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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Mar 11. 2019

고담시티의 날카로운 추억

고담 시티.

DC 코믹스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자, 범죄 가득한 사이버 펑크 Cyber Punk 도시입니다.

한국에서는 대구가 고담 시티로 불리고 있죠. 그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반발은 당연히 보통이 아닙니다. 대프리카에 이어 고담시티는 불명예 도시의 대명사로 자리잡았으니까요.


이천.

하지만 저는 고담 시티하면 이천이 떠오릅니다.

저에겐 이천이 고담시티인 셈인데요, 거기에는 저만의 특별한 경험이 들러붙어 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생, 교회 노동자, 초임 전도사였습니다. 여러가지 목적으로 취직, 교회 사역을 고민하고 있을 때 아는 교회 노동자, 전도사님의 소개로 근무지, 사역할 교회를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태생이자 거주자인 제게는 너무도 낯선 이천이란 도시에 있는 중형 교회였습니다.


이천이라는 도시는 경기도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주와 함께 그 존재감이 희미해서 "쌀"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인지도 탓인지 교통편도 매우 불편해, 터미널에서 두 시간 가량을 달려야 간신히 교회 근처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죠. 그 곳에서는 가끔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몇 십분을 걸어야 했습니다.


2010년 초의 겨울, 그 때도 여느 겨울 못지 않게 추운 날, 몇 십분을 걸어 교회 바로 옆 사택으로 향하던 날, 그 길에 꼭 지나쳐야 할 곳을 지나다가 발견한 건 고담 시티였습니다. 거대한 공장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옆을 지날 때면 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오던 수증기. 낮에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밤이 되면 그야말로 고담 시티의 그 모습 그대로를 옮겨 놓은 듯 괴이한 인상을 자아냅니다. 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은 "과연 저 수증기? 연기? 는 안전할까? 그냥 순수한 물이 증발하는 걸까? 아니면 유해물질일까?" 였습니다. 


경력도 일천한 제가 교회에서 맡은 일은 유초등부와 청년부 전도사였습니다. 청년들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대부분 고담 시티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근무지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던 거죠. '근무'를 시작하고 조금 친분이 쌓인 뒤에 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고담 시티에서의 생활을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제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건 그 곳 노동자의 2/3 정도가 위궤양이나 스트레스성 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기숙사에 지내며 밤낮 3교대로 일만 하면서 그들을 버티게 하는 건 "돈 모아서 서울 가겠다"는 일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청년들은, 그렇게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습니다. 고담 시티조차 들어가기 쉽지 않은 직장이기 때문이고, 근무 조건이 열악한 만큼 높은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KBS에서 방영된 <거리의 만찬>에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출연했습니다. 황유미씨는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흥공장에서 1년8개월 가량 반도체 세정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6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십 년이 넘는 투쟁 끝에 간신히 중재안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청년들이 "제 2, 제 3의 황유미"가 될 거라고 성급하게 결론짓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삼성과의 투쟁이 한창이던 그 때는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황유미 씨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홀로 비서울지역에서 올라와 서울을 향해 힘겨운 등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벌고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되려 건강의 절대조건인 질병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청춘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서울은 "산"입니다. 윤종신의 노래와는 다르게 정상에 올라가 봐야 그 곳은 좁고 춥고 미세먼지만 가득해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지만 어떻게든 올라가지 않으면 이 곳에서 죽어버릴 것 같다는 공포와 불안이 늘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시지프스처럼, 서울산 정상을 향해 무거운 노동의 돌을 굴리면서도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다가 순수하고 치열한 청춘의 불꽃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식어 갑니다. 그나마 산 정상에 다다른 이들조차 먼저 정상에 자리잡은 이들과 다시 새롭게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어느덧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곳에서의 근무를 마쳤을 때쯤 어떤 청년은 결혼을 했고 어떤 청년은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왔습니다.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서울산" 정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투하고 있기에 그들이 결코 남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언젠가 만날 기회가 있다면, 더 이상 전도사와 청년의 관계가 아닌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한 인생 이야기로 안주를 삼고 싶습니다. 시시콜콜하지만 결코 간단히 치워버릴 수 없이 날카로웠던 고담 시티의 날카로운 추억도 곁들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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