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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Sep 19. 2021

국가로 듣는 세계사

Republic or Death!

국가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 있는가? 국가國家 말고 국가國哥 말이다. 한글로 풀면 나라의 노래.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 <국가로 듣는 세계사>는 이 단순하고도 역사적인 질문을 가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탐사기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일까?  국가國哥 말고 국가國家 말이다. 아마 이 질문은 좀 더 많이 해봤을 것이다. 책의 원제가 보여주듯, 국가國哥는 근대국가 태동 즈음에 그 개념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 전까지는 국민국가라는 개념도 없었고, 민족이나 왕가가 아닌 다른 국가체를 위해 뭉쳐 싸우고 노래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홍보를 위한 포스팅에서 처음 본 이 책의 알록달록한 표지 디자인에 눈길이 갔던 차에 국가(음악)와 세계사(역사)라는 영역의 만남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용도 그리 무겁지 않을 듯 했다. 다행히 내 예측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애국가' 멜로디가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을 차용한 적이 있음을 전한다. 남한에 사는 이들 중 이 사실을 몰랐던 이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다. (심지어 내 어머니는 어릴 적 그 올드 랭 사인(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으로 애국가를 불렀던 기억을 갖고 있다.)


나는 음악적으로 큰 불만은 없지만, 저자는 안익태가 작곡한 새 곡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민중이 입으로 전해불렀던 노래가 아닌 것이 가장 걸린다고. 그러면서 아리랑이 일종의 국가와 같이 한민족을 대표할만한 노래 아니겠느냔 의견을 피력한다. 뭐, 근데 책에서 전하는, 이 놈 저 놈 여기저기서 만든 노래들이 어찌어찌 국가가 되는 과정을 읽고 있노라면 자꾸만 아리랑의 곡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안익태의 애국가를 어떤 심정으로 듣고 부르고 있을까? 나는 공중파 방송국이 방송을 시작할때나 끝낼 때 노래의 배경으로 깔아주는 역사적인 사건들 - 특히 2002년 월드컵 골 장면 - 에서 더 큰 감정적 동요를 느끼는데 말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 특히 예비군 훈련이 끝난 후로 - 민방위 훈련이나 야구장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살포시 얹지 않기 시작했다. 일본의 기미가요가 흘러나올 때 자리에 앉아있는 일본인만큼의 용기가 없어서 툴레툴레 자리를 털고 일어나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야구장엔 일부러 조금 늦게 들어간다.) 내가 아나키스트라 불릴 만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난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말하는 다짐에도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국가 체제라는 것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 정도면 아나키스트가 맞는 건가?)


나처럼 국가와 국가(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세계 곳곳의 국가를 찾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꽤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이색적인 나라의 국가를 듣는 경험을 넘어, 국가와 국가(노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 삶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기존의 딱딱하고 무거운 태도가 아니라 조금은 색다르고 가벼운 톤으로 생각할 수 있게 돕는 책이니 말이다.


그래도 저자도 말하고 나도 동의하는 중요한 점 한 가지. 우리가 아직은 국가 체제를 떠나 살 수 없는 것처럼, 자기네 나라의 지금의 국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심을 두지 않든 국가 체제에 속해있는 한 우리는 국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사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처럼, 국가(노래!)에는 그 땅을 살고 갔던 이들의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묻어있다는 것.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국가가 '아리랑'으로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그 생각을 길게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그냥 곡조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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