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4
며칠 전 지인하고 얘기하다가 그 사람 친구가 신천지에 다니는데 그 전에 그 지인이 신천지에 대해서 묻기에 흔한 문제를 언급하며 "사이비"라고 했더니 그 친구와 그걸 가지고 얘기를 했나보다. 다시 나에게 그 친구의 '반론'을 전해주는데, 그 친구가 나보고 '그 사람 전도사 아니냐'고 했다고.
거칠게 풀어서 세 가지 관점이 있는데 첫번째는 주류 교회 성직자들의 눈, 두번째는 흔히 이단으로 불리는 사이비 쪽의 눈, 세번째는 그 둘 다 거리를 두는 제 3의 눈.
보통은 세 번째 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삭제하려 든다. 그래서 그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는 양쪽 모두에게 어느 한 쪽으로 매도당해 묻혀버리기 일쑤다. 아마 지인의 친구가 가진 눈으로는 나는 주류 교회 성직자로 비춰졌을 거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 눈에는 주류나 사이비나 모두 똑같아 보임.
그래서 지인에게 말을 했다. 사실상 지금 한국 교회에서 주류 교단이나 사이비로 불리는 세력이나 서로가 꼭 필요한 구도라고. 물어뜯을 존재, 그러면서 뒤로는 서로간의 "교회 성장 기법"을 몰래 훔치는 존재, 겉으로는 증오하면서 속으로는 빼먹을 건 열심히 빼먹으려는 손길이 오가는 "증애"의 존재. 그러므로 서로 가하는 비판은 실제로는 '미러링'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성경을 성경으로 풀려하거나, 성서 안에서 어떤 논리구조(성)를 찾으려는 시도에 대해서 주류 교단과 사이비는 일면 닮았다. 한국 개신교의 특기인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주장이 어느 순간 먹히지 않게 된 건 사회의 교육 수준이 상승하고 경제수준이 높아진 원인도 있지만, 사이비에서 "성경을 성경으로 풀고 성서 안에서 논리구조를 찾아(만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주류 교단의 약점을 먼저 파고 든 탓도 있다. 그러한 '미러링'의 결과로 성경공부가 활발해지고 내용은 좀 다를 수 있어도 "성경을 성경으로 풀고 성경의 논리구조를 찾는" 기조를 공통적으로 가져가게 된 것이다.
저러한 시도가 주는 건 성경지식만은 아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는(듯이 보이는) 느낌은, 이성과 감성(종교성) 모두를 균형잡게 사용하고 있다는 일종의 근대 버전의 종교적 안정감을 준다. 여러 사회요인으로 인해 이러한 타입의 안정감을 갈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런고로 저러한 시도가 유효하게 된다.
제 3의 눈들이 흔히 말하듯이 이러한 안정감은 "성서개론을 배운다고" 깨어지지 않는다. 이제 그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성경 내적인 논리구조를 구축하는 수준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혁파하기 위해 신학을 가지고 승부를 벌이려 하는 건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좀 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성경 내적 논리구조의 구축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알리거나, 혹은 다른 논리구조의 존재적 다양성의 말살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어필하거나, 성경 속의 상호 충돌하는 목소리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그 모습 그대로 충돌할 때 성경의 역동성이 살아나는 것이지 이를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결과물로서의) 일관된 내적 논리로 묶으려 하면 오히려 성서가 주는 다양성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