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노래
보통 인생의 노래라 함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노래를 뜻한다.
하지만 내게 이소라의 <Track 9>은 인생을 부르는 노래, 인생에 대한 노래에 가깝다.
원래도 좋아했는데 요즘은 노래 연습 차원에서 집에서 기타치며 자주 부르는 이 노래는 부를 때마다 삶의 맛이 계속 흘러나온다. 이토록 깊고 처절하고 나약하고 끈질기고 강렬하고 드넓고 높고 보잘것없고 힘찬 노래가 또 있을까?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근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간론을 주창했다.
그에게 인간은 피투된 존재, 풀어쓰면 던져진 존재다.
인간의 출생을 설명하는 다양한 신화적, 과학적 방식이 있다. 한반도에는 새 생명을 점지하고 이승으로 던져주는 삼신할매가 있고, 과학에서는 생명권-임신중지권과 맞물려 어디서부터를 생명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결론적으로 인간은 알지도 못한 채 세상에 던져져, 그 속에서 나를 만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스스로를 의식하고 메타인지할 수 있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 인간이 보통 제일 먼저 얻게 되는 것은 이름이다. 이 이름조차 내가 고를 수 없다. 기억에 없던 시절부터 세뇌?당하듯 불린 그 이름이 나의 첫번째 정체성이 된다. 그 이름에는 이름 자체가 가진 뜻뿐만 아니라 사는 지역, 문화, 심지어 성별에 관한 정체성도 새겨져 있다.
그렇게 이 노래에서 인간은 피동적인, ~되어지는 존재다. 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존재에게도 해당되는 바이니, 불교의 인생은 고통이다 라는 말의 본의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느끼는 고통이라는 주장과 비슷한 결로 볼 때 만물은 좋든 싫든 서로 이어져 있다. 그 운명적인 사태에는 어떤 가치도, 가치판단도 내재되어 있지 않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인간은 태어나 이름을 받고, 말을 하고, 걷고 뛰고,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운다. 그게 인간 종이 살아남은 동력이다.
그러면서 태어나 만난 나를 더욱 깊고 넓고 크게 알게 된다. 흔히 질풍노도의 사춘기라고 부르는 바로 이 인생의 지점이 인간을 크게 변화시킨다.
이 과정 속에서 나를 더욱 단단히 세우고, 만들고, 타인을 사랑하며 거절하고, 나대로 가다가 멈추고, 돌아가고, 돌파하고, 엎드리고, 도망친다.
여기서 풀다라는 동사가 재미있다. 이소라는 왜 여기에서 풀다라는 동사를 썼을까? 곡 전체가 수수께기와 같은 낱말 배열의 묘미를 갖고 있는데, 이소라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진의를 알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묘미를 살리려면 듣는 이들의 풍부한 해석이 필요하다.
풀다는 언뜻 생각해도 풀어헤치다, 놓아주다, 문제를 해결하다 등의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이 노래에서는 이 모든 뜻이 다 가사로서 들어맞지 않을까? 인간은 때로는 모든 것을 다 일일이 뜯어보고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발휘하고, 때로는 모든 것을 미련없이 놓아버리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든 힘을 쥐어짜기도 한다. 생각보다 풀다는 인생을 말하기에 부족함없는 낱말이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세상은 (내 생각에 특히 한국사회는), 인간 존재에게 참 많은 것을 강요하고 압박을 준다. 특히 자본주의는, 어떻게든,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나를 화나게 (분노하게) 만든다. 뿐인가? 인간과 인간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인간관계의 문제는 외국에는 전혀 없는 낱말인 눈치로 표현될 정도로 강렬하다. 이런 사회에서 고독이란 개인에게 참으로 당연한 귀결이 아닐는지?
