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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 켜지는 밤

by min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은 늘 새벽의 냄새로 가득했다. 커피 한 잔, 모니터 불빛, 그리고 덜 마른 문장들. 어떤 꿈은 늘 손 닿는 곳에서 한 걸음 비켜 있었고, 나는 그 거리의 이름을 “두려움”이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떨리는 손끝으로 브런치의 “발행” 버튼을 눌렀다. 세상이 바뀌진 않았지만, 내 하루의 중심이 미세하게 이동했다. 첫 “좋아요” 알림이 도착하던 순간, 모니터 너머의 한 사람이 나의 문장을 통과해 나에게 왔다. 그 작은 신호는 등대처럼 오래 빛났다.


그날 이후 달라진 건 거창한 숫자가 아니라 호흡이었다. 고립된 문장들이 공동의 호흡을 얻고, 혼자 써오던 글들에 이정표가 생겼다. 글은 문이 되고, 길이 되어 독자를 데려왔다. 그리고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세웠다. 약속은 독자를 데려오고, 독자는 나를 자리에 앉힌다.


‘과학과 기술을 숭배하지만 판타지를 믿는 오컬트쟁이.’ 라는 이해할수 없는 자기 소개도 여기서는 묘하게 설득력을 받는것 같아 좋았다. 현실과 판타지가 한 지붕 아래 서로를 비추고, 여백에만 남아 있던 이야기가 정착지를 찾는다. 나는 매주 같은 시간에 한 편씩 올리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약속은 스케줄이 되고, 스케줄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비로소 나를 글의 사람으로 만든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꾸준함의 다른 이름이다. 그 꾸준함이 머물 의자를 내주었고, 내게는 한 번 더 ‘발행’을 누를 용기를 건넸다.


오늘도 밤하늘 달이 창틀에 걸려 있고, 머그컵 바닥에서 미지근한 별빛이 천천히 식는다. 나는 제목을 고르고, 첫 문장을 다시 다듬는다. 좋아 괜찮다. 어제보다 한 줄 더 정확한 숨, 한 사람의 마음에 조금 더 머물수 있다면 좋을것이다.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어느 순간 ‘꿈’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불빛은—아주 작은 사각형 위에서—이미 켜졌있었다.나는 이 작은 불빛을 위해 딸깍.그리고 다시, 발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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