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딜레마, 민간 중국,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예전에 산 옷 중에 맘에 들어 자주 입는 상의가 있다. 베이지 컬러에 접힌 깃이 아니라 한쪽 깃만 남아있어 단추를 모두 잠그고 거울을 보면 언뜻 중국인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머리를 짧게 하고 안경만 동글뱅이로 바꿔주면 '모단'하던 그 시절 상하이를 활보하던 청년처럼 보일 것 같은. 모든 것에 대해 그렇듯 우리는 무엇과 무엇을 연결지을 때 그 대상의 지극히 피상적인 단면을 끌어온다.
당신이 생각하는 '중국'은 어떤 곳인가? 나에게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 시진핑의 독재정권, 조선족이 사는 나라, 수많은 소수민족과 화합하지 못하는 나라, 중화인의 높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 멋진 무협영화가 탄생한 나라, 혹은 80년대 '홍콩'영화같은 것들로 기억된다. 21세기 초의 중국을 잠시나마 직접 경험했음에도, 중국은 너무 어려워서 피하고 싶거나 너무 가리워져 있어서 밋밋한 나라였다.
어떤 면에서 중국은 북한보다도 더 안개에 가리워진 곳이다. 같은 민족이 사는 북한에 대해서는 좌에서 우까지 거대한 이념의 스펙트럼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다양한 이미지들을 생산해내지만, 중국은 민족이 다를 뿐더러 역사적으로 맺어온 관계 때문인지 어려움과 두려움같은 것들이 앞을 가로막아 저 넓은 땅만큼 광대한 중국이란 장소에 대한 탐구심을 방해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의 존재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마 21세기 초반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전까지는 국교수립으로 중국은 '자본주의의 첨단에 선 한국이 들어가 정복할 땅'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그러한 공격적인 투자와 진출이 이어졌지만, 21세기를 기점으로 한국 언론들은 앞다투어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를 견제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의 정권이 몇 차례 바뀌면서 무서운 성장세를 바탕으로 중국은 실제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거인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저 어렵거나 알수 없었을 뿐인 중국은 이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언론이 떠다 주는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기사가 아니라, 저 어렵고 두려운 거인 속에 살며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당장이라도 내가 사는 땅의 숨통을 조여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저 거대한 나라 속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알면, 나를 뒤덮고 있는 이 두려움과 막막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짙어지던 때, 마침 적당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오늘 소개할 세 권의 책이 그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지금의 중국, 굳이 꼽아 말하자면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었다. 그저 어렵고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중국이지만 한국에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조선족, 각자의 사정으로 중국 본토로부터 건너온 화교가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고, 대만과 홍콩은 우리와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들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의 존재는 우리의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시진핑이 만들고 있는 중국은 어떤 모습인가? 박민희의 <중국 딜레마>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나머지 두 책보다 시진핑 개인과 그 체제의 형성, 그것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집중하여 다루는 이 책은 마오쩌둥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활용하고, 또 이용당하는 가운데 권력을 공고히하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겉으로는 쓰러뜨려야할 적국으로 맹비난하면서도 뒤로는 자본을 매개로 숙적인 미국 경제계와 어떻게 암약하는지를 확인하다보면 시진핑 정권 또한 여느 독재정권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복잡다단한 세계정세 속에서 중국을 더욱 거대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저 넓은 땅이, 많은 민족이,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착취와 배제와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조문영을 비롯한 12명의 저자가 참여한 <민간 중국>에서는 12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동안 단편적이고 경직된 이해로 점철되어 있던 중국을 좀 더 가깝고 부드럽게 이해하게 도와준다. 인류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중국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 교류하며 얻어진 결과물을 담아낸 이 책에서, 우리는 넓은 땅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살고, 같은 시간에서 다른 시대를 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혼란했던 중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 그들이 발전시켜 온 중국 공산주의 체제, 점점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지금의 중국이 뒤섞여 베이징에 사는 사람과 윈난성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서 이 뒤섞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택한 책은 한국의 사회운동가인 홍명교가 2018년부터 1년여간 중국에 머물며 중국의 사회운동(혁명)가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은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지금의 시진핑 체제는 언론을 통제하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전 국민적인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며, 그의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그 저항자들이 심지어 '마오쩌둥의 이론으로 무장'되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현 중국의 크나큰 사상적 모순이다.
이 거대하고 엄혹한 '시진핑의 중국몽'에서 깨어나 저항한다는 것은 한국에 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견디는 일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책을 통해 그 어려움을 견디며 노동자와 연대하고 페미니즘 운동을 펼치며 사상적으로 대항하는 중국의 젊은이들과 만난 이야기를 전한다. 중간 중간 문득 문득 한국의 역사를 만들었던 크고 작은 투쟁과 저항의 역사들이 겹쳐보인다.
나는 김치를 즐겨 먹는다. 내가 사랑하는 김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든 일본에서 시작되었든 크게 개의치 않지만, 굳이 없던 사실을 지어내고 있는 사실을 비틀어가면서까지 일본이 독도를, 중국이 김치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데는 당연히 국제정치적 역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차원의 과격한 행보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 민족의 이름을 빌린 국가의 속임수에 놀아나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혐오하고 국가 폭력을 옹호하게 된다.
내가 중국이 두렵고 어려웠던 이유는 첫째, 중국이란 나라가 가깝고 강한 나라라서였고, 둘째,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읽으며, 한국과 중국 뿐만 아니라 서로 가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아시아의 사람들로부터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만남과 연대가 절실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인이거나 중국인이기 전에 같은 인간이고, 살면서 바라는 것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런 우리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싸울 필요가, 사실은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각자의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우리는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