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사회면에 올려야할지 예술면에 올려야할지 고민될 정도로 민감하고 불편한 주제이긴 합니다만, 사회문제와 예술계 모두에 발을 걸친 크리(오마이걸 팬덤)의 입장에서 그냥 지나치긴 싫어서 글을 써 봅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아린"을 치면 자동완성으로 "아린 mr제거", "아린 노래실력"이 뜰 정도로 데뷔 때부터 유명한 화두(?)가 아린의 가창력 논란이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객관적으로 아린의 보컬 역량은 아이돌 그룹 내에서 "서브보컬"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음역대도 좁고, 라이브 시에 음정이 너무 많이 불안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가창력 논란에 휩싸이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노래로만 치면 오마이걸의 아픈 손가락일 겁니다. 애초 보컬 롤이 크지 않았던 유빈, 지호 심지어 래퍼인 (물론 연습생 시절에는 보컬이었지만) 미미보다도 발전이 더디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판(난)하는 이들은 "몇 년 동안 저 수준인 것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팬들은 음색이 좋다는 식으로 감싸지 마라"고 말하죠. 제가 오마이걸 소속사 관계자인 것도 아니고 당사자인 아린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죠. 심지어 소속사 직원도, 나아가 멤버들조차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게다가 그 "노력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거고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질 겁니다.
그렇다면 뒤집어 말해서,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판(난)하는 사람들 또한 함부로 아린 본인의 노력에 대해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노력 여하는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비판(난)자들은 결과를 근거로 들 겁니다. "아린은 노래를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이유로 대는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다"의 근거는 "라이브 시 보여주는 가창력이 수준 이하다"입니다. 여기서 이유와 근거가 자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가창력이 나쁜 이유는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다"라고요. 그런데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두 번째의 이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서만 바뀐 것 같은 이 두 논리 전개는 전혀 다른 주장이 됩니다.
워낙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들은 요즘 음반 작업 시에 오토튠을 활용해서 음정을 (심지어 박자도.) 보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라이브를 통해서 확인하는 가창력을 진짜 실력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라이브는 정말 잘하는데 되려 녹음실에 들어가서 쩔쩔매는 가수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라이브와 음원 녹음 시의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이게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아직도 오마이걸이 방송에서 안무와 함께 라이브로 노래를 할 때 적응이 어렵고 듣기가 싫습니다. 저는 애초에 좋아하는 노래가 아이돌 음악도 아닌데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쪽이라서 그런지, 뛰어다니느라 호흡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음정이 왔다갔다 하며 노래를 한다? 많이 어색하고 참아주기 힘듭니다. 그래서 "차라리 AR을 틀고 해라" 싶을 때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오마이걸 라이브 잘한다 아침으로 CD를 먹었다 극찬을 하는데 저는 적응이 안돼서 다른 아이돌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며 비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노래 잘한다는 팀들도 대동소이 하더라고요. 이게 두 번째 포인트입니다.
여기까지 읽고서 "그럼 아이돌 하려면 음원 녹음은 물론이고 라이브 가창도 적응하고 안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걸로 밥먹고 살잖아! 직업이잖아!" 하는 분 계실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음원 녹음에 익숙하거나 그 쪽에 특화된 창법, 음색을 가진 가수들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인디계에서도 많이 볼 수 있죠. 특정 가수를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조용한 장르를 하면서 참 감미롭게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가수들이 이런 스타일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린은 어떻게 보면 손해를 보는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린 본인이 어릴적부터 아이돌이 아닌 인디씬에 관심이 있었고 조용하고 감미로운 컨셉을 가지고 가수를 지망했다면 지금같은 수준으로 비판(난)의 대상은 되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당장 아린은 같은 팀 멤버들과 가장 많은 비교를 당합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스타일의 보컬을 가진 다른 아이돌 그룹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판(난)하는 사람들은 아린과 비슷한 스타일의 타 그룹 멤버가 아니라 같은 팀 멤버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습니다. 마치 고퀄리티 보컬 아이돌 그룹의 명성을 먹칠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뭐 이해는 합니다. 바로 비교가 되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언급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줄기차게 붙잡고 비판(난)하는 "음정"만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라이브 시에 다른 멤버들도 음정이 많이 흔들립니다. 노래를 취미로든 전문적으로든 연습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르고 노래하는 시간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노래는 다른 포지션과 달리 "몸"을 악기로 삼는 포지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멤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승희와 효정을 "메인 보컬"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덧붙여서, "라이브 시 음정이 흔들린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서 비판(난)하는 분들에게 (이미 보셨겠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부른 <다섯번째 계절> 라이브 버전을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어차피 비판(난)하려는 마음을 가진 분은 또 다른 지점을 찾아내겠지만요. 어떤 말을 할지 대충 그려지긴 합니다.
