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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Nov 29. 2022

"민주화"가 시급하다.

한 때 이 "민주화"라는 단어가 온라인 혐오세력에 의해서 오염된 적이 있었다. 그건 되려 한국 사회에 여전히 민주화가 시급한 과제임을 알리는 징후다. 민주화 과정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취와 내용적 민주주의의 성취로 거칠게 나누자면, 한국은 내용적 민주주의의 구성에 "국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뭔가 "한국식 민주주의"만큼이나 괴이하고 아이러니한 표현이기는 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예선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무승부로 종료되었을 때, 축구팬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잘 싸웠다"고 평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이기지 못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였다. 만약 선수들마저 그 경기에 대해 "잘 싸웠다"고 평했다면 어쩌면 그런 눈높이가 가나전 패배의 원인이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는 승패를 결정짓는다. 무승부가 있다는 것도 승패를 가른다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의 수다. 그렇다면 적이 강하든 약하든 승리를 목표로 해야 한다. 기존이 전력이야 어떻든 승부에 들어갔을 때 상대가 예상보다 약하고 쉽게 흔들린다면 그 상대를 잘 공략해야 이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 비겼다. 내용이 좋았다고들 하지만 그 좋은 내용을 완성시키는 건 골이고, 골 또한 내용이다. 예상외로 쩔쩔매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골을 넣지 못한 원인은한국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 그 경기만으로 좁혀놓고 생각한다면 이강인-조규성 라인을 미리 준비해놓지 못한 벤투 감독에게 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골 결정력 부족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 다들 의아해했다. 한국 선수들은 투지와 근성으로 이를 악물고 뛰기로 유명하고, 오히려 기술이 좋지 않아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게 팬부터 전문가까지 공유하는 중론이었다.


히딩크 발언의 뜻은 이러하다. 한국 선수들은 축구에서 개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은 좋다. 하지만 그 부분을 잘 연계해서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조직력이 부족하고, 그 근본 원인에는 체력 부족이 있다. 이 악물고 투지로 뛰는 건 체력도 정신력도 아니다. 한국 선수만 유독 그렇게 뛰는 게 아니다. 상대도 다 그런 마음으로 뛴다.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정신력으로만 뛰다 보니 무리한 플레이로 이어지고, 거기에 거친 파울과 부상이 뒤따른다.


히딩크는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유기적인 조직력을 살려내어,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을 수 있는 과정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4강 신화를 써냈다. 지금까지의 한국 축구는 스트라이커가 없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대대로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끊임없이 배출됐다. (공만 좀 잘 차면 다 공격수를 시켰으니 뭐...쯧쯧) 진짜 문제는 그 공격수들이 확실하게 골을 넣을 수 있는 과정을 만들지 못한 데 있었다. 


그러면 20년이 지난 지금, 히딩크가 지적했던 문제는 개선됐을까? 그렇지 않다.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선수 개개인이 등장해 세계를 누비고는 있지만, 한국 축구의 평균 실력은 대동소이하다. 왜일까? 이번 가나 전의 패배를 복기하면 답이 나온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필패 공식이 있다. 먼저 전적의 흐름에서 보자. 1차전에서 강한 상대를 만나 선전하지만 이기지는 못한다. 2차전에서 상대적으로 약팀이라고 평가받는 팀에게 고전하거나 패배한다. 3차전에 절치부심 좋은 경기를 펼치지만 순위에 밀려 탈락한다.


경기 내용으로 살펴보자. 이 부분은 서두의 경기 평가와 맥이 닿는다. 생각보다 좋은 경기를 펼친다. 하지만 골 결정력 부족으로 이기지는 못한다. 스트라이커의 부재 때문일까? 적어도 정통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면에서는 그렇다. 패널티 에어리어 부근에서 공이 흐르거나 공간이 났을 때, 다른 나라 팀을 보면 거침없이 슈팅을 시도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넣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심리적 위축 때문이다. (그런데 꼭 지는 상황에서는 또 거침없이 슛을 때린다. 이 또한 심리적 문제 때문이다.)


