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오마이걸이 최근 <살짝 설렜어>나 <Dolphin>, 그리고 이번 <Dun Dun Dance>에 이르기까지 청량하고 발랄한 색깔의 곡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오마이걸 앨범 전반을 흐르는 정서는 '청순'과 '몽환'이다. 그런데 앨범 전체를 계속 듣다보면 청량 발랄과 청순 몽환을 가르는 '제 3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오마이걸 표 '스타일리시'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는 멤버들이 예능이나 실생활에서 보이는 옴망진창 하이텐션과 대비되는 진지하고 색다른 매력을 음반을 통해 구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 오마이걸 스타일리시 넘버의 시작
나는 그 전조를 미니 3집 <Windy Day>에 수록된 <Knock Kock>에서 찾고 싶다. 재즈 화성에서 볼 법한 텐션 코드를 활용한 반복적 진행의 미디엄 템포 곡인데, 아마 그 당시 오마이걸의 곡 중에서는 가장 이질적인 색깔을 가진 곡이었을 것이다. 이 곡은 기존 오마이걸의 보컬이나 가사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곡을 통한 약간의 변형으로 신선함을 주었다는 데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는 <Sixteen>이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같은 앨범인 미니 5집 <비밀정원>의 <Magic>도 스타일리시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마이걸의 스타일리시가 지금까지는 리듬 파트를 좀 더 뚜렷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기준으로 하여 제외하였다.
<Sixteen>은 힙합의 문법과 록의 문법이 섞인 곡으로, 오마이걸 스타일리시의 중간지점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래서인지 분량상으로는 그리 많지 않은 미미의 랩핑이 좀 더 부각되어 들리는 효과가 있다.
#2. 오마이걸 스타일리시, 그 문을 활짝 열다.
내가 생각하는 오마이걸 스타일리시 넘버의 본격적인 시작은 바로 미니 6집 <Remember Me>의 수록곡인 <Twilight>이다. 도입부부터 몰려오던 신선한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 전형적인 EDM 장르의 작법을 따르고 있으면서 드디어 오마이걸 스타일리시의 방향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멤버들의 보컬 해석이 눈에 띄는 곡이다. 물론 경연 프로그램 <퀸덤>의 새로운 편곡의 훌륭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담으로, 이 때부터 멤버들의 '섹시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종의 '갭모에'가 극대화되기 시작했달까.
이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바로 <게릴라>다. 오마이걸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전투적이고 진취적인 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곡 또한 오마이걸만의 스타일리시를 잘 계승하고 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두 메인 보컬 효정과 승희가 진성으로 내질러 곡의 정서를 맘껏 표현할 수 있는 구간이 부족하다는 것, 리듬 파트가 받쳐주는 힘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 정도다.
#3. 오마이걸 스타일리시의 정점.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정규 1집 <The Fifth Season>에는 명곡이 참 많다. 그 중에서도 <Vogue>와 <Checkmate>는 오마이걸 표 걸크러시 스타일리시의 전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가사와 곡의 장르 모두가 그 점을 지향하고 있다.
두 곡에서 두드러지는 존재감을 뽐내는 멤버는 유아와 미미이다. 우리는 이 두 곡을 통해 왜 유아가 솔로 앨범을 냈는지, 그리고 미미가 왜 걸그룹 내 최고의 래퍼라는 위상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Vogue>에서 유아의 파트 전체가 킬링파트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유아의 솔로곡으로 삼았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만큼 이 곡에서의 유아의 소화력이 훌륭했음은, 장르적으로 맥이 닿아있는 유아의 솔로앨범 <Bon Voyage>의 수록곡들에서 재차 확인된 바다.
하지만 내가 꼽는 최고의 넘버는 바로 <Checkmate>이다. 정규 앨범과 리패키지 앨범 모두에서 마지막 트랙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곡은, 처음에는 왜 이 곡이 여기에 있는지 의아하다가 앨범 전체를 계속 듣다보면 납득하게 되는, 뭐랄까 그냥 곡 자체의 아우라가 있는 곡이다. 곡 자체의 힘으로만 보자면 <Twilight>과 자웅을 겨룰만한 곡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평가다.
이 곡 또한 걸크러시의 맛이 진하게 나는데, 쫀득한 비트메이킹과 "뉴올리언스" (두시의 데이트 출연 당시 허일후 아나운서가 했던 평가다.) 브라스 사운드가 매력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 위에 역시나 유아의 보컬과 미미의 래핑이 찰떡처럼 붙어 있다. 이후 오마이걸 스타일리시의 미래는 이 둘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아와 미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한 것이 바로 <Good Girl>에서 선보인 편곡 버전이다. 체스 게임을 구현한 의상과 안무, 유아와 미미의 호흡, 이 모든 것이 시너지를 일으켜 <Checkmate>라는 곡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켰다. 개인적으로 이 무대를 보면서 유아가 정말 섹시하다는 것을 알았고, 미미가 정말 멋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무대였다. 오마이걸의 운명이 <Destiny>를 기점으로 바뀌었다면 오마이걸 스타일리시의 방향은 유아와 미미의 <Checkmate>를 기점으로 정해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유아 미미의 이 버전으로 음원도 새로 녹음하고, 아예 "초코체리"같은 이름으로 유닛 활동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
#. Epilogue
오마이걸의 스타일리시가 현재진행형임을 알린 곡이 있다. 2020년 8월 28일 발매된 <Rocket Ride>다. 독일 출신의 유명 프로듀서 키아누 실바와 협업한 곡인데, 8비트 유로댄스(...박명수?) 미디엄 템포를 기반으로 유려하게 흘러가는 멜로디가 매력적인 곡이다. 영어 버전에서 도입부를 책임지는 승희의 섹시하고 쫀득한 보컬은 왜 승희가 뛰어난 보컬이고 오마이걸 보컬의 핵심인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이후에 발매된 미니 8집 <Dun Dun Dance>에서는 이러한 스타일리시 넘버를 찾을 수 없지만, 멤버들이 "아직 보여줄 것이 많다"며 의욕을 다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러한 오마이걸 스타일리시를 계승 발전하는 곡이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성숙미를 장착하고 있는 오마이걸에게 더 뚜렷해질 방향성이 있다면 그게 바로 오마이걸 스타일리시 장르가 아닐까? 다음엔 좀 더 섹시하고 걸크러시한 스타일리시 버전으로 오마이걸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길 기대해 본다.
+) 최근 아이돌 플랫폼 유니버스를 통해 발매된 <Shark>가 오마이걸 스타일리시의 계보를 잇게 되었다. 이 곡은 펑키한 장르적 특성과 위에서 반음씩 떨어지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매력적이다. 이에 더해 뮤직비디오에서는 바르고 착한 학생 오마이걸과 자기만의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오마이걸을 대비하며 스타일리시를 부각시키고 있다. 브릿지파트에서 학생 오마이걸과 여유롭게 춤을 추는 승희의 모습, 마지막 부분에서 머리를 쓸어넘기며 코를 찡긋하는 지호의 모습은 일곱 명이라는 멤버 수가 연상시키듯 일곱 빛깔의 무지개와 같은 다채로운 매력이 폭발하는 정점이다. 이러한 매력 때문인지 음원 발매 당일 활동곡이 아님에도 음원 차트의 순위권에 진입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