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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Apr 27. 2019

내 표를 죽여 온 거대 양당의 그림자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난리법석" 그 자체입니다. 언론은 오랜만에 돌아온 "동물 국회"를 연일 선정적으로 보도하기에 바쁘고, 연동형비례대표제로 불리는 선거구 개혁 법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맥락에서 지금의 사달이 났는지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광진 대통령소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은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억지, 생떼 쓰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당한 절차와 국회의원 다수의 동의를 얻어 진행하고 있는데, 정상적인 국회 운영을 방해하는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탄하며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기조로 밀고 나가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지금의 민주당이 과연 그러한 프레임을 발견한다 해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김광진 전 의원의 글에서 민주당이 지금껏 왜 "장기집권"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당 정치는 그 시작부터 거대 양당 체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도 좌파"라고 불릴 만한 세력도 있었지만, 해방 정국과 한국 전쟁을 거치며 극우와 보수 세력에 의해 "척살"되었지요. 그 후 지난한 군사 독재를 지나며 극우와 보수 두 세력에서 시작한 정당만이 남아, 지금까지 거대 양당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민주당은 그 속에서 "만년 2인자"였습니다. 물론 대통령 선거와 함께 연동하여 엎치락 뒤치락 하긴 했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죠. 자한당은 기나긴 집권의 역사와 경험을, 민주당은 기나긴 패배와 저항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늘 저항과 패배와 굴육, 그리고 설욕의 순환구조 속에서 고통만 당해왔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민주당이 장기 집권하지 못하는 이유, 지금 패스트트랙으로 태워 보내려는 선거구 개혁안의 중요성을 모두 드러내 줍니다.


김광진 전 의원의 말처럼 자한당은 초법적인 권위와 함께 정치를 해왔던 정당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죠. 반대로 민주당의 '헌법수호, 준법의지'는 그 초법적 권력 앞에 번번이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 경험이 단발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몇십 년 동안 쌓여왔다는 건데요, 그 속에서 "승리자 - 패배자" 프레임이 짜인 겁니다.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을 위해 내밀었던 캐치프레이즈는 한동안 "정권 교체"였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초의 민간 정부" 이미지로 승리했다면, 민주당은 "최초의 정권 교체"로 이길 수 있었죠. 이제는 영원한 2등을 1등으로 만들어 보자! 는 논리가 효력을 발휘한 이유는 사회 전반에도 "승리자 - 패배자" 프레임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프레임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민주당과 자한당만 기억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지지를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초법적인 권위를 사용하려 폭주하는 저들 자한당에게도 있지만, "승리자 - 패배자" 프레임 안에서 반사 이익을 얻어왔던 민주당에게도 있습니다.




자한당은 이번 선거구 개혁을 막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효과는 적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거대 양당 구도를 흔들 제도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법안 통과를 저지하지 못할지라도, 강경한 제스처는 오래전부터 지지자를 결집하는 효과를 톡톡이 보였습니다. 이미 지지도 조사는 자한당이 그간의 열세를 꾸준히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는 하락세지요.


한편에서는 20대 남성이 등을 돌린 탓으로 보지만 그건 섣부른 분석입니다. 단순히 성별이나 연령과 같은 몇 가지 변수만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부르짖었던 개혁이 지지부진하거나 개혁 자체의 방향성을 문제시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자한당이 저질스러운 대응을 해도 반사이익을 받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한국 정치사에서 자주 펼쳐져 왔습니다. 그리고 늘 다음 행보는 “승리자 - 패배자” 프레임 안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김광진 전 의원의 글에서 보이듯, 민주당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자한당이 초법적인 권위로 맞서고 있다”며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국정 전반의 실책 원인도 전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흐름이 변하지 않고 내년 총선을 맞이했다고 했을 때, 민주당이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아 든다 해도 자한당을 탓하는 목소리는 유지될 겁니다.


