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의 매력
고백하자면, 저는 스스로 덕후임을 부정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저는 한 가지에 푹 빠진 삶을 주기적으로 살았더군요.
종교도, 사람도, 물건도, 사회 이슈도, 음악도, 와우도, 하이큐도, 저의 덕질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마이걸은 말할 것도 없죠.
모든 것이 덕질로 수렴하는 것도 아니고 개중에는 이제 덕질하지 않는 것들도 많지만, 덕질을 하는 저라는 존재는 여전히 남아 이렇게 오늘도 글로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오마이걸을 "찬양"하는 덕후의 고백을 남기고 나서, 혼자만 보기는 아까워 오마이걸 공카 (공식 카페)에 올렸습니다. 멤버들이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봤다 하더라도 워낙 이 말 저 말 쓸데없는 사족이 많았기에 마음에 와닿지는 못했을 거라 혼자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느꼈지만 굳이 글로는 정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오마이걸의 핵심적인 매력 세 가지를 다시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아이돌계 극강의 솔직함
오마이걸의 팬덤 "미라클"의 성장은 뭐니뭐니해도 <퀸덤>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저 또한 퀸덤을 통해 컨셉장인 오마이걸의 진면모를 발견했으니까요. 다만 이전에 오마이걸을 조금이나마 알렸던 건 프로예능인 "승희"의 활약 덕분이었습니다.
해피투게더, 놀라운 토요일, 라디오스타 등등 지상파 예능을 휩쓰는 승희의 종횡무진 활약을 보면서 처음 받은 인상은 "와 진짜 솔직하고 재능있는 예능돌이 등장했구나"였습니다. 개인기도 신박하고 절대 내려가지 않는 텐션에,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적극적인 모습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승희의 솔직한 모습이 매력이었습니다. 예의있고 충실하게 프로그램에 임하며 최대한 맞춰주지만, 가식적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색깔 안에서 적절하게 소화함으로써 솔직함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승희만의 특징인 줄 알았지만, 입덕하고 나니 모든 멤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매력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나니 더욱 더 오마이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참으며 살아가야 하는 연예계, 그것도 아이돌계에서, 자신들이 가진 텐션과 본연의 태도를 버리지 않고 살아남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멤버들 대부분이 엄청난 텐션과 동시에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또한 거침없이 내비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거대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중소 규모의 기획사의 아이돌로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 터득하게 된 오마이걸만의 생존방식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2. 사람을 미치게 하는 갭모에
아이돌이 활동하는 주 영역은 음악, 예능,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이 팬덤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아이돌 또한 자신의 일상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선에서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오마이걸은 활동 초기부터 미니 8집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주관을 밀어붙이는 진지함을 놓지 않으면서도, 예능에서는 정신줄을 놓은 듯한 옴망진창 저세상 텐션을 수놓아 주고, 일상에서는 털털함을 넘어 팬덤 미라클조차 지쳐 나가떨어질 것 같은 솔직함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팬들에게 "생각하자"고 말하거나, 새벽이 되어 자러 간다는 팬들에게 질척이거나, 라이브 소통 방송이 켜져있는데 미친듯이 헤드뱅잉을 하다가 머리를 부닥쳐 걱정과 웃음을 동시에 유발시키거나, 팬들에게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자신만의 철학으로 인생상담을 해주는 것이 바로 오마이걸입니다.
팬들은 이런 모습에 처음에는 혼란을 느끼다가 다음에는 멤버 개인의 갭모에게 정신을 잃고, 7명의 멤버가 두세명씩 짝을 지어 만드는 캐미에 갈 길을 잃고, 전 멤버가 모여 만드는 밝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진지하고 눈물겹고 재미진 모습에 출구를 잃고 영원토록 덕질을 하게 됩니다.
3. 자기주도 성장형 아이돌
오마이걸에 보컬 선생님이 없다는 건 유명한 사실입니다. 워낙 재능이 뛰어난 전천후 보컬 승희가 보컬 디렉션을 맡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멤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첫 앨범을 만들 때는 녹음 경험도 없고 스튜디오도 어색해서 어떻게 녹음을 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앨범을 거듭할수록 멤버들의 보컬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메인보컬이면서 기초가 탄탄한 승희와 효정을 제외하고, 유아와 비니와 지호는 자신만의 색깔을 탐구하며 점점 안정되고 특색있는 보컬을 만들었습니다.
유아는 이미 솔로 앨범을 낼 정도로 자신의 색깔을 구축한 안정된 보컬이 되었음을 보여주었고,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Dun Dun Dance를 들어보면 비니의 파트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니 또한 하고 싶었던 파트를 하게 되어 좋았다고 밝히기도 했죠. 지호는 같은 곡에서 음역대가 상당한 승희의 파트를 대신했는데,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보컬을 보여주었습니다.
안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마이걸의 안무는 어렵기도 유명한데, 다양한 컨셉을 가진 고난이도의 안무들을 소화한 이력만 살펴봐도 멤버들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을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래퍼인 미미는 찰진 가사와 쫄깃한 래핑으로 갈수록 곡 내 비중을 늘려가고 있으며, 이따금 보컬로 참여하는 곡에서는 수준급의 가창력과 특색있는 음색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덕질은 끝이 있다고.
적어도 하나의 대상에 대한 덕질에는 끝이 있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연애처럼, 어느 날 불붙었던 사랑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경험을 이미 몇 번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개중에는 그 때 그 덕질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제 삶에 스며들어 저를 지탱해주는 것들도 많습니다.
오마이걸에 대한 사랑이 지금과 같지 않은 날이 온다 하더라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뜨겁게 사랑하고 덕질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난다는 건 분명 축복이고, 바로 지금 그 축복을 누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오마이걸은 그 존재만으로도 제 삶에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뜨거운 마음과 덕질은 사그라들어도, 우리가 서로 나눈 많은 시간들은 영원히 남아 제 마음의 방 한 켠을 지켜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마이걸을 사랑합니다.
저는 크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