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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Dec 12. 2019

국경의 밤

유물발굴

2015.10.19 작성됨.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 갔다 -

오르명 내리명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 놓고     

밤 새 가며 속 태이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젖은 손도 맥이 풀려서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북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나오는 듯

"어어이"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또 저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림(山林)실이 벌부(筏夫)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초로운 바람 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 죽일 제

이 처녀만은 강도 채 못 건넌 채 얻어 맞는 사내 일이라고

문비탈 쓰러안고 흑흑 느껴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 삼동(三冬), 별빛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끄는 소리언만.


- 김동환, "국경의 밤" 1부 중 발췌


너의 어깨에 나의 손을 올리니

쑥스럽게도 시간은 마냥 뒤로 흘러가

시간 없는 곳에서 정지한 널 붙잡고

큰 소리내지 않으며 얘기하고 있구나


우린 키가 크지도 않은

수줍고 예민하기까지 한 작고 여린 몸집에

지기 싫어하던 아이들


너를 떠나기 전에, 고향 떠나기 전에

독서실 문틈 사이로 밀어 넣은 네 결심

바라보는 것만큼 어쩔 수 없던 우리

다같이 무기력했던 우리 고 3의 바다


함께 좋아했던 사람

너는 말하지 못해

마지막까지 숨기다 겨우

한참을 같이 고민하던 그 밤


앞으로 돌진하는 내 현실

전투하듯 우리 사는 동안에도

조금도 바꾸지 못한 네 얼굴

의젓하게 멀리 나를 보러 온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 내 친구, 그대여


나보다는 더 여유 있게 산다며

언제나 나를 앞질러 술값을 내곤 하던

너의 뒷모습, 숨길 순 없었겠지

모든 걸 다 버리듯이 나를 찾아왔을 땐


몇 년만인지 둘이서

함께 도로를 달리던 밤, 별처럼 반짝인

고단한 네 외로움 네 사랑들


앞으로 돌진하는 내 현실

전투하듯 우리 사는 동안에도

조금도 바꾸지 못한 네 얼굴

의젓하게 멀리 나를 보러 온

청년이 된, 그러나 내겐

소년인 내 친구

소년인 내 친구

소년인 내 친구, 청년이 된

내겐 소년인 내 친구, 그대여


- 루시드 폴, 국경의 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서사시 "국경의 밤"은 나라를 잃은 이들의 슬픔이 절절하게 담긴 시였습니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로부터 십년이 훨씬 지난 뒤, 이 시를 배우던 그 때를 회상하게라도 하려는 듯, 국경의 밤이라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이 두 "시"는 많이 다르지만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공유한다는 데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듯 합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이 두 시를 보면서 박근혜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떠올랐습니다. 같은 제목의 다른 두 시가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역사는 기억의 투쟁이다."라는 점입니다. 비록 김무성이 "전쟁" 레토릭을 점유하기는 했지만, 권력을 쥔 자들이 역사를 가지고 난리를 치기 전부터 한반도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오늘날에는 상식이 되어버린 유명한 테제를 남겼습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역사란 냉정할 정도로 정직하게 흘러가는 강물임과 동시에 강어귀에 차근차근 쌓이는 모래이다.” 지금도 강물은 흐르고, 그에 따라 물길이 조금씩 바뀌며, 그로 인해 깎여 쌓이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역사는 매우 객관적으로 개인과 사회와 민족과 국가라는 단위에 흔적을 남기고 움직여가는 이성적인 측면과, 그 뒤에 남은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억이라는 축적물을 통해 정서적인 측면을 갖게 됩니다. 지금도 역사는 흐르고, 그에 따라 미래는 조금씩 바뀌며, 그로 인해 과거에 남게 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잠시 강 속에서 벗어나 높은 곳에서 물길의 변화를 감지하고, 가까운 곳에서 뒤에 남아 쌓인 것들을 살피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는 미시적인 역사와 거시적인 역사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김동환의 시 “국경의 밤”은 나라를 잃은 개인들의 슬픈 사연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에 베어든 역사적 맥락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역사란,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루시드 폴의 “국경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같이 무기력했던 우리 고 3의 바다’라는 가사에서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개인과 사회를 아울러, 과거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는 작업을 통해 구성되는 일종의 총체물이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물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역사라는 기억을 불러내느냐가 중요해집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논란은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던 기억의 투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신호입니다. 대통령 개인의 간절한 바람이 빚어냈든, 권력자들의 비뚤어진 소유욕이 불러냈든, 그들이 역사(의 해석)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 이상 기억의 투쟁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다루는 우리의 방식 다시 말해 역사 해석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큰 이슈 이면에는 반드시 거대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사 해석의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은 의외로 소박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훈련이 필요한데, 먼저 개인과 사회의 역사가 얽혀있음을 깨닫고 역사라는 강물과 그 퇴적물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라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사는 나라의 도로 폭은 왜 이리 좁은 걸까? 골목은 왜 직선이 아니고 이렇게 구불구불할까? 다른 나라와 달리 왜 우리나라는 전깃줄이 땅 밑이 아닌 하늘에 있을까? 왜 용산에는 미군기지가 있을까? 등등, 개인적인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면서도 그 앞 뒤에는 사회적인 맥락이 존재하는 요소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 맥락을 추적하고 해석하는 것, 이것이 역사를 다루는 작업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김동환과 루시드 폴 처럼은 아닐지라도, 각자의 방법으로 역사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역사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고 말하는 이 때, 헬조선을 떠나고 싶어 국경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떠나더라도 도망치듯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밤을 함께 지내며 각자의 기억으로 촛불들을 밝히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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