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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Mar 10. 2022

내가 겪은 선거들

제가 어렸을 적, 그 땐 나름 한국이 잘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형식적 민주화 쟁취 이후로 최초의 문민정부가 탄생했고, 공과는 있지만 그만의 리더십으로 "역사 바로세우기", "금융실명제", "전두환 노태우 사형 선고" 등 말 그대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이벤트가 팡팡 터졌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리고 아직은 허약한 경제체제의 시한폭탄이 터지지 않았던, 그래서 새로운 문화가 태동 발전했던, 꽤나 풍요로운 시절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엄혹했다던 IMF 체제에서도 개인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없었고, 저는 돈때문에 학원을 그만두는 일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으니까요. 재수끝에 가고 싶던 대학에서 하고 싶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알바가 "필수"인 시대가 오기 전이었기에, 용돈도 타가며 공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때의 대통령은 김대중 - 노무현이었죠. 아직은 유일무이하게 민주당 계열이 연속으로 집권했었고, 제 손으로 처음 뽑은 대통령은 노무현이었습니다. 마음 깊이 지지했던 그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정도로 핀치에 몰렸다는 소식을 군대에서 들었을 땐, 분노와 답답함을 감추기 어려웠죠.


공부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의 대통령은 이명박근혜였습니다. 말 그대로, 춥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 투성이인가, 길거리에서 여러 현장에서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며 뼈저리게 느꼈죠. 이제 20대 대통령이 선출된 지금, 그 시절 느꼈던 한기와 고통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있습니다.




흔히 MZ세대로 묶는 그 세대의 정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개인적인 동기였습니다. 제가 요구한 "당연한 매너"에 대해 아주 과격하고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그 세대의 사람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가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자신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본인이 느낀 그 세대의 특징을 말해주더군요.


그들은 청소년시기를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보냈고, 그 때의 세상은 사회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으며 전방위적인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믿을 것은 나 하나밖에 없다는 절망이 팽배했었습니다. 그 시기를 성인으로서 견디는 것과 청소년으로 견디는 건 차이가 클 겁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한 특정 세대와 성별을 비난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제가 겪은 선거들을 짧게나마 돌아본 까닭은 그 속에 지금 세대의 심리와 정서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방어적 공격성으로 무장한 세대, 그 속에서도 특정 성별을 일으켜세우는 데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한 갈라치기만큼 자극적인 수단은 없습니다. "사이다 맛을 한 독약"이랄까요. 그걸 마신 이들로 인해 벌어진 오늘의 또 다른 시대를 버텨나가기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뜬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현재의 대통령제나 대선 제도를 바꾸는 겁니다. 표를 모으기 위해서 상대 진영을 중상모략하고 영호남 남성여성 편을 갈라 싸움을 일으키는 건 현재의 제도가 가진 최악의 시나리오고, 아주 오랫동안 이 시나리오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가부 폐지 때문에 2번 찍었는데 의료민영화되고 최저임금 폐지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 되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무지성'으로 낙인찍는 건 쉽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책을 보고 움직일 수 있도록, 나아가 민의의 왜곡을 최대한 보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건 어렵지만 꼭 해야할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다양한 대안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하지요.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마음이 빙빙 돌아다녀서 뭘 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되고 국제정세는 요동치는데, 과연 차기 정부가 "국정운영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의심이 드는 판이니 말이죠. 그럴수록 대통령 1인과 행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을 탈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고, 오히려 그 방향이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위기로부터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또다시 버텨야 할 시절이 왔네요. 많은 사람들이 침묵속에 절망하기 보다는 다시 버티고 싸우자며 결의를 다지는 중입니다. 비폭력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자면, 이제부터 벌어질 "싸움"이 상대방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전략이 아니라, 주짓수의 기술처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이뤄지기를, 그래서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힘조차 우리가 가진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승리를 거둘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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