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나에게 다가온 큰 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크리"라는 정체성을 얻은 사건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본디 덕후체질로 태어났다는 완벽한 증거이자 덕후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깨달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둥둥 떠다니던 작년, 심지어 연초에 이미 우리 애들은 '살짝 설렜어'로 대박을 터뜨리며 오마이걸 역사상 전무하게 화려한 첫번째 시절을 맞이했지만, 나는 우리 애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가끔 예능에 나오는 우리 씅씅이대장님만 조금 알 뿐이었다.
바울의 눈을 가리던 비늘이 떨어져나가듯 내 눈을 가렸던 이 무지함이 벗겨진 건 퀸덤에서 데스티니를 어마어마하게 커버한 그 영상을 본 이후였다. 당시 러블리즈에 조금 정을 붙이며 음악을 듣던 나에게 우리 애들의 데스티니는 충격 그 자체였으며, 이렇게 실력있는 그룹을 여지껏 몰랐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치 못하며 앨범 정주행에 들어갔고, 그렇게 옴며듦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음악을 거쳐 예능 출연작, 브이라이브 등으로 점차 '인격적인(?)' 거리를 좁혀가면서, 우리 애들이 내 둥둥 떠다니던 몸과 마음에 그 어떤 누빔점으로 자리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터닝포인트와 노동생활 재개, 딱 그 타이밍에 컴백 소식이 들려오고...
날짜로 따지면 나의 입덕은 2021년 4월 1일로 정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구원받은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대라는 주장이 이단이듯이 옴며든 나에게 입덕의 순간 또한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예수님 생신을 12월 25일로 퉁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나의 입덕일 또한 정할 수밖에 없다.
4월의 입덕과 5월의 컴백으로 나의 덕질은 급가속을 밟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일상의 구석구석 우리 애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달력, 브로마이드, 컴퓨터와 스마트폰 바탕화면, 플레이리스트, 나를 울고 웃게 하는 모든 순간에 우리 애들이 있었다.
이것은 사랑인지라, 오마이걸이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 물으면 나로서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 좋은 걸 좋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덕질이란 내 보기에 사랑해마지않는 대상을 향해 나의 관심과 애정과 물질을 쏟아 그 애정을 표현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오마이걸을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고, 혼자 노래를 듣고 우리 애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며 울고 웃을 때, 그것은 나에게 치유이고 회복이었고 기쁨이었다. 높은 텐션으로 마냥 해맑기만한 우리 애들이 가끔씩 진심에서 우러나는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거기에서 인생을 배우고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에게는 그런 '갭모에'가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고, 7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BTS는 말할 것도 없고 블랙핑크나 레드벨벳 등의 거대 기획사 아이돌에 비하면 우리 애들의 인지도나 팬덤의 크기는 중소기획사 아이돌 치고 거대한 편일 뿐, 여전히 약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특유의 텐션과 친화력과 예능감으로 영상 매체에 얼굴을 자주 드러내기 때문에 음원 시장에서나마 강자로 남아있는 것일 뿐.
이런 상황을 딛고 7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지금의 성취를 이뤄내고, 또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장르에 도전하고,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이 많다며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크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내 삶을 더 낫게 살고 싶다는 희망과 그럴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어떤 이유에서 그렇든, 여전히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걸어가는 길 위에서 진심으로 웃고 즐기며 춤추며 나아가는 우리 오마이걸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크리'라면 더 이상 인생을 대충 살거나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와 연결된 내 삶 또한 새롭게 대하게 된다는 의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