물론 많은 철학자들이 말하듯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아주 간단히 말해 외로움은 비자발적인 고립에 가깝고 고독은 자발적인 고립에 가깝다. 이 메마른 사회 속에서 인간 개체는 그렇게 따로 떨어져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세상은 좋든 싫든 이어져 있다. 떨어져 있지만 사실은 이어져 있는 이 모순적인 사태는 어디에서 촉발되었는가?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하는, 거기로 나를 밀어넣는 게 세상이고, 바로 그 세상이 나의 분노유발자다. 가사를 거꾸로 하면 뜻이 더 풍성해진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 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현대기술의 정점인 인터넷-온라인-SNS-AI 기술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더 외롭게하고 파편화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증명되고 있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증거다.
사람들은, 특히 한국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들 많이 말하지만 사실 그 평범함은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확률분포도 상의 가장 높은 부분, 하지만 수렴하고 수렴하고 또 수렴해도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확률분포도가 가상의 임의적인 지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분포도가 놓이는 자리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범함은 대도시 아파트 거주, 연봉 최소 4000만원 이상 등의 허무한 허수에 사로잡혀 있다. 평범함을 바라지만, 그런 평범한 나를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란다. 평범한 셀럽이 되고 싶어 한다. 인간의 깊은 모순에 더해지는 한국사회의 모순. 그러니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게될 수밖에. 그 울음조차 지나면 그 뿐이다. 다시 일상에 얽혀 빨려들어간다.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허상을 향한 욕망이 추동하는 사교육과 부동산의 세계로.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그렇게 살다보면 다양한 의미로 강해진다. 누군가는 실제로 성공을 쟁취함으로써 강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늘 그렇듯 아주 소수에게 잠깐씩 허용될 뿐인 성공이다. 반대로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어내며 강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살면 보통 부를 거머쥐긴 힘들다.
부를 얻든 못 얻든, 평범하게 살든 그렇지 않든,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불행만큼은 평범하다. 돈이 많아도 인간관계로 인해 불행할 수 있고, 돈이 없다면 없어서 불행할 수 있다. 우리의 불행은 도처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이라도 뭐 어떤가? 어차피 던져진 존재인 것을.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후렴 첫 부분의 영어 가사는 마치 친구에게 툭 던지는 느낌이 든다. 친구여 잊지 말게.
친구야말로 아무 것도 내가 정할 수 없는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 아주 희귀하게 의지를 사용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타인이다.
어떤 친구론에 의하면 친구란 대가를 신경쓰지 않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존재다. 그걸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며, 도움을 준 사람이 권위를 세우지도 않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갚아야겠다는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흔히 말하듯 따로-또-같이 살아가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그런 친구에게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라고 말을 건넨다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충고일까? 아니면 넋두리일까?
고독하게-독하게, 이 낱말의 운율이 운율로서 의도됐는지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고독이 사람을 독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분석은 집어치우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후렴의 가사는 고통스레 울면서 걸어가는 인간들에게 거부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자 인생을 저 멀리서 관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날개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풀어줌과 흘려보냄이 갖는 힘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니까.
이 하늘 거쳐 지나가는 날 위해
여기에서 노래는 차분하게 마무리되지만, 반대로 마지막 가사는 어마어마한 장엄함을 선물한다. 마치 쨍하게 맑은 날 백두산 천지에 올라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한 사람의 시선마냥.
하늘을 거쳐 지나간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하늘을 날아간다는 뜻일까? 아니면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일까?
나에게는 이 낮은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걷는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낮에서 밤으로, 비구름에서 햇살로, 바람에서 고요로 하늘이 변화무쌍하듯이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늘을 동경하고, 하늘로부터 배우고, 숨이 막힐 때 하늘을 보며 숨을 내뱉고, 그렇게 인간은 하늘과 함께 걷는다.
멕시코의 선주민-투쟁-공동체인 사파티스타의 모토는 물으면서 우리는 걷는다이다. 인생이란 내가 찾은 정답과 해답을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걷는 행위의 연속이다. 이소라의 <Track 9>은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인생과 떨어져 멀리서 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음 깊이 질문을 남긴다. 이 노래야말로 인생을 물으면서 걷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