덕질 일대기에 슬픈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났으니, 아쉽게도 하늘을 날아갈 듯 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양해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