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생리
“나 오늘 생리통 때문에 바로 집 가야 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우리 집으로 가 놀았던 친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친구의 생리는 방해물 그 자체였다. 늘 해맑은 친구가 생리 날만 되면 끙끙 앓으며 책상 위에 하루 종일 엎어져 있는 것도, 우리 집에 가서 놀 수 없는 것도, 심지어 어떤 날은 진통제로도 진정이 되지 않아 조퇴를 해 버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조금은 유난스럽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나이는 중2병을 지나 청소년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지만 내 몸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생리 터진다’는 말을 경험이 아닌 관용구로 아는 여자는 우리 반에 나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키 순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나는 어딜 가나 가장 작고 마른 아이였다. 빠르면 초등학교 3학년, 늦어도 중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되는 생리는 20kg대의 몸무게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너무 멀리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도록 생리를 하지 않자 엄마는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장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진지하게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그림을 가리켜 가며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것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는 엄마의 표정과 초음파 검사를 위해 물을 10잔 마셨던 것뿐이다. 오줌보가 터질 때쯤, 검사실로 들어갔다. 아랫배에 차가운 젤이 뿌려지고 tv에서 임산부를 진찰할 때나 보던 기계가 내 배 위에 올려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남들과 다른 내 몸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차가운 젤이 추가되었고 더 세게, 더 밑으로 꾹꾹 기계를 눌러대는 탓에 오줌을 참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초음파 검사를 마친 후에는 희한하게 생긴 기계 위에 앉아 다리를 쩍 벌렸다. 낯선 사람이 내 사타구니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어 면봉으로 여기저기를 긁고 나오더니 건조한 말투로 “끝났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천천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히죽대며 문을 열고 나가는 내게 수치심이나 민망함 따위는 없었다. tv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신기함만을 느끼는 나는, 누가 봐도 아직 어린 애였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으나,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검사 결과를 알지 못한다. 검체를 배송하던 퀵 오토바이가 가던 길에 넘어졌고, 면봉으로 박박 긁어모은 나의 몸 조각들은 페트리 접시가 깨지며 아스팔트 위에 쏟아졌다고 한다.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올 거냐는 병원의 전화에 엄마는 ‘에휴, 검사가 필요 없는가보다.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괜찮다 답했다. 나는 그로부터도 1년 반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다.
여고에 입학한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 다른 반 학생이 우리 반에 오더니 나를 보고 “아! 니가 그 브라 안 하는 애구나!”라고 말했다. 생리도 안 하는데 가슴이 나왔을 리 없을 터. 나는 우리 학교의 유일한 노브라, 노생리 학생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민망하지 않았다. 아직 진정한 여자가 되지 못한 나는 그저 아이 같이 해맑은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2013년 8월 13일은 나의 17번째 생일이었다. 짧은 여름 방학을 마치고 개학한 학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끌벅적했다. 6교시 수업 종이 치는 순간, 친구들과 떠드느라 정신없었던 나는 “화장실 다녀올게! 쌤한테 말해줘!”라고 외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빨리 볼일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치마를 들어 올리고 힘껏 팬티를 내렸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선명하고 검붉은 피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과서와 미디어로 배워 온 그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조용한 복도도, 교실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도 모두 상관 없었다.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침착하게 휴지를 길게 뜯고, 가지런히 접은 후 팬티 위에 얹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아주 느리게 교실로 걸어 들어갔다. “미리미리 안 하제!” 늦게 들어온 내게 한 소리하는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수업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안에 무언가가 벅차 올랐다. 멍하게 미소를 짓고 앉아있는 나를 보던 짝이 교과서 귀퉁이에 필담을 걸어왔다.
“?” 한 글자였다.
“나 생리한다” 나는 빠르게 답했다.
샤프로 쓰인 다섯 글자는 쪽지로, 쪽지로 전해진 한 문장은 귓속말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어느새 웅성이는 교실에 판서를 하던 선생님이 “뭐야! 9반 왜 이래!” 라고 소리 쳤을 때, 한 친구가 손을 번쩍 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 생리 시작했대요!” 선생님의 표정이 분노에서 놀람으로 바뀌기도 전에 아이들이 다 함께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소문은 교무실까지 퍼져 다음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유기농 생리대 세트를 품에 안겨주었다. 여기저기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축하를 건네왔다.
‘진짜 여자’의 증표, 세상이 나에게 준 17번째 생일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