민주당 입장에서, 저들은 늘 법 위에 군림해왔기에 승리하고, 그 법을 준수하려다 졌다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의 승패 나눠먹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으나, 그것처럼 달콤한 정신승리는 없지요. 만약에 지금 지게 되면? “다음에 그걸 이용해서 분발하는 모습 보여주고 다시 정권 탈환하면 된다!”는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자한당 계열은 지금껏 승리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짓을 열심히 해왔고, 민주당 계열은 그걸 싫어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그 안에서 반사이익을 누려왔으니, 민주당은 필승카드는 아니지만 지지 않을 카드는 늘 쥐고 있는 셈이죠. 거대 양당 구도가 가진 최악의 경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정부나 의회뿐만 아니라 나라의 뿌리인 국민에게 가장 악영향을 미칩니다. 거대 양당의 외나무다리 결투는 당장 영화처럼 재미있어 보일지는 모르나, 우리의 일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화 같은 정치가 반복되니 생긴 것은 “동네 장기판 훈수질 정치 담론”입니다. 국회발 이슈를 물고 와 지지정당에 따라 가십거리로 떠드는 풍경은 특히 기성세대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지금 내 삶의 행복”을 위한 국가적 사회적 장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동물 국회”가 결코 재미있지 않습니다. 내 삶에 직결됐을지 모르는 법안들이 제 때 처리되지 못하고 계류된다면, 그로 인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은 피해를 입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저런 국회를 팝콘을 흡입하며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까요?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는 집단은 명백하게 자유한국당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 국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집단이 자한당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총선을 통해 그들을 국회에서 몰아내겠노라 다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자한당이라는 적”을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그들이 국회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조건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키는 바로 유권자인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는 구조상 “이미지 정치”, “인물 정치”로 흐르기 쉽습니다. 지역분권이 낮은 수준이고 이념 스펙트럼이 제한되어 있는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유럽 정치가 안정적이고, 우리와 비슷한 제도의 미국이 그래도 민주적인 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지역 수준에서 참여하는 제도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있어 ‘참여적 민주주의’를 습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은 인물 정치로 흐를지 몰라도, 지역 수준에서의 정치는 또 다른 흐름을 보이기 때문에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의 여지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불리는 선거구 개혁은 중요합니다. 올 초 KBS에서 방영된 ‘거리의 만찬’에 출연한 박지원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다며, “내 표를 살리자”라고 설명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거대 양당 구도에서 인물이 아닌 정책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 후보의 정책은 마음에 들지만 전혀 반대편 정당 후보여서 표를 줄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의 표는 기권, 무효표가 되어 ‘죽은 표’로 처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거구가 개혁되면 그 표들이 살아나 목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비로소 “국민의 목소리” 자격을 얻어 ‘민주주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정책을 구현하려 할 때, 그 방법이 한 가지일 리 없습니다. 양자택일일 수도 없습니다. 그 목적을 위한 다양한 접근방법이 제시되고 그것을 숙고하여 결정하고, 그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게 지지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구조는 의회민주주의에서 본질적인 차원입니다. 그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거쳐 최대한 빨리,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도 부족할 시점에 거대 양당의 외나무다리 결투만 언제까지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외나무다리를 치워버리고, 아니면 다리를 여러 개 놓아서 그들이 치받든 말든 얼른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야말로 그 다리입니다. 이 다리가 놓인다면 가장 먼저 외나무다리 대결을 벗어날 정당은 민주당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민주당이 하루빨리 ‘참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민주당을 하한선으로 하여 그 위에 새로운 시대의 변혁에 대비하는 새로운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수구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벌써 예전에 사라졌어야 할 망령들을 소환해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세력들을 더 이상 국회에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대 양당 구조에 기생해서 한국 정치를 뒤쳐지게 만들었던 “승리자 - 패배자” 프레임이 드리운 그림자도 사라졌으면 합니다. 단 한 명의 다른 목소리라도 듣고 받아 안아야 한다는 민주주의를 향한 지향이 이 한국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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