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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Mar 13. 2019

고 장자연씨 사건이 묻힐까 걱정하는 "남성"들에게

정치인과 비정치인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남성들이 해 온 정치란, 동네 노인들의 장기판 담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인 자리에서 술 한 잔 걸치며 "자유한국당 대표 선출을 하는데 뫄뫄", "민주당은 요즘 하는 꼴이 뫄뫄" 하며 정당과 의원, 대통령에 대한 하마평을 늘어놓는 수준이다. 그들에게 정치는 오직 국회와 정부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라. 박용진 의원의 유치원 3법, 미세먼지를 둘러싼 갈등 등 정당정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건들은 모두 일상과 관련된 영역이었다. 남성들이 카톡방에서 여당 야당 편먹고 입정치 하는 동안 정치가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행위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 왔다.


그런 의미에서 편먹고 정치평론하기 좋아하는 똑똑한 남성들이 버닝썬 사건에 깊이 유착된 경찰 세력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책임자 처벌, 약물 오남용과 단속 문제 등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여타의 사건과 이 사건의 다른 점이 무엇이기에? 답은 간단하다. 정당 정치 씹어먹기 좋아하는 남성들은 자신들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공고한 "남성 카르텔(연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들끼리 하던 "짓거리"가 들통났을 때, 회피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최근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주장도 돈다고 한다.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 여성단체가 한 일이 뭐냐?"는 반문 말이다. 나는 되려 묻고 싶다. 그 사건에 관해 남성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며 함께 분노했던 사람으로서 남성들이 성금이라도 모아 보내줬다는 훈훈한 기사 한 줄 본 기억이 없다. 이 쯤 되면 남성들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여성들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꼬장"을 부리는 건지 헷갈린다.


"고 장자연씨 사건이 묻힐까 두렵다."는 말은 주로 남성들에게서 나온다. 나는 이게 위의 "꼬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건은 결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당사자를 여성으로 한 성폭력이 그 본질이며, 남성이라면 가타부타 말을 보태기 전에 "일단 좀 닥치고" 있어야 할만큼 중차대한 사건들이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자 한다는 소리가 저 정도 수준이라면, 어설픈 가십성 정치평론이 끼치는 해악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남성들이 가진 얕고 조잡한 정치평론 수준의 정치담론 정서를 뒤바꿀 필요와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여성에게 매일 연예인, 쇼핑 같은 가십거리나 찾아다닌다고 비아냥댈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가십거리로 삼는 남성들보다는 가십거리에서 단 하나라도 자신의 삶과 직결된 일상의 정치를 발견해서 그것을 정당정치에 관철하려는 운동이 훨씬 더 힘이 세고 중요하다.


정치 = 정당정치, 정부비판이라는 수식이 한국 사회의 정치를 허약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정치적 행위자이며, 정치와 연관되지 않은 일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현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 모두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지금껏 남성들은 남성 권력을 지키려는 정치적 행위를 무의식 중에 해 왔다. 배제는 아주 좋은 정치적 행위 중 하나다. 여성의 목소리, 소수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것이 지금까지의 남성 위주의 정치 담론이었다. 그것을 위협하는 페미니즘이 등장했을 때 이런 저런 딱지를 붙여가며 고립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게 남성들의 현주소다. 지켜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톡방에서 여당 야당 씹어대다 불법유출영상을 올리면 우르르 달려들 수 있는 "자유".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주변에 불법촬영 동영상을 유출시키고 돌려보며 ㅋㅋ대는 남성들은 없지만, 나 자신이 불법촬영 동영상에 관련해서 떳떳할 리 없다. 알았든 몰랐든 그런 동영상을 소비했었다는 데 대해서 모든 여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러한 이유로 젠더 이슈, 성폭력 범죄와 관련한 글은 내가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공고한 남성 연대를 깨는 데는 같은 남성의 내부고발적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런 부조리한 카르텔에 균열을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정준영 동영상"이 실검 1위가 되는 사회는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톡방에서 불법영상이 올라왔을 때 "이건 범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가, 당연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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