제가 분명히 서두에 아린의 보컬 역량이 부족하다고 전제를 달고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사람들이 아린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기에 저도 한 번 고민을 해 봤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추정입니다.
대중음악에서 보컬을 말할 때 크게 진성과 가성으로 나눕니다. 진성은 우리가 평소 말할 때 내는 소리고, 가성은 간단히 말해서 숨이 많이 들어간 얇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어떤 보컬학원 원장님이 재미있는 예시를 듭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놀이기구를 타거나 콘서트에 가거나 했을 때 지르는 "꺄악!" 소리가 가성의 일종인 두성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문제가 있는 분류이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분류를 따릅니다) 이라고 말입니다.
아마 오마이걸 팬덤이라면 여기에서 아린과 연결시켜 "아린파"를 연상하셨을 겁니다. 그것만 들으면 앞에 놓인 유리잔 30개는 그냥 동시에 깨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성량과 주파수죠. 근데 아린은 노래를 못합니다. 당연하죠. 두성을 낼 줄 안다고 노래를 잘하면 모든 여성분들이 가수하게요?
그러면 이런 아린파를 가진 아린이 평소에 예능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면 어떤가요? 뭔가 톤이 되게 높고 좀 얇다는 느낌이 들죠. 성량도 크지 않습니다. 되게 조근조근 말하는 느낌도 들고, 지호랑 비슷한 결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시면, 아린이 말할 때 음의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목소리가 툭, 툭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이런 현상이 굉장히 자주 일어납니다.
이런 걸 성구전환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오마이걸의 스케치북에서 유빈이 한 번 시범을 보인 적이 있는데, "아" 소리를 내면서 위에서 아래로 음을 연결해서 내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툭 하고 소리가 꺾이는데, 이걸 성구전환이라고 하고, 보컬 연습에서는 이 부분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걸 기본으로 여깁니다. 가성에서 진성으로, 진성에서 가성으로 음폭이 크게 넘어가도 삑-, 툭- 하는 느낌이 없어야 듣는 사람도 편안하고 부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죠.
정리하면, 저는 아린의 성대가 특성상 바로 그 "성구전환"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 일어나고, 심지어 그 전환이 일어나는 음역대가 평균 여성이 진성으로 내는 영역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니 평소 편하게 말할 때도 목소리가 잘 꺾이고 뒤집어지면서, 얇고 약한 가성이 섞인 소리가 많이 난다고 봅니다. 이 부분이 아린의 음색, 음정, 음역대, 나아가 보컬 역량까지 결정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컬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 쪽으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만 노래를 직접 쓰고 불러온 입장에서 경험했던 바를 토대로 이렇게 추측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어떻게 좀 납득이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본인의 입장을 고수하는 분들이 계시겠죠. 뭐 그건 충분히 존중합니다. 개인의 의견은 자유니까요.
