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관한 나의 가설

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을 땐 그 사람의 기원을 생각해 본다.

by Aa effect

책 <호모 사피엔스>를 읽고 모였다.

호스트가 준비한 인상 깊었던 질문 중 하나는

‘우리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각자의 가설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의 가설’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자 할 때, 사람의 기원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다.

나는 ‘한 사람의 지금의 총체(Core)는 그 사람의 초창기 형성이 이루어지던 기원(Origin)의 단계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이 사람을 이루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사람의 기원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 해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인의 작은 삶의 조각 단서를 붙들고 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려 한다. 사실 이해한다고 착각하고 살뿐이다.


우리는 사람뿐 아니라 어떤 현상, 사건 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두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왜 이게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지,

왜 이게 트렌드를 주도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

왜 이 사건을 온 국민이 분노하는지,

저 범죄자의 어린 시절 가정사는 어떠했는지.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조각들을 찾아낸다.

사회학자, 범죄 심리학자의 의견도 들어본다.

사회 곳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며, 각자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흡수한다.

그리고 저명한 스토리 텔러를 통해 그 조각들을 이해하기 편한 그럴듯한 방식으로 끼워져서 전파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두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게 왜 트렌드인 건지, 저걸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어떤 요소 때문에 분노하는지 다양한 근기를 찾아내서 어떻게 서든지 이해하려고 한다.

그 근거가 명쾌하지 않더라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안 되는 그 사람의 정보 조각을 가지고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 한다.
분명 그 단서는 그 사람 인생에서 쌓아온 여러 레이어의 하나일 뿐이고, 전체를 설명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두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편견인 줄 알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해석을 달고 싶어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그 사람과 계속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동안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대다수 2프로 부족한 상태로 설정된다. 현실 세계에서 만났다면 분명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수 있는 모습으로 시작해서 점차 성장해 나간다.

현실에서와 달리 우리는 그 주인공을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다. 그리고 그에게 감정이입해서 너그러운 눈으로 (심지어 나와 동일시하기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왜 이런 상황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단서를 영화적 장치로 곳곳에 뿌려주기 때문이다. 그 조각은 분명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대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끈이자, 이해하고자 할 용의가 있는 열린 마음에 제공된 선물이다. 그래서 그 몇 가지는 그를 이해할 결정적인 순간으로 배치되고, 그 순간을 함께 겪으면서 그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은 우리는 그 사람의 단편적인 조각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비록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이해하려는 노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은 편견이지만, 그건 곧 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왔다면 그 또한 다정한 배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