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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Dec 12. 2019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유물발굴

2015.10.7 작성됨.


제가 다녔던 학교의 사회과학부에서는 학사 논문을 써야 했습니다. 당시 신학을 복수전공할 때라, 신학과 사회학을 섞어서 무려 그람시를 중심으로 논문을 쓰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결과물은 3일만에 쓴 날림논문이었습니다. 당시 제 논문 주심이었던 교수님은 저에게 "너는 자기주장을 좀 더 명확하고 자신있게 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비슷한 조언을 들었고, 그래서 대학원 생활 몇 년 동안 제 주장을 잘 하는 훈련을 했죠. 그 결과 석사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훈련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려면, 다시 말해 창의적 인간이 되려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창의력 개발이 교육의 화두가 된지도 어느새 십년이 넘었지만, "창의력 개발"을 하는 방식을 보면 답답함이 밀려 옵니다. 창의력을 개발시켜준다는 학원에 보내고, 창의력에 좋다는 책을 읽고, 약을 먹입니다. 창의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또 그것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집 벽에 낙서를 하고, 이것저것 뒤지고, 어지럽히고, 때로 창문에 기대어 멍하니 있는 행동은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자기 자신으로의 몰입이며 탐구이자 연구입니다. 그것을 북돋워주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좋은 일임을 알게만 해줘도 창의력은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저절로 길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올곧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이 얼마나 될까요? 창의력을 개발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두는 학교에서? 미래의 인재를 키우며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회사에서? 한국 사회의 정서가 결코 창의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바일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속담 중의 하나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은 비단 사회에 대한 저항을 만류하는 의미만은 아닐 것입니다. "나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만의 삶을 사는" 모든 행위에 대한 경고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똑같은 코스를 거쳐 똑같은 직장에 다니며 똑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가집니다. 어쩌다보니 서로가 가진 것이 똑같은 것이 아니라 "똑같이 살아 왔기에 똑같은 인생을 갖게 된 것"인 까닭입니다.


어쩌면 "헬조선"의 끔찍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행위 중에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행위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연습"일 것입니다. '포기'를 넘어서, '스스로 선택하며 구성하는' 삶을 살도록 국가와 사회가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게 못해주는 현실이라면, 정을 맞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난 돌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 정을 든 사람을 찔러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을 겁니다. 자신으로서 사는 삶이 창의력을 만든다면, 후에는 그렇게 길러진 창의력이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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