지금까지 음악적인 이야기를 위주로 했으니 이제는 좀 다른 측면에서 썰을 풀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글 제목에 "혐오"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위에서 아린이 비교당하는 대상이 같은 팀 멤버들이라는 점을 언급했고, 아린이 오마이걸이라는 팀의 퀄리티를 깎아먹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승희"와 "효정"이 메인 보컬 역할임도 굳이 주지시켜드렸습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습니다. 케이팝 시장이라는 게 생기기도 훨씬 전, 그러니까 1960~70년대에 음반을 "취입"하던 가수들 중에는 노래 못하는 가수들도 있었습니다. 비주얼로 승부하던 가수들이죠. 지금의 아이돌은 아니지만 비슷한 포맷을 갖고 활동했던 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었죠.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케이팝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에도 아이돌 역사를 살펴보면 인기 여부를 떠나 대놓고 비주얼 위주로 구성된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뭐라 평가하든 다양한 컨셉을 가진 아이돌이 존재하는 것이 케이팝 시장입니다.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죠.
그러다보니 팀 내에서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역할이 나뉘게 됐습니다. '비담', '메보' 등의 용어가 정착된지 오래입니다. 그럴수 밖에요. 대중들은 가수니까 당연히 노래를 잘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수들이 무대뿐만 아니라 예능과 영화, 드라마, 라디오, 광고 등등 광범위한 영역을 오가면서 활동하기를 원하고, 그러면서 인기를 끌어올리기를 원하니까요. 그걸 한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소속사 입장에서는 하나의 그룹에서 역할을 나눠 다양한 방면에서 홍보와 수익을 연결짓는 전략도 고려할 수밖에 없죠.
오마이걸만 봐도 아린은 이미 몇 년간 속옷회사 광고모델로 활동중이고 영화와 드라마도 출연하며 반경을 넓히고 있죠. 다른 멤버들 또한 라디오 DJ, 유튜브 채널 운영, 솔로 앨범 발매, 예능 고정 출연 등 각자의 매력을 살려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아이돌 활동이 너무도 당연한 시대에, 아린이 "노래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팀에 있을 자격이나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사라지나요? 굳이 답하지 않아도 뭐가 정답인지 아실 겁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아린에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연예계 전반, 그리고 한국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죠. 누군가를 비난하고 혐오하면서 조회수를 챙기고 이득을 보는 개인이나 세력들, 그들에게 동조하며 아무 근거없는, 혹은 여러 측면 가운데 한 가지에 국한된 근거를 전부인양 부풀려서 공격하고 혐오하는 사람들. 오죽하면 온라인 상에서 선플 달기 운동이 벌어지고, 비난과 혐오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는 아이돌이 늘고 있을까요? 그 가운데 사회적 타살에 내몰린 연예인들은 또 얼마나 많고요.
혹자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두고 "사람들이 납작해졌다"고 표현합니다. 사람이나 집단의 입체성과 복잡성을 보기 보다는 한 가지 면에 거슬리면 그걸 볼모로 잡고 공격하는, 이해나 공감보다는 공격과 혐오로 자신을 드러내고 관심을 구걸하는 현상이 갈등을 낳고 분열을 조장합니다.
오마이걸의 컴백을 축하라도 하듯, 쇼케이스 라이브 영상을 추출해서는 아린의 놀라운 보컬 실력 운운하며 비꼰 계정을 오늘도 신고하고 차단했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를 비난하고 까내리면서 즐거움을 느낄 목적으로 올린 게시물에 쓸데없이 먹이를 줄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죠.
아린 가창력 논란(혐오)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비판과 비난은 다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는 그 둘을 구별하기보다는 본인에게 유리하게 뒤섞어서 사용하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이 심해질수록 거기서 발생하는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가능성도 커진다는 사실을 모른채 말입니다. 사람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존재입니다. 당신의 어느 면이 어떻게 공격당해 비난과 혐오에 휩싸일지 불안해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집어 든 핸드폰과 두드리려는 키보드에서 잠깐 손을 떼고 생각해보세요. 거기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