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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Dec 12. 2019

한국의 테러, 프랑스의 저항

유물발굴

2015. 11. 작성됨.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무슨 우연인지 하여튼 한국시간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아침에 우리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슬람 무장단체 IS의 테러 소식을 들었고, 오후와 저녁에는 한국의 수도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진 시위와 경찰의 살인진압을 목도했습니다.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에서는 이슬람포비아도 일어났지만 그에 대한 저항과 다른 목소리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테러라는 악순환의 연쇄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진짜 문제인 "강대국에 의해 벌어진 역사적인 폭력"의 흐름을 잘라내야 하고, 그 첫걸음으로 무차별적인 이슬람포비아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사태의 본질을 꿰뚫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의미있는 발걸음입니다.


시위가 있었던 한국에서는 그 어떤 언론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그나마 보도한 몇몇 언론매체조차 왜곡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이 가지고 있는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착된 강력한 프레임의 작동을 재확인하는 정도의 사례였습니다. 아예 한 술 더 떠서, 한국의 권력자들은 시위대와 프랑스의 테러를 비교하며 마치 시위대를 IS인양 취급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이를 계기로 테러의 방지를 위해 국가권력의 대국민 감시체계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의 권력자들이 프랑스에서 벌어진 테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시위자들은 테러범과 동일시 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프레임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면서도 IS 또한 테러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객관적인 역사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테러리스트란 한 국가 체계에 - 그들이 보기에 - 폭력적으로 대항하는 모든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 국가가 조선이든 일본이든 남한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민중 총궐기에 참여한 시위대는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레이밍을 사용하는 목적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대중의 공포감을 증대시켜 차별과 배제, 낙인찍기의 정서를 활성화하고 그 와중에 떨어지는 떡고물도 주워먹고 '지배의 매카니즘'을 공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테러에 관련한 법안이 제정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중을 향한 심리적인 효과는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번만 더 몰아가고 총선을 겨냥한 북풍만 좀 더 이용하면 새정연을 궤멸상태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독재의 회귀입니다. 비관적인 전망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전망이 어두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철저히, 그리고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힌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자들이 이용했던 프랑스에서의 테러에 숨어 있습니다. 먼저 프랑스 사람들이 보여준 안티-이슬람포비아적인 태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위대든 대중이든, 사건과 그 이후의 추이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나아가 사태가 일어난 원인과 본질적인 문제를 파고들어가는 집념을 가져야만 합니다. 헬조선에겐 짐에 짐을 얹어주는 과도한 스트레스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짐이 싫어 버티다가는 어떤 파국이 올지 모릅니다.


또한 오히려 한국 권력자들의 보수/수구적인 태도가 진짜 테러를 불러오는 문제를 내재하고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테러를 감행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삶을 조여놓고 엉뚱한 이익을 취하며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지, 인간적인 분노를 담고 거리에 나와 보이는 폭력 - 도대체 폭력이라고 부르기도 우스운, 참으로 극도로 자제된 행위들 뿐이었지만 - 을 휘두른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테러가 일어난 곳은 프랑스인데 오히려 프랑스인들은 이슬람포비아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저항이 일어난 곳은 한국인데 오히려 한국의 권력자들이 국민에게 테러를 가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비극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로부터 깊이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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