한국에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생겼다. 센터백 괴물 김민재, 중원의 대표팀 유일무이 게임 메이커 이강인, 세계를 씹어먹는 월드클래스 공격수 손흥민, 그리고 K-리그 득점왕으로 K-리그에서 통하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걸 보여준 스트라이커 조규성까지.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는 건, 심지어 이전 선배들의 필패 공식을 반복하는 건, 선수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메타인지적 문제다. 자신들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알게 모르게 이미 한계를 지어놓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의 유스 시스템은,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정답을 정해놓고 수행하게 하는 주입식 플레이"가 기본이다. 포지션, 플레이 스타일 등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미리 정할 필요도 없는 영역에 대해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에 따르게 한다. 축구 뿐 아니라 한국 사회 대부분의 영역이 이런 강압에 익숙하다. 심지어 창의'력'조차 '가두리 양식'하려는 사회다. (정말 존경스럽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자라난 구성원은, 순간적인 대처가 중요한 상황에서 뻣뻣해진다. 실수가 잦아진다. 한국 축구와 해외 축구를 모두 보는 분은 알 거다. 순간적으로 공간이 열린 공격수가 공을 전달해야 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면 한국 축구와 해외 축구의 차이가 보인다. 한국이 이번 가나전에서 진 건, 첫번째 자신의 실력을 이전 선배 세대 수준으로 제한하는 인식 때문이고, 두번째 스스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플레이에 외국 선수들만큼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그런데 도대체 축구 이야기와 민주화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하실 것이다. 몇년 전이었던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유튜브의 스포츠 채널에 이영표와 몇몇 2002 레전드들이 나와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다룬 적이 있다. 그 때 나왔던 이야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이, 히딩크를 비롯 외국인 감독들이 부임하면 자기 사단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그 감독이 나가면 한국 축구에 남는 인적 자원과 축적된 노하우가 없다는 것이다. 감독이 있을 때 그에게서 노하우를 배우며 실력을 쌓을 전담 스태프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비교적 최근에 축구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K-리그가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룬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의 결론은 간단하다. 구단들이 선수 연봉 잘 줘서 좋은 선수 영입하면 관중도 늘고 흥행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다고. 관중을 유치해서 흥행을 시키고 싶으면 구장 정비,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 등에 돈을 써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다고.


축구 국가대표팀의 목표는 무엇인가? 승리이고 우승이다. K-리그 구단의 목표는 무엇인가? 팀의 우승이자 흥행수입의 꾸준한 증가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지금껏 말로는 조국근대화다, 세계화다, 국민소득 이만불이다, 이런 저런 목표를 여기저기 내걸어 사람들을 동원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그러니 학연 지연이 그 자체로 비난받고, 정치적인 이유로 능력있는 사람이 잘려나가 목표 달성에 실패를 해도 "졌잘싸" 따위로 자위했던 것이다.


"의사결정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한 집단에서 특정 목표를 놓고 에너지를 집중해서 달성을 위해 노력할 때, 그에 필요한 다양한 층위의 의사결정과 협력 등은 평등하고 투명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목표는 조국근대화인데 뒤에서 딴 목표를 위해 딴 짓 하는 세력을 향해 비판하거나 시정을 요청할 수 없다면, 당연히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사람들은 "민주화"라고 하면 무조건적인 배려나 감상적이고 기계적인 평등을 생각하지만, 그건 한국 사회 구성원이 경험한 민주주의가 빈약해서 일어나는 촌극일 뿐, 목표 설정과 그것의 달성을 위한 노력 속에 "민주화"는 얼마든지 녹아들 수 있을 뿐더러 민주화야말로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심지어 목표 달성이라는 어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도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한국 사회가 걷어내야 할 것은, 개개인의 내밀한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 나아가 사회적인 인식조차 제한하려는 이 거대하게 경직된 강압적 구조이고, 만들어야 할 것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해야 할 것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하기 위한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이다. 그게 민주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직도 궁금한가? 달성해야 할 목표에 "민주화"를 넣어보자. 이제,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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