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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틸드 Apr 03. 2020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사진 : 여성의당)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다.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요한복음 8장 3절~11절 (새번역)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N번방"이라는 단어가 v기분이 나빴던 건지v, 아니면 여성이 당을 만든 게 싫었던 건지, 사람이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하려면 그 나름대로의 이유나 정당성이 있어야 할텐데 남성이 돌을 던진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서처럼, 오늘도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돌을 맞거나 살해당합니다. 몇 년간 다른 이유가 있을지 찾아보아도, 아무리 남성들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정신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요한복음의 저 구절을 보는 많은 관점 중 하나에서는 "간음한 남성이 자리에 없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오늘날도 다를 바 없습니다. 성과 관련된 스캔들이 발생하면 여성에게는 '꽃뱀' 같은 낙인이 붙지만 남성에게는 별다른 정서적 타격이 없습니다. 설령 죄가 입증되어 형사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사회에 복귀하면 여전히 '거대한 남성성의 카르텔의 일원' 자격을 유지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본인의 v억울함v을 토로할 수도 있을 테지요. 여자는 돌을 맞지만 남자는 남성 카르텔과 사회가 먼지 한 톨 안 묻게 막아줍니다.


성서의 시대도, 오늘의 시대도 법은 남성의 편입니다. 둘이 간음을 했는데 남자에 대한 처벌은 없고 여자만 돌로 쳐죽임을 당합니다. 상습적으로 절도를 하다 라면 한 봉지를 훔친 절도범은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아동,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22만 건을 유통한 운영자는 1년 6개월을 선고받습니다. 4월 3일 오늘, 성매매범 연예인 정준영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며 자신을 시험하는 이들에게 예수는 "죄가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아마 성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남자들은 돌을 내려놓고 모두 떠나갑니다. 반면 2020년의 남자들은 2000년 전 남자들보다도 양심이 없습니다. 정당하게 정치 행위를 하는 선거운동을 향해 돌을 던지며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남초 커뮤니티 등을 떠돌아다니는 게시물들을 보면, 정말 그들은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심지어 "보기만 한 것이 어떻게 죄냐?"고 v억울해v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2~30대에서 이런 정신 상태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고 암울합니다. 우연히 만난 이 남자가 과연 어떤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을지, 안그래도 남성이 주는 공포감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여성들이 더 큰 공포감을 얹게 되었습니다.


N번방을 둘러싼 공포는 그간의 공포와는 조금 다른 위험성이 있습니다. 26만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해서 억울함을 강변하거나, 본 것과 유통시킨 것을 분리하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나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이걸로 모든 남자를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거나,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상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편의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기분에 맞춰 사안을 재단하는 남성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N번방에 들어간 26만명만큼이나 여성들에게는 끔찍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을 테니까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돌을 든 저 수많은 남자들을 향해 "이건 너희가 만든 죄가 아니냐?"고 말할 예수와 같은 남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말입니다. 페미니즘이고 성차별이고 다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건 "상식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 남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남자들 가득한 공간에서 음담패설을 주고받다가 "제발 적당히 하자"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남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여성을 "연애할 대상"이나 "고기 부위 나누듯 이리저리 재고 평가할 대상", "남자인 나의 관념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고 대하는 남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그런 남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제 안에서 그런 남자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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